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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37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동물농장]을 읽다가 책 뒤에 편집된 저자의 글에서 [1984]의 모델이 되었다는 [우리들]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1984]를 다시 읽기 전에 선행독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서 [우리들]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읽는 동안 지금까지 보았던 SF영화 화면들이 마구마구 지나간다. 1920년대 쓰여진 글에서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는 요즘 살짝 들고 있는 단순한 세상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하고 몹쓸 생각이었는지 아주 꽉 꼬집어주는 듯 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수용소군도]라는 솔제니친의 책을 먼저 읽고 있었다. 촘촘한 글씨에 끝도 없는 연행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질려 버릴 듯 해서 이 책을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그 짧은 독서가 이 소설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볼셰비키 혁명을 열렬히 환영했던 저자는 혁명 초기에 갖었던 기대와 열정이 곧 혐오와 불안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된다. 그래서 삶이 완벽하게 정형화된 세상에 대한 소설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다. 폐쇄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와 자율성이 상실되어버린 획일화가 아름다움인 세상. 최근에 복잡한 일이 많아 '사람들이 좀 단순하게 생각하고 심플하게 살면 안될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상황이 극대화되면 이런 세상이 되겠구나 싶어서 소름이 돋았다.
29세기, 살아남은 자들의 도시사람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단지 번호로만 불리는 그들 . 전세계가 단일제국이라는 설정 아래 <은혜로우신 분>의 통치를 받으며,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똑같은 옷에, 똑같은 석유 식량을 먹고 그 음식마저도 몇번 씹으라는 법칙이 있는 곳이다. 투명한 집에 살고 성행위에 대한 것도 국가의 통제를 받아 같은 시간에 한다. '인쩨그랄'의 기사로 있는 D-503은, 이 단일제국의 아름다움을 기록한다. 그 기록은 특별한 경험으로 샛길로 빠져 극단적인 행동에 이르지만, 결국에는 통제 속으로 다시 들어가버리게 된다. 책을 덮으며, 유토피아의 이야기도 좋지만 왠지 디스토피아가 왠지 내 취향에는 더 맞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책은... 그렇게 술술 잘 읽히지는 않는다. 빠르게 화면 전환하듯 진행되는 소설은 혼란의 감정을 받아 들인 후에야 잘 읽힌다. 영화 본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좀 더 잘 읽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 책에서 나오는 풍경과 상황들은 내 상상력으로 구현하기는 좀 힘들었다. 영화의 부분부분을 따와서 상상해낸 세계를 훌륭한 화가가 구현해 내고, 그 구현된 세계가 책으로 나온다면 구입하고 싶다. 남의 상상력을 훔치고 싶은 욕구가 드는 책이다. 미스터노의 가벼운 책이 참 좋은데, 이제는 안나온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연관책읽기
[멋진 신세계],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