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소설 제목이 <곰탕>?


 미래에서 곰탕 맛을 배우러 현재로 온 고아 우환은

 예기치 않게 가족을 만나게 되면서

 다시 미래로 돌아가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용기를 낸 이 선택은 참사를 불러일으킨다.

 우환의 행복을 바랐던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아니, 좀더 일찍 남기로 선택을 하지...

 순희에게 그냥 강희의 임신 사실을 알려주지...

 강희를 좀 찾아가지...

 그런 선택은 하지 말지...

 

가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이미 가족인 것.

그들이 서로 살갑지 못해서 오해하고 멀어지더라도.

우환, 순희, 강희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종인.

종인은 우환이 순희 곁을 지켜주기를 바랬고

우환은 사려깊지 못한 선택들을 하지만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묵묵히 곰탕을 만들고

강희는 끝까지 아이를 지켰으며

순희는 아이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의 길을 택했다.


그래서 이야기는 양창근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됐고 

양창근은 만족스러운 곰탕을 먹는다.

그리고 이 곰탕이 결국 다시 우환으로 하여금 가족을 만나게 한다.


<곰탕>이라는 제목과 달리 굉장히 빠르게 전개되는 소설이라 

2권 모두 금방 가슴 졸이면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이구나, 깨닫기 시작하자 많은 문제가 생겼다. 깨달음이 그렇다. 깨닫기 전에는 인생이 편하다. 하지만 깨닫고 나면 걸리는 게 많아진다. 깨달았으니까 똑같이 살면 안 되는 것 같다. 깨닫기 전으로 돌아가려 하면,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라는 질문을, 남에게, 주로 어른에게 듣던 그 질문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반복하게 된다. 깨닫고 나면 평온이 찾아올 거 같지만 사실은 아닌 거였다. 망할. - P115

아버지는 아들만 기다렸지만, 아들은 더 이상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며칠 만에 그렇게 되었다. - P57

"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든 게 달라졌다. 니가 태어난 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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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박스>를 읽어보려고 하는데 이 소설이 편지로만 엮인 소설이라고 해서 편지로 엮인 소설들을 나열해봤다. 이중 <채링크로스 84번지>만 서가산책에 있어서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보고 정리해보고 싶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처럼 소설이 아닌 책들도 보고. 늘 보고 싶은 책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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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보지는 못했지만 옥주현이 부르는 뮤지컬 곡 '레베카, 나의 레베카~'는 꽤 많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레베카>가 궁금했다. 

 알고보니 히치콕 감독이 만든 영화 <레베카>의 원작 소설이었고 그 유명하다는 <새> 역시 이 대프니 듀 모리에 소설이 원작이라고 한다. 대단한 소설가! 

 

 미국 부유한 부인의 여행 동반자로 말벗도 하고 비서 노릇도 하는 어린 아가씨 '나'는 몬테카를로에서 영국 유명한 저택 맨덜리의 주인이자 얼마전 아내를 사별한 맥심을 만나 결혼하게 되고(바로 얼마전 봤던 '제인 에어'가 떠오름) 엽서에서만 봤던 맨덜리로 온다. 하지만 맨덜리 곳곳은 전 안주인 레베카의 흔적으로 가득하고 레베카의 충복이었던 집사 댄버스 부인은 '나'에게 차갑기만 하다. 게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완벽했던 레베카를 소환하는 통에 자꾸 비교 당하는 것 느낌이고 결국 맥심과의 사이마저 조금 냉랭해지고 만다.


 맨덜리를 지금과 같은 명성을 가진 대 저택으로 만들고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던 아름다운 레베카와 그녀의 존재를 무시할 수도 없고 뛰어 넘을 수도 없는 '나'.

 죽어서도 그 이름이 빛나고 있는 레베카와 현실에 존재하고 있지만 이름도 나오지 않는 '나'.

 너무나 무력한 대결이다. 

 맥심과 '나'는 레베카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지 끝까지 읽어보시길.




히치콕 영화.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제인 에어' 역을 맡은 적도 있어서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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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오는 어린이들 이야기가 하나같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소개해준 저자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고

  그러다가 내가 어린이었던 시절, 내 아이들이 어린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 시간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볼 때마다 좋은 책이다.

원래는 내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 무엇이 되었든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세계를 정비하려던 것이었다. - P5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발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 어린이는 나중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 P18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기에 세상이 거칠기 대문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는 말이 약하다는 말처럼 들릴 때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더 큰 이유는 어린이들이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 두려워서다. 착하다는 게 대체 뭘까? 사전에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 뜻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 어린이게게 착하다고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하는 건 너무 위계적인 표현 아닌가. - P32

"서로 몸이 달라도 같이 놀자."
그 순간 나는 예지에게 백오십 번째로 반했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존중‘이라는 단어를 가르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기회를 줬다. 예지는 이번에는 이렇게 썼다.
"서로 몸이 달라도 반겨 주자."
백오심 한 번째 반한 상태로 나는 두 문장 옆에 각각 하트를 그리고, 조그맣게 ‘존중하자‘라는 말도 적었다.
- P36

"나눠 줘요!"는 ‘곱고 바른 말‘이고, "같이 놀자""반겨 주자"는 ‘상냥한 마음씨‘다. 사전 뜻 그대로다.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됙ㅆ다. 머리에 불이 붙고 속이 시커매질지라도 포기하지 않겠다. 이상한 일이다. 책은 내가 어린이보다 많이 읽었을 텐데, 어떻게 된 게 매번 어린이한테 배운다. - P37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P45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이 말을 더올릴 때마다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 P63

