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1 - 새 번역 완역 결정판 열하일기 1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 돌베개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인과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 끝이었는지 열하일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조선에서 청으로 끌려간 어떤 여인이 어떤 이의 첩으로 들어가게되는데, 다른 첩들의 시기로 오해를 받아 결국에는 노상에서 인두로 지져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와 그 안타까움에 대해 연암 선생이 글로 써 놓았다는 것이다. 연암이라는 선비가 열하까지 가면서 풍경을 읊고 수레 이야기나 나오던 그 기행문이 열하일기가 아니었던가! 갑자기 눈앞에 [최종병기 활]의 그 억울한 납치와 무능한 조정이 생각나고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내용이 궁금하여 책부터 구입했다.

 

연암 선생은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길을 떠난다. 공적인 소임이 없는 관계로 자유롭게 여행하기 시작하지만, 눈과 머리가 열려있는 선비인지라 지나가는 길에 있는 돌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다른 것을 관찰하고 나은 것은 감탄하고 못한 것은 지적하고, 길에서 만난 이들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교류를 하며 북경으로 향한다. 하지만 다 갔다고 생각한 여행길이 열하까지 이어져 북경일기가 열하일기가 되었고, 1권의 이야기는 출발부터 열하까지 가는 길의 여정이다.

성을 쌓는 제도에 대해 생각하며 벽돌의 유용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p.89), 심양의 예속재와 가상루에서 나눈 이야기(p.172-209), 가상새설(p.221)을 써주고 홀대 받았던 일과 그 뜻을 알게된 일(p.237), 북경의 장관을 이야기하며 작은 것, 못쓰는 것을 쓸수 있게 만듬을 감탄하는 부분(p.253-254), 토막으로 읽어서 크게 감동받지 않았으나 앞 뒤의 이야기로 연결되니 감동받게 되는 수레 이야기(p.263-274), 백이·숙제와 고사리 이야기(p.370-373), 북경에서 열하로 급하게 가게되면서 일행과 헤어지는 이야기가 아주 구슬프고 그 와중에 견마잡이 창대가 다친 것을 바라보고 어찌 해줄 수 없어 안타까워하다가, 견마잡이 없이 말타는 자신의 예를 들어 우리나라 말 보는 방법의 위험함과 치렁치렁한 복장을 지적하는(p.488) 부분으로 넘어가니 이런 시야로 세상을 보고 다른 이에게 말을 하면 미움 꽤나 받으셨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에 실린 재미없는 글이라고 그냥 넘어갔던 수 많은 글들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태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게 잘 만들어졌다. 잘 편집된 책은 올컬러에 연암선생이 지나갔을 곳들의 현재 모습 또는 과거의 사진 등을 편집해 넣었고 복식문화에 관한 것 등 서술로만 알기 어려운 것들이 사진으로 들어있다. 또한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기는 하나, 연암 선생의 글 속에 나오는 인물에 대한 설명과 문장에 스며있는 고전들의 뒷 이야기가 주석으로 바로 달려있어 책 읽는데 어려움이 없다. 도판에 대한 저작권 표시도 잘 되어 있는 점이 마음에 꼭 든다. 책 무게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들고다니면서라도 읽고싶어지는 책이다.

 

 

p.69

  점포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단정하고 반듯하게 진열되어 있고, 한가지 일도 구차하거나 미봉으로 한 법이 없고, 한가지 물건도 비뚤고 난잡한 모양이 없다. 비록 소외양간, 돼지우리라도 널찍하고 곧아서 법도가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장작 더미나 거름 구덩이까지도 모두 정밀하고 고와서 마치 그림과 같았다.

  아하! 제도가 이렇게 된 후라야만 비로소 이용利用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용을 한 연후라야 후생厚生을 할 수 있고, 후생을 한 연후라야 정덕正德을 할 수 있겠다. 쓰임을 능히 이롭게 하지 못하고서 삶을 두텁게 하는 것은 드문 경우이다. 삶이 이미 스스로 두텁게 하기에 부족하다면 또한 어찌 자신의 덕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p.247

  아아, 슬프다! 내가 지금 빠르게 글을 써 나가다가 여기에 이르자 이런 생각이 든다. 먹을 한 점 찍는 시간은 눈 한 번 깜빡, 숨 한 번 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눈 한 번 깜빡, 숨 한 번 쉬는 시간이 문득 '작은 옛날'과 '작은 오늘'을 이루니, '큰 옛날'과 '큰 오늘'이라는 것도 역시 크게 눈 한 번 깜빡이고 크게 숨 한 번 쉬는 시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사이에 이름을 내고 공로를 세우겠다고 하니, 서글픈 일이 아니랴.

 

p. 323

  털모자란 겨울에만 쓰는 살림살이로 봄이 되어 해지고 떨어지면 버리는 물건일 뿐이다. 천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을 은을 한겨울 쓰고 해지면 버릴 모자와 바꾸고, 산에서 채굴하는 양이 정해져 있는 물건을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할 중국 땅으로 실어 보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사려 깊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인가?

 

p.332

  벼슬을 하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바야흐로 벼슬에 올라갈 때는 한 등급, 반 계단씩 올라 남에게 뒤처질까 봐 남을 밀치고 앞을 다투다가, 마침내 몸이 숭고한 자리에 이르면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고 외롭고 뒤태로워 아픙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뒤로는 천 길 낭떠러지로, 붙잡거나 도움 받을 희망마저 끊어져서 내려오고 싶어도 내려올 수 없게 된다. 역대의 모든 벼슬아치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p.379

"모를레라, 임이 어느 곳에 있는 줄. 발 넘어 눈썹 그리는 소리, 그 님이 아닐까?"

 

p.424

  수 많은 성인들이 자신의 생각과 보고들은 지식을 다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윤색·수식한 까닭은 장차 그것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한 것인가, 아니면 모든 인민들과 함께 영원히 그 복을 누리려 한 것인가.

 

p.439

  공자는 "남들이 자신을 알라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라고 했으며, 노자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드물다면, 아마 나는 귀한 존재일 것이다"라고 했으니, 그들은 남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p.478

  쓰고 있는 모자는 둥근 처마가 지나치게 넓고 이마 위에 검은 일산 같은 것을 걸치고 있으니, 처음 보는 것이라서, '이게 무슨 놈의 모자인가? 이상도 하다'라고 했을 것이다. 입고 있는 도포는 소배가 몹시 넓어 너풀너풀 춤이라도 추는 것 같으니, 처음 보는것이어서 '이 무슨 놈의 옷인가? 이상하게도 생겼네'라고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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