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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에게 고한다 세트 - 전5권 (일반판)
데즈카 오사무 글 그림, 장성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장성주 역 | 세미콜론 | 1846g | 148*210mm | 2009년 09월 28일 | 정가 : 45,000원
2차 대전의 이야기가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때의 느낌과 그 배경이 일본으로 바뀌었을 때의 느낌은 너무나 달랐다. 보통의 일본인들에게도 전쟁이 재앙이고 고통이었을 것이겠지만, 혹시나 전쟁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을 자신들의 상처로만 돌리는 내용이 나올까봐 괜히 읽기 전부터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어쩔 수가 없는 편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갑게도 작가는 아톰으로 익숙한 작가였고, 자신이 겪은 전쟁 이야기를 배경으로 엮어내었기에 편견은 기우일 뿐이었다.
"아돌프 히틀러에게 유태인의 피가 흐른다"라는 음모론(?!)을 바탕으로 히틀러의 출생증명서가 포함된 비밀서류가 도게 소헤이의 동생이 입수한다. 동생이 서류 때문에 살해 당한 일을 추적하고 서류를 찾아 어떻게든 이 전쟁을 끝내려고 드는 도게 소헤이는 연관된 모든 사건이 끝난 후, 삶이 긴밀하게 얽혀있는 아돌프들의 이야기들을 엮어나간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이 만화는 아돌프들이 전부 죽은 시점에서부터 과거로 떠나면서 시작한다. 아돌프들의 이야기 속에 문서를 찾아내고 보호하고 추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섞이고, 스스로의 생각대로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박힌다.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싶은 기자, 독일인의 아내였지만 일본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여인, 그저 생각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지만 좌익 딱지가 붙어 마을 공동체에서 살아 나가 갈 수 없는 선생의 이야기, 진실을 추구하고 싶은 형사 등, 사람들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얽히면서 전쟁 이야기이지만 그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간다.
일본인과 독일인의 혼혈로 태어나 일본에 살며 인간에 대해 균형있는 사고를 갖은 아이였으나 자라면서 순수 아리안족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과 나치즘에 물들어가고, 친구의 아버지를 총살하고, 수 많은 유태인을 학살하고, 선의로 유태인을 탈출시키지만 인간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소유욕 만이 남았던 아돌프 카우프만. 독일인이지만 유태인으로 태어나 카우프만과 같이 즐거운 어린시절을 보내기도 하지만, 2차 대전의 격전지가 된 일본을 겪어내고 새로운 유태인의 보금자리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나치와 전혀 다르지 않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는 아돌프 카밀의 대립은 선과 악의 문제보다 삶과 본능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사람이 살면서 삶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변화된 환경에서 행해지는 이들의 인생들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만나는 장면에서 좀더 치밀해 지는 듯 하지만 바로 끝나버린다. 독일의 나치즘을 이야기 하면서 일본도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곳곳에 뿌려놓지만, 이야기는 기대했던 것 보다는 말랑말랑하고 싱거웠다. 건장한 남자와 만나면 바로 사랑에 빠져버리는 여자들의 설정은 참 거슬리기도 했다.
책 상태는 만화책답다. 작가를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눈에 익은 그림체와 속도감 있는 이야기는 큰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재밌고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