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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무라카미 요코 사진,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가 1994년~1995년 사이 잡지에 연재했던 글에 살을 덧붙여 만든 에세이집이다. 특별히 하루키의 팬은 아니고, 그의 명성이 너무 자자해 오히려 약간 거부감이 생겨 부러 더 찾아보지 않았던 작가다. 작가가 서문에서 이 책은 전작 <이윽고 슬픈 외국어>의 속편 정도가 되겠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마침 내가 유일하게 읽어본 하루키가 <이윽고 슬픈 외국어>여서 그가 쓴 글을 25년 전부터 천천히 따라 읽어오는 느낌이다.
타인의 SNS를 보며 느끼는 즐거움 중 하나는, 남의 일기를 훔쳐본다는 은밀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페이스북보다는 인스타그램이, 인스타그램보다는 블로그가 그런 은밀하고 짜릿한 기분을 느끼는 데 더 적합하다. 거창한 정보나 특별한 지식보다 별 것 아닌 듯한 남의 일상이 더 감동적일 때가 있다.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표지를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이 책은 1999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15년에 개정판을 찍었다. 2015년이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세기말 분위기의 표지 사진과 글씨체와 색상 선택은 책을 선뜻 집어들기 어렵게 한다. "읽고 싶지만 들고다니기 쪽팔려서 살 수가 없다"는 온라인 서평도 있으니 말 다했다고 할 수 있다.
표지를... 원작과 동일하게 하기 위해서 그대로 썼다고 백 번 양보해 이해해보기로 해도... 도대체 하루키 사진은 왜 합성해서 넣은 것일까??? (하루키 본인만 다른 사진에서 잘라 붙인 표지다.) 사진의 화질도 현저히 떨어져 인쇄 실수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 표지 사진에 저 글씨체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한 면에 서로 다른 폰트 3개, 그리고 각각 다 다른 색으로 제목과 부제, 작가 소개에 쓰인 색이 무려 4개다. ???(어리둥절)??
책을 보자마자 강박적으로 표지를 벗겨내 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암울한 모양새다. 세련된 속표지와 '감성 에세이'에 딱 어울리는 완벽한 일러스트를 다 제쳐두고 합성한 화질 떨어지는 사진을 표지로 선택한 데에는 여러가지 사정과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아니 그런 어쩔 수 없는 속사정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장편소설을 준비하던 작가가 미국에 거주하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남긴 일상의 기록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든다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소설가로서 훨씬 더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하루키는 소박한 일상에서 건져올리는 무언가, 그 무언가의 위대함을 아는 사람 같다.
2018년의 트랜드가 '소확행'이라고 하는데, 하루키는 20년 후의 트랜드를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누구에게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이 있을 터이다. 작가의 소확행은 마라톤, 여행, 그리고 고양이. 그렇다면 내 행복은 어디서 올까? 나를 일상에서 구원해주는, 거창하지 않지만 확실한 행복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가벼운 에세이였다. 표지 빼고 다 좋았음^^..
예술이라는 것은 다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그 작품의 작품성이 높다는 것과 마음속에 걷잡을 수 없이 불을 댕기게 한다는 것은 완전히 별개인 것 같다. (36p)
사람이란 아무래도 상관없을 사실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모양이다. (38p)
고생이나 고통이라는 건, 그게 타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한, 인간으로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일반적인 종류의 고생이나 고통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심한 편이다. (60p)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일시적 기분으로 내 이제까지의 인생 중에서 1,2위를 다툴 만한 사치스러운 행동이었다. 예컨대 미네랄워터로 이를 닦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고 한다면 물론 그렇겠지만, 그러나 그 나름대로의 결단이라는 게 늘 필요하게 마련이다. (131p)
결국 구두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136p)
현실은 좀 더 현실적이다. (144p)
하트는 어떤 고양이에게도 재주를 가르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 근거는,
(1) 어떤 고양이라도 배는 고프다
(2) 궁극적으로 고양이보다 인간이 머리가 좋다
라는 두 가지가 있다. 하지만 (2)와 관련되어서는 조금 예외가 있는 모양이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90p)
말하자면 절망적인 빈곤이 구조적으로 만들어내는 비인간적인 폭력 행위의 연쇄를 끝내는 것은, 새끼 고양이 샤샤를 떠맡듯이 그렇게 간단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동화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물론 모두 운 좋게 샤샤처럼 행운을 만난다면 더이상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210p)
하지만 글을 쓸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언제나 컨디션이 좋을 순 없다. 오랫동안 뭔가를 계속하자면 산도 만나고 골짜기도 만나는 법이다. 컨디션이 나쁠 때는 나쁜 대로 자신의 페이스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나가는 것도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리하지 않고, 고개를 치켜들고 꾸준히 참고 해나간다면, 다시 조금씩 컨디션이 되돌아오는 법이니까. (21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