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나 학교 다닐 때는 책받침이나 연습장 표지에서 꽤 많이 볼 수 있는 유명한 분이셨다. 그 당시는 이 책의 표기와 다르게 '푸시킨'으로 알고 있었는데, 대표작도 아니었다는 그의 시가 한국에서는 어찌 그리도 자주 낭송되었는지 모르겠다. 삶이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속여서 그랬을까? 그런데도 슬프거나 노여워하기 싫어서?  재밌는 것은 첫부분을 제외하고 그 시를 암송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봤다.  뿌쉬낀에 대한 또 하나의 기억은 집에 있던 전집 중에 [예브게니 오네긴]이라는 제목의 책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의 저자도 모르면서 그 발음이 좋아 기억하고 있었다.  [청춘의 독서]로 읽게 된 책이건만 괜히 옛기억이 새록새록 한다.

뿌가쵸프의 반란을 소재로 쓰여졌다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피비릿내 나는 전쟁이 어쩌면 이렇게 평온하고 느긋하게 표현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쟁의 한 복판에서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는 애절하고 뜨겁기 보다 평온하고 여유롭다.  상황은 그렇지 않은데, 문체가 그래서 그런지 밍밍한 하이틴 로멘스를 읽는 듯한 착각도 든다. 전체가 다 평온한 느낌이다. 등장인물과 내용이 그다지 깊고 넓지 않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으나, 이 소설이 나온 배경을 알고 나니 그렇게 가볍게 읽을 일은 아니었다.  남편의 왕위를 빼앗은 아내의 정책들은 겉보기에만 훌륭했고, 그 덕에 농노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왕위를 빼앗긴 남편은 얼마 후 살해당한다. 더이상 참을 수 없는 농민들이 일어선 것이 뿌가쵸프의 반란이다.  그런데, 뿌쉬낀의 소설에서 남편의 왕위를 빼앗은 여제를 훌륭하고 공정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럴듯하게 주인공을 구해내기 위한 소설적 장치이려니 생각했건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단다. 여제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묘하게 그 반대에 선 뿌가쵸프도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정작 나쁘게 보이는 사람은 주인공의 아버지 그리뇨프 중령과 요새에서 만난 쉬바브린, 그리고 뒤가 좀 찜찜한 주린 뿐이다.  더군다나 반란군의 수장이고 참칭자인 뿌가쵸프를 이렇게 그려도 되나 싶게 호인에다가 자신의 미래를 두고 고민하는 남자로 표현했다. 죽는 그 순간에 주인공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였다는 이야기를 남기면서 뿔하나를 붙여도 모자랄 반란주동자에게 친근감을 부여한다. 그러면서 이 소설이 주인공인 그리뇨프의 수기인 척 한다. 재밌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지만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생각도 같이 했다. 하지만, 책 말미에 뿌쉬낀이 이 소설을 쓸 당시 러시아에는 변변한 단편도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장치 또한 꽤 큰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을까?  소설이 얼마나 대단한 소설인지 알 듯도 하다.  싱거운 맛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바닥에 깔린 사실을 딛고 생각해 보니 이리도 다르다.

책은 얇고 내용도 잘 읽힌다. 그다지 빨리 읽지도 못하는 내가 출퇴근 시간과 침대 위에서의 잠깐의 독서로 이틀만에 다 읽었으니 말이다. 책 상태는 아주 얇고 가벼워 읽기가 편하다. 역시 Mr.Know 시리즈 답다.  그리고, 러시아어에 대한 한글표기법이 정리되지 않아서 그런지 이름에 대해서 검색이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책마다 저자의 이름이 다르다. 그리고, 참칭자라는 말을 처음 봤다. 스스로 왕이라 칭하는 자를 말하는 단어라는데, 아직도 알아야 할 단어가 어찌나 많은지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불쑥불쑥 나온다. 고골에 대한 흥미로운 호기심이 생겼다. [죄와 벌]에서도 인용되었던 고골이 이 소설을 평한 부분을 보니 고골의 작품도 도전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