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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팝업북에 탐닉한다 ㅣ 작은 탐닉 시리즈 13
앨리스설탕 지음 / 갤리온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적 건너편 즈음에 영어 교재 파는 집이 있었다. 서울에 올라온지 얼마 안된 촌 아이였던 나는, 영어의 생소함과 더불어 그 알록달록한 색감에 놀라서 쇼 윈도 안에 멋들어지게 펴 놓은 책을 마음껏 구경도 못했다. 멋지게 일어서 있는 종이 모형들에 사로잡혔으면서도 선듯 들어가 보지를 못한 것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들어가면 창피 당할까봐서였고 창피 안당하려면 하나 사가지고 나와야할텐데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겁도 나고 그래서였다. 그냥, 구경한번 하면 될 것을 어찌나 생각이 많았던지. 지금 생각하면 그 집에서 전시되어 있던 팝업북은 꽤 단순한 것이었는데도 너무 인상적이었다. 나는 책을 펼때마다 종이모형이 벌떡 일어서거나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도 못해봤으니 말이다.
그 후, 꽤 시간이 지나 로버트 사부다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만나고 그 책을 구입했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찔했다. 너무 감동받은 나머지 그 즈음에 생일이었던 친구들에게 결코 싸지 않은 그 책을 선물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검색하고 가끔 구입하다 보니 로버트 사부다의 팝업북은 몇권 갖고 있다. 가끔 우울한 날 펴보면서 압도적인 입체 종이들에 넋을 놓고는 한다. 그러다 우연히 팝업을 검색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나처럼 설렁설렁이 아니라 정말 탐닉하며 모으고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니! 팝업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오래 전에 만들어진 아기자기한 팝업북들을 실제로 보고 싶어졌다. 그 영향을 받은 것일까? 마냥 놀랍고 페이지 펼칠때 마다 쑈가 펼쳐지는 바람에 글씨는 읽게 되지 않는 로버트 사부다의 팝업도 좋지만, 수수한 일러스트가 멋스러운 팝업도 은근히 꿈꾸게 되었다. 비싼 빈티지가 아니라 새로 나오는 것이라도 유심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이 나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즐거운 밥벌이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책에서 알게되었다. 누구는 같은 걸 보고도 이렇게 다르게 생각하는 걸 보니, 나도 뭔가 탐닉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탐닉을 꼭 배가 부르고 한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수수한 사치를 못 부리는 나는 뭔가 싶기도 하다. 길고양이에 이은 내가 읽은 두번째 [작은 탐닉]인데, 이 시리즈가 은근히 마음에 든다. 저자 부부가 있는 가로수길로 나들이 한번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 상태는 손바닥 보다 약간 큰 것이 두껍지 않아 들고나지면서 읽을만하다. 책을 처음 훑어 볼 때는 이걸 읽고 팝업북에 대해서 뭘 알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올 컬러로 인쇄되어 있고 나름대로의 상세한 설명이 있어 직접 보지 않은 팝업북들도 대충 어떻게 움직이는지 상상이 된다. 그래도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