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3번 줄줄이 연체를 하고 나니, 더 이상 연장을 할 수도 없어 반납 기한에 맞춰 허겁지겁 읽게되었다. 천천히 되새김질하면서 읽고 싶기도 했으나, 되새김질 하기에는 너무 묵직하다. 너무 유명한 소설이라 뭐라 리뷰를 쓰기도 좀 그렇다. 심정이 복잡한 상태로 읽으려니 더 갑갑하게 다가오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서울로 올라왔을 당시 상계동은 한창 개발 중이었다. 재개발 때문에 쫓겨난 또는 쫓겨날 사람들이 시위를 한다는 소리와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몰아 붙이니 어떤 아주머니가 실성하여 옷을 다 벗고 길에 드러누웠다는 이야기가 침통하게 오가고 있었다. 상계동에서 보기 힘든 일반주택지에 있는 우리집 인근에, 달동네가 아직도 존재하고 그 동네와 이웃한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이 소설의 분위기가 영판 낯설지가 않았다. 어렸을 때 살았던 곳에 해방촌이라는 이름의 동네가 있었는데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78년도에 초판되었다는 이 소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것 보면, 시간이 지나도 못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다는 뜻이려나?
서울 물 먹고 배탈이 안날 즈음이 되어서 알게 된 어떤 사람이 공장에 위장취업했던 이야기를 잰 체하면서 해준 적이있다. 나는 집에 쌀 떨어지는 자존심 상하는 경험과 중학생이었던 나 자신의 학비를 구해야하는 상황, 키우던 개를 팔아 반찬값으로 써야했던 쓰린 경험, 친구가 공장에 딸려 있는 야간고등학교로 들어가는 것을 배웅 갔던 기억, 부엌 구석에 쥐똥이 쌓이는 컴컴한 집의 암담했던 시절, 대학 갈 일을 뒤로 미뤄두고 일을 해야했던 상황 등이 겹쳐, 그 사람의 잰 체가 너무 싫었다. 내가 겪은 경험은 골이 아주 깊지도 않고 길어야 10년인데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음에도 이가 갈리는데,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굴레를 그것도 사력을 다해 열심히 돌고 있는 사람들과 6개월도 안되는 시간을 보내고 와서 하는 잰 체는 실천했기에 칭찬해 줄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상대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무효라는 생각을 했었다. 가슴 아파해도 모자랄 판에 잰 체라니, 그렇다고 뒤집어 내가 조금이라도 이해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부끄럽긴 마찮가지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부터 사무직으로 근무하기 시작해 좋은 사람 만나, 불평만 늘어 놓았던 나는 또 뭘 알고 느꼈겠나. 답답한 일이다. 답답하다고 내가 뭔가 바꾸려고 실천하면서 살고 있나? 누군가가 터무니 없이 피해를 보는 일에 대해서 과감하게 일어나 줄 수 있나? 움츠려 들 수 밖에 없다.
이미 천막은 치워졌지만, 오랫동안 천막 시위를 했던 사람들에게 정액의 작은 금액을 보냈던 일이 실천이라면 실천이겠고 작지만 주기적으로 사랑의 도시락에 돈을 보내긴 하지만 내 손으로 도시락에 밥을 담아 본 적도 천막을 찾아가본적도 없다. 이런 일은 실천이 아니라, 스스로 면피한 위로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은 난장이 아저씨네 가족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계속 칙칙할 줄 알았건만, '그저 바닥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들이 섞여 들어온다. 현실과 비현실이 엉키고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조금이나마 열린다. 이야기들이 머리 속에 둥둥 떠다니고 화자도 왔다갔다 하고 시간도 종횡무진하는 이 소설을 잃으면서 살짝 정신을 잃었다. 이렇게 지리하고 지랄맞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찌 이리도 페이지는 잘 넘어가는지. [청춘의 독서]에서 언급한 일이 있고 전부터 한번 읽어보자 싶어서 읽었는데, 읽다보니 지금은 심각해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자꾸 드는 것이 힘들다. 누가 읽을만하냐고 물으면 '읽어봐야지 않겠냐'고 말하겠지만, 과감하게 추천 못할 것 같다. 힘들어서.
왜, 아래 문장을 읽고 펑하고 눈물이 터졌을까?
나는 자식도 없는데.
난 날 약하게 하는 것들이 정말 두렵다.
동생은 병실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간호사가 나가면서 손가락을 입에 댔다. 동생 머리맡에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갖다놓은 것이다. 동생의 아이들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사람을 제일 약하게 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웃고 있었다._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