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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처음 읽는 것도 아니면서 책의 내용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몹시 답답하고 진력나는 느낌이 들었던 것만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어제 읽은 책도 가끔은 가물가물 한데, 읽은지 10년은 넘은 듯한 이 책의 내용이 기억날리가.. 특별판의 그림들이 정말 책의 내용과 맞아 떨어지나 싶은 궁금증이 생겼기에 읽었다. 시간이 지났건만 베르테르는 여전히 답답했고 어쩌면 영원히 친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럭저럭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베르테르는 어느날 작은 무도회에 초청을 받아 가는 길에 느닷없는 경고를 받게 된다.
“당신은 아름다운 아가씨를 알게 될 거예요.
조심해야 할 거예요.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왜냐하면 그녀는 약혼한 몸이니까요.”
그 말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베르테르는 핑크빛 리본을 달고 아이들에게 빵을 떼어주는 로테에게 집중하여 주변을 잊는다. 처음 만난 날인데도 그녀와 춤출 수 없는 순간들을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경고를 무시하고 마음을 놓아버린 베르테르는 로테를 만남으로써 날마다 풍족해지는 마음의 기쁨에 눈이 멀어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즈음,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토가 등장한다. 괴로운 마음을 안고 로테를 떠날 결심을 하는 베르테르는 나름의 멋진 인생을 꿈꾸고 B양이라는 여성과 사귀기도 하지만, 지위와 계급의식 그리고 허영으로 뭉쳐진 사람들에게 내동댕이쳐진다. 결국 지리한 유랑 끝에 이미 결혼한 로테 곁으로 돌아와 갖은 진상을 부리다가 죽어버린다. 그 사이사이 끼어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베르테르의 감정선에 따라 동정과 이해로 얼버무려지거나 배척된다. 베르테르라는 한 사람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함께 허우적거리다보니, 가수 박진영이 쓴 <희망고문>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약혼자도 있고 이제는 결혼까지 했으면서도, 갈피를 못 잡는 베르테르를 옆에 두고 위험한 수위에 말을 무심하게 던지며 발목을 잡고 있는 로테를 어찌봐야할지. 나는 순진한 얼굴을 갖고 있는 악마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로테 자신의 생각에 베르테르를 멀리하면 지금보다 더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핑계도 있었겠지만 적당한 타이밍에 끊어내지 못한 로테를 어찌 봐야할지. 입으로 새 모이를 주는 장면을 베르테르 앞에서 연출한 일은 분명히 유혹이었다.
자주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을 듣는다. 내가 어떤 베르테르 든지 만나게 된다면, 따뜻한 콩나물 해장국이라도 한그릇 하주면서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갑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