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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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그랬어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이야기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몇 발짝 떨어져 누군가의 삶을 ‘관찰하는’ 사람이 된다.

<바깥은 여름>에서는 상실의 아픔이 그대로 전이되어 목에 울컥하는 무언가가 끝내 넘어가지 않았다.

이번에 읽은 <안녕이라 그랬어>는 자본주의,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치는 ‘계급’이라는 벽을 보여준다.

그 앞에서 느끼는 우월감과 박탈감, 막막함은 결국 ‘나’라는 자리로 되돌아온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 모든 것이 ‘장소’를 통해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내가 사는 곳, 머무는 곳을 넘어 내가 서 있는 ‘자리’와 ‘공간’. 그곳에서 만난 누군가를 통해 나는 나를 정의하게 된다.

생경하게 느껴지는 공동체와 이웃, 어색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눈물도 나는 현실적인 대화들.

그래서 신형철 평론가가 김애란 작가를 두고 ‘사회학자’라고 평한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처럼
서로의 ‘안녕’을 묻는 마음만큼은 쉽게 놓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인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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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i0330 2026-03-12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문하여 잘 읽고있습니다. 진인들에게도 강추 합니다.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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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임금을찾아서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봄알람 부스에 들렸다가 구입했던 책. 올해 여성의날을 맞이해서 집에 있는 페미니즘 책장을 뒤적이다가 골랐다. 읽을 시간이 부족해 비로소 어제 다 읽었다. 얇은 책이지만 읽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밑줄을 여러 번, 많이 긋기도 했지만 놀라움과 분노를 다스리며 읽어야 했기 때문일지라.

"한국에서 여성이 더 받았어야 하는 임금의 액수를 구하시오."

가뜩이나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데 단순한 계산 문제가 아닌 이 문장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더 받았어야 하는 임금의 액수라니. 단번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나 또한 그랬다.

OECD '성별 임금 격차' 통계에 포함되기 시작한 199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은 OECD 회원 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다. 줄곧 최하위,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다. 유리천장, 유리 에스컬레이터, 여성 임금 M자 곡선까지. '우리나라만큼 성평등한 나라가 어디있나', '여성과 남성이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라는 수많은 반대 주장에 작가는 차근차근 설명한다. 여성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잃어버린 임금이 발생하는지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래도 옛날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어지는 여러 사례를 보면 놀랍기 그지 없다. 어느 지역의 작은 규모의 회사가 아니라, 우리가 알 만한 대기업과 협회, 특정 직종이 아닌 다양한 직종에서 "여성이니까, 여성이라서"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행해졌던 차별이라는 폭력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매킨지글로벌 연구소가 성평등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 효과의 총합을 계산한 것이었다. 여성의 경력 단절로 인해 한국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매년 '15조원'으로 산출된 것. 성차별을 극복하고 성평등을 만들어냈을 때 단순히 여성에게만 이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 묘한 후련감이 느껴졌다.

이민경 작가는 한국 사회 내에서 성차별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임금'을 통해 이야기 한다. 처음 작가의 책을 접했던 것은 20대 중반쯤, "내가 여성이지만 페미니즘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라는 나의 말에 한 언니가 추천해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어렵기만 했던 페미니즘이 내가 살아가는 삶 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도였음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느꼈던 기억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생존 그 자체를 좌지우지한다. 그런 점에서 생계수단으로서의 '임금노동'을 통해 한국 사회의 성차별을 짚어낸 이 책은 출간된 지 근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극심해지고 있는 불평등 문제는 재분배의 문제로도 접근해야 하지만, 삶을 위해 노동 하고, 임금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그 시기부터 바뀌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차별은 불평등을 낳고, 그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편중된 빈곤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하나의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면, 이것을 구조적 차별이라고 부르지 않고 무엇이라 해야 할까.