"이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엔 제 마음이 있어요." - P72

"선생님, 저희는 일을 안 해도 돼요. 엄마 아빠가 사 주세요."
...
하긴 아직 어린 사람들이 중년의 멋과 여유, 자유로움 같은 걸 어떻게 알겠어? 다들 커 봐야 알지. 공부도 하고, 방황도 하고,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고, 응? 이런저런 경험도 하고 말이야. 응? 열두 살이 알긴 뭘 알아! 너희가 뭘 알아! 그날 밤에는 분해서 잠이 안왔다. - P82

나는 ‘개성‘이라고 하면 유별난 점, 뚜렷이 드러나는 특징, 남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독보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면서도 장점이나 장점으로 봐 줄 만한 무언가여야 개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 없으면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들 덕분에 개성이란 ‘고유성‘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 - P86

나는 어린이들의 존댓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서로서로 존댓말을 쓰고 친한 사이에만 반말을 쓰는 세상이 되면 좋겠지만,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는 어린이의 말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겠다고 다짐한다. 어린이가 표현한 것만 듣지 않고, 표현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겠다고. 어린이가 말에 담지 못하는 감정과 분위기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어른이 되겠다고. - P192

나는 어린이 고객에게 존댓말을 듣는 대신, 낯선 어린이에게는 상황 불문하고 존댓말을 쓴다. 상대가 어른이라면 하지 않을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가 너무너무 귀여워도 계속 바라보거나 어르는 말투를 쓰거나 하지 않는다. - P193

한 명은 작아도 한 명 - P195

‘얌전한 어린이‘를 선별해서 손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 자체가 혐오이고 차별이라는 데에 어떤 논의가 더 필요한 걸까? - P209

"왜 안 낳아?"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나는 "왜 낳았어?"라고 묻지 않는데. "안 낳으면 나중에 후회해"라는 말도 들어봤다. 나는 "낳은 거 나중에 후회할걸"이라고 하지 않는데. - P216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 P219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 P219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 P220

세상에는 어린이를 울리는 어른과 어린이를 웃게 하는 어른이 있다. 어느 쪽이 좋은 어른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 P228

내 기억 속의 4.19 혁명은 대학생, 고등학생이 주축이 되어 독재 타도를 외치며 일으킨 것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당시 시위대에 어린이가 있던 것을 몰랐다. - P232

어린이의 직관은 무엇을 꽤뚫어 보는 신통한 능력이 아니라, 있는 것을 그대로 보는 힘이다. 늘 정확한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게 아니다. 모를 수가 없다. 전한승 어린이가 사망한 뒤 수송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시위에 나설 때 4학년 강명희 어린이는 이런 시를 썼다고 한다.

...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말도 안 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 P235

어린이들에게는 서운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린이날이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날에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어린이가 ‘해방된 존재‘가 맞는지 점검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방된 사람들답게 자유로운지, 안전한지, 평등한지, 권리를 알고 있으며 보장받고 있는지 어린이와 어른이 함게 점검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239

어린이날 하루는 모든 TV 채널에서 하루 종일 어린이 시청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방영하면 좋겠다. 만화영화만 내보내라는 게 아니다. 기존 프로그램도 어린이 시청자를 고려해서 그날 방송분을 만들면 된다. - P243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코로나19 관련 어린이 특집 브리핑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출연한 전문가들이 어린이를 대하는 정중한 태도도 모범적이었지만, 나는 인형 탈 없이도 어린이를 위한 방송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 점이 제일 좋았다. 해요체가 아니라 합쇼체로 말하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 P243

어린이날 관련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해 볼 때 내가 반드시 이루고 싶은 소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린이 여러분,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을 금지하는 것이다. 모든 어린이가 가족과 함께 어린이날을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어린이가 가족과 함께 보낸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다. ...
"어린이 여러분, 어린이날을 축하합니다." - P246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 준다. 반대로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야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힘이 생길 것 같아서다. 일의 결과가 생각만큼 좋지 않을 때 괜찮다고,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나를 달랜다. 뭔가를 이루었을 때는 마음껏 축하하고 격려한다. 반성과 자책을 구분하려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돌보게 되었다. - P253

어린이가 그림을 망쳤을 때 "다 소용없는 일이란다. 구겨 버리렴"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고칠 수 있는지 보고, 안되면 새 종이를 주고, 다음에는 더 잘 그리도록 격려할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말해야 한다. 실제로 어린이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새 종이를 주며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늘어놓기도 전에 어린이는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 새로운 그림을 시작한다. 냉소주의는 감히 얼씬도 못 한다. - P256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어른이 무례하다는 것을 이만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러나 더욱 몰랐던 것이 있다. 그것은 어린이라는 세계가 정중하고 사려 깊고 현명함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당신이 잊고 있었던, 신중하고 용감했던 당신의 세계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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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들썩했던 이혼 사건의 주인공 변호사 판옌중.

 전 부인과 정 반대인 조용한 여자 우신평과 결혼생활에 만족하고 있던 터에 갑자기 사라진 신평.

 판옌중은 우신평을 찾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신평의 과거와 마주치게 된다.


 과거 한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성폭행 사건이 우신평의 실종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찾다 보면

이중인격으로 여겨졌던 한 소녀의 혼란과 거듭된 불운이 불러온 가슴저린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

생뚱맞지만

오드리 친구 장중쩌가 오드리, 우신평, 즈싱의 얘길 듣고

오드리는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었고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저들 세 사람 중에서 누가 해안에 있었을까? 누가 물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을까? 숨 쉴 수 없게 목을 붙잡힌 사람은 또 누구였을까? (p.249)

그 관계를 꿰뚫는 질문을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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