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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범죄 행위를 한적이 없고 특별한 정치활동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10년 또는 그보다 훨씬 긴 기간동안 가두고 노동시키고 굶긴다. 추워죽겠는데도 "작업장의 콘크리트판의 동결을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온도계까지 걸어 놓고 불을 때"면서도 정작 죄수들은 냉혹한 추위에 내몰며, 죄수들은 살을 에이는 추위에서 살아 남기 위해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한다. 애초부터 말도 안되는 것을 만들었기에 생겼다가 금새 사라지는 각종 규칙과 권력자에게 빌 붙어 같은 죄수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사람들, 감독관들, 소포 담당자들, 물건 보관자, 취사부원들, 일직당변들은 더이상 빨아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을 등처멱과 갈취한다. 기가막히다.
우리의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이하, "슈호프")는 포로로 생포 되었다가 탈출하여 되돌아 온 것을 사실대로(!) 말했다가 수용소로 잡혀 들어온다. 수용소에서 지낸지 8년, "일이란 것은 마치 막대기와 같아서 양끝이 있는 법이다. 영리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신경을 써서 일을 잘해야 하지만, 멍청이들을 위해서 일을 할 때는, 그냥 하는 철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안 그랬더라면, 벌써 오래전에 완전히 뻗어 버렸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만큼 현명해졌어도 배고픔은 사라지질 않는다.
현명해졌다는 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한일 일까? "감옥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 내년에 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운다든가, 가족에 생계를 걱정한다든가 하는 버릇이 아주 없어지고 말았다. 그를 위해서 모든 문제를 간수들이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런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는 생각을 할 만큼 슈호프는 수용소에 적응하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결국 "이젠, 자기가 과연 자유를 바라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실히 모를 지경"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을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잡아다가 삶을 무너트려 버렸다. 뭐, 이 사람의 삶만 무너졌겠나? 러시아의 역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이 소설을 읽어보며 살짝 훑어본 러시아는 정말 말도 안되는 세상이었다. 이 소설이 스탈린 치하의 노동 수용소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적나라하다는 말에 겁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세련된 문장에 간결하면서도 상황과 맞지 않게 문장이 아름다웠다. 정치적 구호나 비판 한마디 없이 인간의 비극을 그려낸다. 심지어는 이 하루를 읽고 있는게 흥미롭고 남의 불행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민망하지만, 재밌(!)기까지 하다. 본인이 직접 수용소 생활을 한적이 있고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을 흐림없는 눈으로 봤다고 해도 이런 글을 쓴 솔제니친 선생은 분명히 천재시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을 때, 이반 데니소비치가 두 그릇의 국을 정성껏 마시는 부분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을 읽고 이 소설을 읽고 싶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소설을 보니, 슈호프의 과거의 맛 회상이 더 마음에 감겼다.
"소용소에 들어온 이후로 전에 고향 마을에 있을 때 배불리 먹던 일을 자주 회상하고는 한다. 프라이팬에 구운 감자를 몇 개씩이나 먹어치우던 일이며, 야채를 넣어 끓인 죽을 냄비째 먹던 일, 그리고 식량 사정이 좋았던 옛날에는 제법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먹었던 때도 있었고, 게다가 배가 터지도록 우유를 마셔대던 일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렇게 먹어대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를 해본다. 음식은 그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어야 제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이 빵조각을 먹듯이 먹어야 하는 법이다. 입 안에 조금씩 넣고, 혀 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침이 묻어나도록 한 다음에 씹는다. 그러면, 아직 설익은 빵이라도 얼마나 향기로운지 모른다." 이 문장을 읽은 후로는 밥을 천천히 먹게 되었다.
결국 두꺼우나 잘 읽히는 이 책의 하루를 다 보낸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절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을 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이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 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그나마,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의 일상을 정리하는 이 문장을 읽고 나서 그의 내일을 생각자나니 내 어깨에 힘이 다 빠진다.
나는, 분명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설가라는 생각은 안했던 것 같다. 이 책 표지에서 솔제니친이라는 이름을 보고 러시아 정치가 이름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2008년에 돌아가신 이 소설가 양반을 생전에 알지 못했던게 미안해졌다. 물론 나 하나 몰랐다고 섭섭해하시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러시아 이름 때문에 애쓰면서 읽을 필요가 없었다. 수용소의 특징 때문인지 부칭과 애칭을 써서 곤혹스럽게 하지 않았다.
책을 보고 무심결에,
"하루라며, 장난해?"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책이 너무 두꺼웠다. 민음사에서 특별판으로 만든 책이다.
책을 펼쳐보니 왼쪽은 붉은 색으로 페이지 번호가 적혀 있다.
페이지 번호는 마치 필기구 없는 사람이 벽에 막대로 그어서 날짜 세는 듯한 모양이다. 잘 살펴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한편에 페이지 번호가 차지하고 있으니 책이 이렇게 두껍지 싶다가도 두께만큼 무겁지는 않아 실내용 책만이 아니라 실외용 책도 가능할 듯 싶다. 물론, 나의 경우.
책이 참으로 단단하게 생겨서, 탐이난다. 그러나, 정가가 28,000원이라고 쓰인 뒷페이지를 보고 주저하게된다. 한권씩 팔지도 않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