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유시민은 패배의 원인 분석에 이미 들어갔을 것이고,조만간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서 야권 통합의 테이블에 나타날 것이다. 선거 패배에 따라 손학규에게 대선주자 지지율이 뒤쳐져 있는 상황이지만, 작년 하반기처럼 언제고 다시 손학규를 앞서서 야권 대선주자 1위의 자리에 복귀할 수 있다. 민주당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여전히 많은 유권자들은 그를 노무현 대통령의후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노맹의 원류를 짚어보자. 사노맹의 뿌리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두환 신군부의 시민 학살은미국의 방조 없이는 불가능했다. 결국 독재정권과 이 독재정권을뒷받침하는 미국이 강고하게 자리하는 남한체제는 그 자체로 반민주, 반민중적이라고 판단한 이들이 ‘새로운 헌법 속 새 체제를세워야 한다‘는 판단 아래 제헌의회파를 구성한다. 이른바 ‘CA‘다.불온 발칙한 정도가 아니라 체제전복을 노린 내란집단으로 여길만도 했다. 이들은 1990년대 초까지 뿌리를 이어온다. 시인 박노해,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백태웅도 멤버였다.
노무현은 온갖 오해와 구설에도 불구하고 이런 안희정에게 짙은동지의식을 표출했다. "(안희정씨는) 나의 측근이자, 오래전부터동업자였고, 동지라고 감히 말한다." 집권 후 두 달 뒤 열린 TV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그때는 안희정씨와 연관된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 사건을 검찰이 수사할 무렵이다. 당시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며 적대적 언론의 지탄이 쏟아졌다. 하지만 안희정은 수감됐다.
그의 지역 기반은 경남 남해이다. 고등학교까지 남해에서 다녔다.흥미로운 일화가 있는데, 김두관이 <MBC> 퀴즈 프로그램인 ‘장학퀴즈‘ 2등 출신이란 점이다. 1976년 남해종합고등학교 2학년일 때였다. 김두관은 장학퀴즈를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