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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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에 이어,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거친 후, 작가의 첫 장편인 [사과는 잘해요]를 만났다. 역시, 이기호다.

소설은 '죄를 찾다', '죄를 만들다', '죄를 키우다' 이렇게 3장으로 나눠져 있다. 나름의 사연으로 시설에 들어가게된 나와 시봉은 복지사의 구타 속에 우정을 키워가고, 지워진 반장이라는 책임 하에 죄를 찾아내고 사과를 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러다, 우연찮게 누군가를 도와(?) 주다가 내부고발자가 된다. 의도 하지 않은 일로 자유를 되찾은 둘은 시봉의 누이를 찾아가 빌 붙게되고 함께 빌붙어 있던 뿔테 안경과 대신 사과해주는 사업을 하게된다.

처음부터 대신 사과해주는 사업을 하게된 것은 아니다. 소일거리로 아파트 주위를 둘러보던 시봉과 진만에게 딱 걸린 지나치게 사이 좋은 과일가게 사장과 정육점 사장은, 정육점 사장에게 접근해 대신 사과할 꺼리를 만들어낸 둘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둘의 우정을 뿌리채 흔들고, 결국에는 정육점 사장이 떠나도록 만들어버린다.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이리도 연약한 것인가? 배드민턴 공을 높이 띄웠다던가, 도시락 반찬을 두번 더 집어 먹었다던가, 파라솔 의자에 먼저 앉거나 캔맥주를 더 빨리 마신 것도 죄가 되고 사과의 대상이 된다는 이들의 말에 정육정 사장의 마음에 생겨벼린 그 죄책감의 무게는 관계를 망치기에 넘치고 남음이다.

"죄는요, 사실 아저씨하곤 아무 상관 없는 거거든요."
"아저씨가 생각하는 거, 모두가 다 죄가 될 수 있어요."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한 이 세명. 사과를 해야만 하고 사과가 완수 되어야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강직한 시봉과 진만의 사과에 뿔테 안경은 결국 희생된다. 분식집 모자를 보며, 과연 사과가 사과인 세상인걸까라는 의문을 갖게된다. 

"나중에 혹시 나한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말이야."
"그러면?"
"그냥 너한테 해."
"나한테? 너한테 할 사과를?"
"응."
"왜"
"뭐, 내 대신 네가 받아도 되니까." 

이 말을 듣자마자 시봉에게 죄를 짓고 싶어지던 진만은 결국 크게 사과할 일을 만들어버린다. 죄와 사과. 사과가 정말 사과인 것일까? 죄를 권하고, 대신 사과하고 큰소리 칠 수 있는 세상이라. 씁쓸하다.

시설에서 죽은 두명에게 죄를 묻는 시봉과 나. 그 거짓없는 투명한 눈으로 죄를 물음에 대답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 물음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을 터, 당연히 자살로 갈만했다. 읽을 때는 경쾌하고 재밌으나 생각할수록 뒷끝이 씁쓸해지는 소설이다. 특히나 진만의 사정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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