성평등 임금 공시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대선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고, 여러 정당에서도 이야기 되고 있다. 임금의 투명한 공개는 성별 임금 격차 해소의 시작점이 될 것이기에 하루라도 빨리 하지만 보여주기식은 아닌 진정한 '성평등 임금 공시제'가 도입 되길.

🔖삶의 갖가지 국면에 숨어든 성차별이 여성의 경제력을 전 생애에 걸쳐 뭉텅뭉텅 덜어내고 야금야금 깎아낸다.

🔖차별은 '여자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증명해낼 때가 아니라, 이 말이 '남자라도 할 수 있다'만큼 우습게 드릴 때 사라진다.

🔖고정관념은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옷의 종류 같은 수평적인 폭뿐 아니라 직장에서 점할 것으로 기대되는 수직적인 지위에까지 포괄적이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취가 그늘에 가려지는 현상, 마틸다 효과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같은 층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임금만큼은 금세 찾아낼 수 있다. 다양한 나라에서 임금공시제와 같은 제도를 추진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 더, 우리는 답을 구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도 이 문제에 끈질기게 매달려야 한다. 답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거듭한다면 여성은 지금껏 모르고 지나쳤던 임금 차별의 국면들을 보다 세세히 포착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진작 거머쥐었어야 할 임금을 얻어내서 생활 여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순간을 현실로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영영 드러나지 않을 줄만 알았던 것을 기어코 드러나게 하는데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드러난 이상 시간이 얼마나 걸렸든 반드시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겪고 각자의 자리를 지킨 모두에게 빠짐없이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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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영광 새소설 22
권석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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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아 재밌게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예능 PD 출신인 권석 작가의 장편소설인 『코미디의 영광』은 말 그대로 코미디에 영광을 바치는, 코미디의 영광을 만들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3대째 이어져 온 목회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전도사 출신인 주인공은 T방송국 18기 공채 코미디언이 된다. (비록 추합이지만..) 그리고 현재는 이벤트 회사, 출판사, 보습학원 강사를 거쳐 택시기사가 된 최사무엘.

이야기는 코미디언 생활을 떠나 택시기사로 살아가는 현재의 최사무엘과 과거 코미디언 시절의 최사무엘, 그리고 18기 동기들의 시간을 오가며 전개된다.

나를 웃게 하고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코미디의 마술에 빠져서 코미디언이 된 사람, 너무나 코미디를 사랑해서 오랜 시간을 견뎌 코미디언이 된 사람, 연기가 하고 싶은 코미디언부터 시작하게 된 사람까지. 각기 다양한 사연을 가진 T방송국 18기 공채 코미디언들 최사무엘, 마우돈, 나우주, 김철수, 조은별이 등장한다.

마냥 화려한 무대 위에서 코미디를 선보이며 멋진 삶을 살 것이라 생각했던 ‘코미디언’의 무대 뒤 모습을 이 소설은 여실히 보여준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올릴 코미디를 만들어가는 과정부터 위계와 폭력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실제 예능PD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보면 ‘어? 그 방송국의 그 프로그램 아니야?’ 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권석 작가는 분명히 말한다. ‘전부 창작된 허구’라고. 믿어야지, 어쩌겠는가. 하하.

각자의 삶을 살며 코미디와 멀어졌던 동기들은철수의 유언에 따라 그의 장례식에서 오랜만에 코미디를 하기 위해 뭉친다.

코미디와 멀어진 삶을 살다가 다시 무대에 서려니 막막하고 쉽지 않다. 그럼에도 다섯 명은 코미디에 대한 열정과 설렘이 가장 뜨거웠던 시절 준비했던 ‘풀 몬티’ 공연을 다시 해보기로 한다. (이후의 전개에는 반전이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읽는 동안 웃다가, 화가 났다가, 눈물이 찔끔 났다가 다시 웃게 되는 감정의 진폭을 자연스럽게 겪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코미디가 아닐까. 이 책은 코미디 그 자체다.

