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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 40년 - 4판 ㅣ 범우문고 20
변영로 지음 / 범우사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변영로 저 | 범우사 | 144쪽 | 126g | 2004년 11월 15일 | 정가 : 3,900원
얼마 전에 지인의 집에서 음주를 하던 중 [음주사유]을 받아 읽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다른 지인이 자신에게도 술과 관련된 책이 있다며 잊지 않고 있다가 챙겨서 빌려 준 책이 이 [명정※ 40년]이다. 그 전에 [음주가무연구소]를 읽은 일이 있으니, 제대로 술한번 먹어보자 드는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세번째인 샘이다.
목차만 보아도 눈이 돌아갈만한 한자어가 빽빽하게 있다. 이 얇은 책을 읽으며 옥편까지 들고 봐야하나 고민하다가 그저 이해하는 만큼만 읽어야지 한것이 어느덧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다. 옛사람의 글에서 이런 고주망태를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다른 책에서 변영로 선생이 독립기념문을 영역했다는 이야기를 봤던 터라, 이 제목과 연관하여 괜히 술과 함께 독립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구술되어 있지 않을까의 기대는 몇장을 읽자마자 바로 무너진다. 그저 술 잡숫고 선물 받은 모자를 몇번이나 잃어버리고, 시비 끝에 싸움하고, 경찰서 끌려가고, 선물 받은 구두도 잃어버리고, 끊겠다는 술 못 끊어서 부인되시는 분께 이혼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낯도 모르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집에 돌아오며, 술자리에서 나온 말로 실수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만약 업적이 없다면, 그저 동네 상건달 정도의 무용담처럼 보일 듯 하기도 하다.
이미 대여섯살에 술독에 기어올라 술을 마시려다가 한잔 얻어마신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으로도 그렇고 마신 술로 다음날 못일어나 본 적이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것도 타고난 술꾼의 모습으로 보인다. 함께 어울리는 이들의 이름을 살펴보자니, 괜히 나도 어깨동무하고 그 속에 끼어 들고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붕 없는 곳으로 놀러 나가 술 마시다가 폭우를 맞고 대 자연과 합일하겠다며 옷을 벗고 '백주에 소를 타고'내려오는 모습은, 마음으로 했던 어깨동무를 얼른 풀고 모른 척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하기도 했고,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는 즐겁고 재미있으나 읽기가 그리 쉬운 책은 아니었다. 한자어는 제목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야기 속에 알알이 박혀 있어서, 단어를 모르면 문장을 알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나름대로 알 수 있는 한자로 된 문장들을 읽으며, 이렇게 한자어로 쓰면 문장이 깔끔하게 짧아지는구나라는 생각도 살짝 해보았지만, 현대에 맞게 주석이 달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97쪽, "무슨 핑계든지 있으면 덮어놓고 마시든 판, 주붕이 멀리 찾아 왔는 데다가 그날이 때마침 중복이라 이래저래 그저 헤어질 도리는 없었다."
술먹을 일이 없으면 제철 음식을 먹어야 몸에 좋다며 쭈꾸미로 불러내기도 하고, 그도 안되면 철도 없는 통닭 같은 안주를 챙겨가며 먹는 이도 있으니 이 말이 어찌나 와 닿는지 모르겠다.
※ 명정3
(酩酊) [명ː정]
[명사]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술에 몹시 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