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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들은 제목보다 부제가 앞으로 읽을 책의 내용을 더 정확하게 요약해 주기도 한다. 에도의 몸을 열다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다. 제목만으로는 긴가민가 하던 것이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 본 18세기의 일본‘이란 부제가 책의 성격을 명확하게 해준다.
난학이란 메이지 이전, 네덜란드를 통해서 들어온 실용적인 학술의 통칭이다. 그런데 난학의 출발점이 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한 권의 해부학서적과 관련된다. 1732년 요한 아담 쿨무스라는 독일 해부학자가 쓰고 G.
딕덴이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타펠 아나토미아』란 책을, 1774년 에도 시대 중·후기의 양의였던 스기타 겐파쿠와 그 일파가 해체신서』라는 제목으로 번역하면서 난학이 창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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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무대에 촬영 현장(카메라)을 도입해서, 허구와 실제의 이중놀이를 한 대표적인 작품은 이현화의 「불가불가(不可不可)였고, 방송 미디어가 현실을 왜곡·조작하는 과정을 보여준 작품으로 이강백의 「쥬라기의사람들이 있으나, 아무도 그 작품을 영상적이라거나 영상적 희곡쓰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반면 장진의 「박수칠 때 떠나라는 연극 무대에 촬영현장(카메라)을 도입하거나 미디어가 극 진행의 한 축을 도맡으면서도,
허구와 실제의 이중놀이를 보여준다든가 미디어의 전횡이나 위선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그것들은 이야기의 원활한 진행과 볼거리를 위해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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