권석 작가의 코미디에 대한 뜨거움과 애정, 그리고 존경존경의 마음은 문장 곳곳에 묻어있고, 그 마음은 등장인물에게 고스란히 투영된다.

‘풀 몬티’. 각자가 개그를 펼치고 평가를 받아 재미없으면 옷을 벗는 그 공연운, 단순히 벗는 행위가 재미있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코미디에 대한 열정을 가진 생계형 코미디언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훌훌 벗어던지고, 각자의 상처를 날려버리며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코미디의 영광』은 그렇게 또 한 걸음 성장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코미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한때 무언가를 진심으로 뜨겁게 좋아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전하는 마음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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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 지하 대피자들
전예진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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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지하대피자들
#전예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책 후기

“혹시 뭐가 잘 안 되면, 적강산 고라니 매점으로 와요.”

처음 <매점 지하 대피자들> 알게 되었을 때 만난 문장이다.고라니의 당찬 울음소리처럼 내 걱정과 고민을 날려줄 것 같은 매점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전혀 아니었고, ‘왜 고라니 매점일까’라는 질문이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선우가 왜 고라니 매점에 가게 되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니, 나 역시 어느새 적강산 고라니 매점에 도착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끊은 채 도착한 매점 지하의 ‘호텔’. 그러나 그곳의 어메니티는 헤드랜턴과 야전삽이었다.

숙박 공간은 직접 굴을 파서 만들어야 하고, 몇 가지 규칙이 존재하는 고라니 호텔. 선우는 그곳에서 어찌저찌 살아가기 시작한다. 몇 번이나 도망가고 싶어 했지만, 선우보다 먼저 굴 속에 살고 있던 혜원, 영수, 재경을 만나며 그곳에 계속 머물게 된다.

이 소설은 화려하다고 말하기 엉렵다. 고라니 매점 지하 호텔에서 만난 선우, 혜원, 영수, 재경. 이 네 사람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나는 나를 힘들게 했던 잘못된 관계들, 잘못된 믿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 역시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굴에 숨어버리고 싶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멈춰 있었기에 한숨 돌릴 수 있었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는 ‘틈’이 생겼다. 라운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 풍경이 전부인 것처럼 마음이 놓였던 선우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더이상 잘못된 관계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과 서로 돌보고, 힘을 합치며 만들어지는 고라니 (호텔) 공동체의 모습을 흐뭇하게 다가왔다. 서로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보다, 지금 무엇을 할지 함께 고민하고 응원하는 공동체.

책을 덮어갈수록 ‘왜 고라니 매점일까’에 대한 나만의 답도 떠올랐다. 고라니는 보호받는 야생동물이면서도 농작물 피해로 인해 혐오와 민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문제로 취급받는 존재. 굴 속에 사는 이들 역시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일상적인 ‘매점’이라는 공간의 ‘지하’에서, 세상의 시선을 피해 각자의 이유로 대피해 있는 고라니 같은 사람들. 그래서 고라니 매점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갈수록 급작스런 인물들의 등장에 놀라기도 했고, 이내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의 반영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이러면 안된다’의 ‘이러면’의 기준이 무엇일까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이들이 ‘잘 살기를’기대하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덮고 나니 왜 조마조마 했을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되묻게 되었다. ‘잘 산다’는 기준을 내 마음속에서 이미 만들어두고 있었기 때문에 불편했던 건 아닐까.

굴 속의 이들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 대피하고 싶었던 잘못된 관계와 믿음은 ‘자신의 기준과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고 그 판단이 옳다고 믿는 태도’가 아니었을까.

요즘 ‘쉼 청년’, ‘쉬었음 세대'에 대한 기사를 자주 접한다. 이 단어 자체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이들을 다시 사회로 끌어 당겨 경제활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정책의 목표가 되는 사회가 오히려 청년들을 더 깊은 굴 속으로 밀어 넣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로 규정하기 보다, 무엇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매점 지하 대피자들>은 숨을 고르기 위해 굴에 들어가든, 어디에 있든, 그 선택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책이었다.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몇가지 뽑아본 문장

“우리가 어디서 뭘 하든,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로 남으면 좋겠어요. 내가 보잘것없다고 느껴질 때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기억으로."

