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류진운 저/김영철 역 | 소나무 | 2004년 02월 | 페이지 307 | 436g | 정가 : 9,500원
중국소설이라면 『허삼관 매혈기』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누군가의 추천글이 있어서 이 책을 충동구매했었는데, 읽어보니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임林의 집에 두부 한 근이 상했다!'로 시작하는 『닭털 같은 나날』은 개인의 지리멸렬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학을 나오고 북경에서 맞벌 생활을 하는 임씨네 부부는 두부 한근 때문에 속상하고, 물 값을 절약하려고 수도꼭지를 가늘게 틀어 물을 훔치다가 검침원에게 망신당하고(우리집도 전에 이런적이..), 직장을 옮기려고 뇌물을 쓰다가 좌절하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고향사람들 때문에 아내와 갈등이 생기고, 데리고 있는 어린 가정부 때문에 맘 상하고, 결국 그 가정부를 내보내고 아이를 유치원 보내려 노력하다가 결국 보내게 되는데, 그것도 영 뒷끝이 깔끔하지가 않다. 북경과 서울의 삶은 분명 다르지만 뭔가 익숙하다. 자존심이나 체면보다 순간순간 살아가는게 중요할까? 그래서 오랜만에 뵌 은사님의 병실에도 찾아뵙지 못하고 부고 편지를 받고 마음이 영 그렇다. 사는데 뭐가 중요한 것일까? 정말 삶은 닭잡고 흐트러진 닭털 같은 것일까?
그 다음 소설은 읽다가 문득 『저수지의 개들』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관리들 만세』는 1명의 국장과 7명의 부국장과 그들에게 닥친 조직 개편 소식으로 들썩이는 이야기다. 누가 살아 남을지 누가 누구와 무슨 관계일지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정말 이 사람들이 혁명을 한 사람들인가 싶게 개싸움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누군가 살아남고 누군가는 비참하게 떨려나간다. 정말 허망의 극치다. 조직이라는게 다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역사를 뒤돌아보는 『1942년을 돌아보다』는 소설인지, 다큐인지 아리송하다. 1942년 류진운의 고향인 하남성에서 300만명이 굶어죽어 때로는 사람의 먹이가 때로는 개의 먹이가 되는 끔찍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그 당시 중국을 통치하던 장개석은 그 사실을 믿지 않고 결국 미국인 기자가 찍은 사진(개들이 사람을 먹는 사진)을 보고서야 구호명령을 하달하고 그 움직임도 참으로 기가막히다. 하달 명령에 내려간 구호물은 정작 어려운 사람들에게 적시에 도착하지 못하거나, 누군가가 떼어먹고, 이미 배 부른자의 배를 또 한번 더 불린다. 정치하는 이와 일반인이 한 하늘 아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인가?
"차라리 굶어 죽어 중국 귀신이 될 것인가?
아니면 굶어 죽지 않고 매국노가 될 것인가?
당장 내 가족이 굶고 헐 벗는다면, 주저하겠지만 결국에는 매국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