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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 유재현의 아시아 역사문화 리포트, 프놈펜에서 도쿄까지 ㅣ 유재현 온더로드 1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7년 7월
평점 :
유재현 저 | 그린비 | 272쪽 | 498g | 2007년 07월 25일 | 정가 : 13,900원
즉흥적으로 대만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첫날 우여곡절 끝에 방문한 타이베이 228기념관에서 본 타이베이의 과거는 가이드북에서 읽었음에도 충격이었다. 여행 이야기도 할 겸 역사에 대해 알 아는 친구와 이야기 하던 중, 228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 책을 소개받았다. 낯설지 않은 저자였다. [느린 희망]을 아주 어설프게 읽었던터라 별다른 두려움 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생각보다 읽기 힘든 책이라는 것을 페이지 넘길 때 마다 절감했다. 어쩌면 [느린 희망]도 너무 몰라 쉽게 읽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간 대만을 비롯해 필리핀, 태국, 중국, 인도네시아를 다녀왔던 터라 이 책을 읽으면서 접하게되는 사실(!)들에 더욱 놀랐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싼 값에 돌아다녔던 관광지의 역사적 사실들은 이제와서 마음을 무겁게 했다. [희망을 여행하라]에서 공정 여행을 이야기하며 접했던 사실들의 시작과 바탕이 되는 이야기를 보는 기분도 들었다. 큰 전쟁의 후방기지로 미군 휴가지로 선택된 곳들에 생겨난 생계형 성매매산업에 대한 이야기와 성을 매수한 이들이 '동남아 여자들은 정조관념이 없다'는 말로 마음의 무게를 덜었던 일도 한국 남성이 예외가 아니기에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미국이 밟고 간 곳을 일본, 우리나라, 중국 남성들이 순서대로 쓸고 다니고 있다. 전쟁을 겪고 여성이 몸을 팔아 누군가를 먹여살린 나라에 제국주의 대통령을 세워지고, 독재를 경험하고, 민주화항쟁을 겪으며 비슷하게 발전해온 아시아 다른 나라의 경제사정이 우리만 하지 못하다고 무심결에 무시했던 마음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미안해졌다.
곳곳에 걸려 있는 왕의 초상화를 손가락으로 가르킬 수도 없는 나라 태국의 이야기도 놀랄만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반공영화인지도 모르고 끌려가서 눈물 펑펑 흘리면서 봤던 [킬링필드]가 내가 알았던 사실과 얼마나 동떨어지게 먼 상황인지를 읽으면서 또 한번 놀랐다. [킬링필드]의 기억이 얼마나 머리에 박혀 있었으면 2007년에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를 읽고 어렴풋이 사실을 알았음에도 이리도 묘하게 잊어버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놀랐다.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많은 일들도 우리와 멀지 않기에 아팠다. 보트피플에 대한 이야기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관심도 없었다. 그들의 대다수가 농어민 화교이기에 중국 땅에서 30년 난민으로 살아가야 했던 이야기들이 머리를 맴돌며, 같은 사상을 갖고 있으면서 왜 싸울까라는 내 의문이 어느 정도는 풀려나갔다. 모든 전쟁의 원인은 권력쟁취의 욕심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했다. 그리고, 영화에 단골로 나온 골든 트라이앵글의 이야기와 누구와 하는지 모르는 미국의 미약과의 전쟁 이야기도 알았음에도 속이 텁텁했다. 그리고 대만에 다녀와서 정말 힘들게 본 [비정성시]의 답답하고 느린 화면을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며 답답함을 풀어준 '비정성시의 어두운 골목에 서서'는 내가 보고 느낀 타이베이 228기념관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도록 생각의 폭을 넓혀주었다.
나는 역사가 재미없었다. 연결고리가 없고 외울 것이 끝도 없이 많은 암기과목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왜?'라는 질문의 연결고리가 생기면서 재미있어지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왜'를 보여주는 역사서가 없기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래서 연결고리를 제대로 만들어준 이 책이 반가웠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접하게된 과격한 현실은 참으로 읽어내기 힘들었다. 문득, 내가 나이가 있으니 이런 사실을 알아버리고도 멀쩡하게 버틸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