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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지대 고라즈데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조 사코 저/함규진 역 | 글논그림밭(글숲그림나무) | 256쪽 | 694g | 2004년 10월 18일 | 정가
[팔레스타인]으로 조 사코의 만화를 접한 일이 있다. 기록을 하러 들어가서 꼼꼼하게 살피고 사람에 밀착하여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이 조 사코의 스타일이었다. 이 만화도 마찮가지로 그 지역의 사람에 집중한다. 내전이 일어나고 고립된 상황에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면서도 대단한 사람처럼 잰 체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이야기들로 책을 채운다. 하지만, 왜 이런일이 벌어졌는지 만화로는 설명하지 않는다.
"보스니아"라는 말을 입에서 웅얼거려보면 그 다음에 꼭 "내전"이라는 단어가 붙어야 할 것 같다. 한 나라를 인식하기 전에 "보스니아 내전"으로 내 머리 속에 박힌 곳. 보스니아 안에서도 더더욱 치열했다는 "고라즈데"의 상황을 조 사코의 눈으로 바라봤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어느날 느닷없이 오랫동안 함께 살던 이웃과 친한 친구들이 적으로 변한다. 종교가 같은 사람들이 뭉쳐, 종교가 다른 사람들을 살육한다. 왜? 같이 어울려다니고 함께 숙제하고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친구 이웃이 왜? 그 이유가 참 궁금했지만, 그 이유는 늘 참 그렇다. 누군가 정치를 하고 정권을 잡고 권력을 키우기 위해 상대를 매도하고 여론을 조장하고, 조작된 여론은 흥분한 사람들이 자신이 괭장히 큰 피해를 보며, 한때는 친했지만 알고보면 원수인 사람들과 함께 숨쉬며 살았다는 사실에 끔찍해 하도록 유도한다. 문득 [호텔 르완다]에서 보았던 르완다 내전이 생각난다. 반대편을 죽이라고 소리 높이던 라디오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자신이 살았던 마을이 파괴되고 평범했던 또는 너무 친했던 이웃사람이 살육의 야수로 변해서 날뛰며, 내 집 앞에 나갈 수도 없고 음식을 조달할 수도 없다. 삶이 무너지고 누군가 죽어나간 것을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황들이 이 만화에서는 증언으로 끊임없이 등장하고 상세히 그려진다. 검은색으로 그린 그림이기에 다행이다 싶을 만큼 고라즈데와 그 인근에서 벌어진 일들은 금찍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사람들은 마음을 닫았고 상처 받았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해서 입을 다문다.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의 모자이와 조화로움의 상징이었던 보스니아의 현재는 어떠려나?
내전인 나라에 살고 있다. 단지 몇 킬로미터의 거리를 비무장 지대로 두고 장기적인 휴전 상태일 뿐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정치는 그 내전 상황을 이용하고 다른 의견을 내려고 하면 "빨갱이"라며 손가락질 한다. 이러다가 골이 더 심해져 "수구꼴통"과 "빨갱이"만 남아 있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상황이 심해지고 누군가는 또 권력을 얻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손가락질하고 또 이간질해서 싸움을 붙이면 '청년단'들이 날뛰고, 우리도 이웃끼리 서로 잡아 먹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갖고 싶은 책이다. 절판되었고 인터넷 고서점을 뒤졌으나 이 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