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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 종암에서 힐탑까지, 1세대 아파트 탐사의 기록
장림종.박진희 지음 / 효형출판 / 2009년 4월
평점 :
2009년 10월 4일 수락산에서
나는 아파트가 많은 동네에 살고 있으나, 정작 아파트에 살지는 않는다. 내가 사는 동네는 수 많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얼마 안되는 주택지이고, 우리집은 주택지와 아파트가 면한 곳에 있다. 옥상에 올라가 보면 아파트의 한 면이 앞을 막고 있고 그 반대쪽은 엇비슷한 높이의 주택지들이 보인다.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서 아파트를 보면서 처음 드는 생각은, 왜 저런 건물이 집단적으로 생겨났을까라는 의문이었다. 내가 서울에 올라오기 전에 상계동이 겪었던 재개발 열풍에 갖은 것 없는 사람들이 쫓겨나듯이 나갔다는 이야기와 그 사람들을 내보내려고 고용된 철거꾼들의 행패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말을 여러번 들으며, 저 아파트들이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겠구나라는 생각부터 했었다. 사람이 사는 집인 아파트가 수시로 가격이 오르락 내리락하고, 주민들이 담함하여 아파트 값을 올리려는 한다는 이야기에 사람살기 피곤해지는 주택이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같은 단지 안에서도 평수로 분류하여 아이들도 끼리끼리 논다는 정없는 마을. 더불어, 겁많은 나에게 엘리베이터와 관련된 아파트 괴담은 아파트에 대한 내 부정적인 생각을 부추겼고,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네 집에 방문했다가 하루에도 몇번씩 뛰지말라고 말해야하는 상황과 뛰지 말아달라고 몇번을 쫓아 올라가야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보니 아파트는 나에게 너무나 멀고 먼 곳이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그 특이한 집단주거 건축물이 궁금했다. 높은 곳에서 일은 괜찮아도 잠은 못잘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공중에 한참 떠 있는 집에 대한 느낌은 촌티를 못벗은 나에게 아직도 발끝이 아득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의 연구는 아파트 자체에 집중하고, 오래된 아파트에 대해 주목했다. 그 결과 괜히 남의 사정 다 아는 사람 마냥 아파트가 생물처럼 따뜻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100년이 넘지 않은 아파트 역사 중 초기 아파트의 기록을 쫓가가며, 이미 훼손되고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 사라지거나 사라질 아파트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사이 일어난 큰 일들과 성급하게 이루어진 주택공급 정책으로 인해 생겨났던 부실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파트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참 많이 좋아졌구라는 생각을 하게했다. 이 기록은 아무것도 없는 맨 바닥에서 시작했고 10여년이 넘는 탐사와 기록, 추적으로 찾아낸 사진과 부족한 도면과 인터뷰로 벽돌 하나하나 쌓아 올리듯 이루어졌다. 몇몇 아파트는 가까이 본적이 있는 곳들이고 사라지는 것을 본 적도 있어서 그런지 이웃 이야기를 읽고 있는 느낌이 들어, 오래되고 아직도 남아 있는 그 건물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파트들이 아직까지 정 없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당시의 필요성에 의해서 생겨났다는 것을 나름대로 인지했고 그 덕분에 아무도 모르게 아파트와 화해를 했다.
책이 참 예쁘다. 사이즈가 약간 크고 600g에 육박하는 무게 때문에 한손으로 들고 읽기는 좀 힘들지만, 도시를 가로지르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완성하지 못하고 작고하신 장종림교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