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치수(治)는 목민관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덕목 중 하나다. 최치원은 당시 위천의 잦은 범람으로 수해가 빈번한 이곳에 둑을 쌓아 물줄기를 돌리고, 인근 지리산과 백운산 일대의 활엽수를 옮겨다가 강둑에 심어 인공적인 숲을 만들었다. 전설에 따르면 최치원이 금으로 만든 호미로 단 하루 만에 상림을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아무리 큰물이 져도 함양은 홍수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대관림이라 불린 숲의 규모는 길이만 3킬로미터에 달했으나 일제시대에 마을이 생기면서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어 하림은 훼손되고 지금은 상림의 길이1.6킬로미터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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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의 옛터로 알려진 장도는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본섬과 180미터 가량떨어진 작은 섬이다. 완도대교를 지나 13번 국도를 따라 군의면 불목리와 영풍리를 지나면 만난다. 처음 섬을 대하면 약간의 실망감이 앞선다.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규모 탓이다. 해안선 길이가 5킬로미터에 불과하다. 1만여 명의 군사를거느리고 바다를 주름잡던 해상왕국의 본거지가 이렇게 초라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오죽하면 주민들조차 ‘조금도‘ 라고 불렀을까. 하지만 장군섬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졌다. 예사롭지 않은 섬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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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소는 해발 600미터 지점으로, 첫눈이 내릴 때까지 낙엽 길의 운치가 이어진다. 단풍 절정기에도 다람쥐나 산새 정도만 조우할 만큼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그야말로 호젓한 단풍 구경에 안성맞춤이다.
여행정보가는 길(스포츠조선 김형우 기자)서울(6번 국도)~양평(44번 국도)~인제 한계리(46번 국도)~용대삼거리~56번지방도로 미시령 방면 직진 5킬로미터~도적소 입구. 도적폭포 모텔과 카페 앞에 주차 공간이 있다.
먹을거리용대삼거리에서 진부령 쪽으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용바위식당,
백담사 입구 설화가든에서 황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백담순두부돌이네집‘은 순두부가 유명하다.
도적소 입구에서 차로 10여 분 달리면 미시령 정상 휴게소.
묵을 곳도적폭포만을 찾는다면 도적폭포 모텔·민박을 이용할 만하다. 미시령 아래 인제 용대리 여관촌이 있고, 속초에는 한화리조트 등 콘도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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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재에서 보니 대간 마루는 만항재, 함백산, 은대봉, 싸리재, 금대봉을 차례로 지나 정북으로 북진한다. 여기서 만항재로 가려면 414번 지방도를 타야 한다. 구절양장의 대간 고개를 향하는 이 길. 만항재에 서니 아직도 겨울의 그늘이짙다. 진달래가 이제 피고 눈 속에서 꽃대 내미는 얼레지가 지금 만발한다. 함백산 오르는 도로는 이 만항재에서 시작한다. ‘대한체육회 태백분촌(국가대표 고지대 훈련장)‘이라고 쓰인 이정표를 따른다.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가 훈련하던곳이다.
가파른 산길의 막바지. 대규모 안테나 타워가 나타난다. 함백산 정상 밑이다.
그 옆으로 지나는 또렷한 능선. 백두대간의 중봉이다. 이대로 대덕산과 천의봉으로 이어진다. 타워가 내려다보이는 가파른 산길에 차를 세우고 산을 오른다.
몇 걸음 앞에 정상이 있다. 차로 오르는 백두대간의 산정. 기막힌 경험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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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약해지기 시작한 승상(혹은 상국)의 권력은 점점 떨어져, 애제(기원전 1년)때에 이르러선 직책의 이름이 대사도(大司徒)로 바뀌었고, 후한으로 들어서며 그나마앞에 붙었던 ‘대‘자도 빠지며 사공, 태위와 함께 그냥 뭉뚱그려진 삼공이 되었다. 후한의 삼공은 거의 실권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삼국지를 읽으며 누가 사도고,
누가 태위고 이런 이야기들이 언급되지만, 그 사도고, 태위고 모두 그냥 스쳐지나갈뿐. 임팩트가 없지 않은가?)그렇게 내려오던 것이 208년, 조조가 승상을 부활시킨 것이다. 위의 글을 쭈욱 읽어 내려온 분들이라면 굳이 조조가 승상을 부활시킨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으셨을까? 그렇다. 궁내 파워 넘버원이 된 조조가 그에 걸맞는 직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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