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사유
박기원 글, 김은하 그림 / PageOne(페이지원)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박기원 글/김은하 그림| 페이지원| 388쪽| 741g| 170*200mm| 2010년12월20일| 정가:13,800원


아는 언니네 집에서 술을 한잔 하려는데, '옛다, 읽어보아라'라며 쥐어진 책이 이 책이다. 연휴내내 불교미술과 친해질 각오로 올 컬러판 책을 두권이나 끌어 안고 있던 터라, 나중에 읽어야지 생각하며 받자마자 미뤄놨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 해가 중천에 떠서야 겨우 눈이 떠졌다. 집주인인 언니는 시골집에 내려간다며 이미 짐을 다 써서 나가는 판에, 객이 남아 '잘 다녀오세요'라는 인사를 던지고나니 멋적었다. 간밤에는 각종 해물과 안주들 그리고 와인병만하게 큰 소주병을 처음본 터라 흥분하기도 했고, 괜한 질문을 던져 상대의 속 깊은 말까지 들은 터에 집주인까지 보내고나니 괜히 허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음주 사유], 당장은 영원히 깨지 않을 듯한 숙취에 시달리면서도 주섬주섬 들고 읽기 시작한 책은 생각보다 술술 잘 읽혔다. 곳곳에 이런 공감은 별로라는 느낌으로 '나, 참'을 연발하기도 했다. 난 술꾼도 아닌데, 왜 이리 공감할 것이 많단 말인가! 살다보면 다 이런 생각은 하고 사는 것인가?

 

술을마시는데 무슨 事由가 필요하며 ,

내가  私有한다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냐는

내 맘대로의 思惟.

                                                       - 사유들에 대해서 나. ^^

 

술꾼이 술꾼으로써 술꾼만의 삶을 살아간다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술과 관련해 인생이 얽히고 삶을 생각하고, 더불어 이야기까지 터져나온다. 박기원의 잘 읽히면서도 참으로 생각많아져서 가끔은 무겁다고 느껴지는 글과 함께, 보고 있으면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지는 김은하의 그림을 오가다 있다보면 책이 곧 끝이 난다. 다 읽고나니 허하다. 어디가서 학꽁치포에 흑맥주라도 한잔 들이켜야 할 것 같다.

 

책 상태는 훌륭하다. 열심히 편집한 흔적이 있는 책이다. 다 읽고 나서 닥히 뭐한지를 꼬집기 묘한 책이기도 하다. 술과 함께한 이들의 인생에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얹으며 같이 묘해져 보기도 하고 같이 울어보기도 하고 같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박기원의 독서와 메모, 그리고 예민하게 세워져있는 그 정신과 글빨에 감사하고, 숙취가 심하기 때문에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멍은하의 계절음식 즐기기를 따라해보고 싶다.

 

본문에서.. 


환원불가능성 때문에 용서하는 힘이 생기며,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약속하는 힘이 생긴다.

-한나 아렌트 (이 분 책도 읽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더불어 아직 읽어보지 못한 기형도 시인의 시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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