“잘될 거에요,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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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안전가옥 오리지널 47
전효원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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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열심히 읽고 남긴 주관적 후기입니다.

니자이나리는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뜻이라고 한다.
처음 이 문장을 읽을 때는, ‘당신’이 누구인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책을 덮을 무렵,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민 여성 부응옥란.
동네에서 발생하는 일 중, 결혼 이주민이나 이주 노동자가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반응하고,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일 앞에서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인물이다.

누룽지 공장에서 일하던 이주 노동자 체체크에게 벌어진 사건을 계기로, 부응옥란은 대상축산 사장의 외동딸 김유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유정은 자신의 연인이자 대상축산의 직원인 중국인 이주노동자 문소평이 사라졌다며 다시 부응옥란을 찾아온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울 마장동 축산물시장으로 향하고,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500여개의 점포가 밀집한 거대한 시장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부응옥란의 예리한 관찰력과 친화력 덕분에 그들은 조금씩 사건의 실마리에 다가간다.

전효원 작가에게 익숙한 공간이어서일까. 마장동 축산물시장에 대한 묘사는 유난히 생생하다. 대상축산 안에서 일하는 민수 삼촌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내가 그 실제 그 공간 안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과거의 서사, 그리고 부응옥란과 유정이 서로를 신뢰하며 ‘우리’가 되는 현재의 시간은 평행선을 달리다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그 연결고리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한 줄 한 줄을 더 꼼꼼히 읽었고, 책을 덮고 나서는 “아, 이게 그거였구나.”하는 마음으로 다시 처음 페이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행방이 묘연한 문소평을 따라가며 마주하게 되는 것은, 켜켜이 쌓여온 혐의 역사다. 그리고 그 혐오는 이미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것은 특별한 몇 장면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장동의 공기처럼 곳곳에 묻어 있다. 쉽게 내뱉고, 쉽게 잊히는 말들 속에.

책을 읽으며 고용허가제, 강제추방, 단속 같은 단어들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몇달 전 접했던 한 사건 때문이었다. 토끼몰이식 강제단속을 피해 숨어 있다가 추락해 사망한, 20대 이주노동자고 뚜안님의 이야기. 언론에 보도된 이후에야 알게 된 그 죽음은, 이 이야기가 결코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마치 무거운 추가 달린 듯한 감각. 그럼에도 그 무게는 나를 이야기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숙이 끌어당겼다. 부응옥란과 주변 인물들 사이의 케미, 국대의 속담 같은 유쾌한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내내 무겁지만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주민을 비롯해 부응옥란&유정 콤비를 도와주는 시장의 약자들, ‘을'들의 연대 역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래 남은 것은 제목처럼 찾지 않는 이름들, 사라지고 지워져버린 이름들이었다. 나는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그 이름들을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이야기가 끝난 뒤 이어지는 작가의 말과 프로듀서의 말까지 읽고 나서야, 이 책이 비로소 온전히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거리에 무심히 걸린 혐오 표현의 현수막들,
카더라보다도 못한 왜곡된 정보의 영상들,
그런 것들에 익숙해지며 내 안에 편견과 선입견, 혐오가 자라고 있지는 않았는지,
혹은 애써 외면하고 지워온 것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책.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그런 질문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건네는 소설이었다.
국대의 말처럼, 우리는 같은 지구인이니까. 지구인이라면 한 번쯤 꼭 읽어보면 좋겠다.

그리고 책은 안전가옥 팝업 ‘장르연회: 더 갈라’에서 최초로 판매했다가 이제 만인들을 만나기 위해 나타났다.

이주민에 대한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사회에서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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