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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크레이지 파라다이스 3
나카무라 요시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변신 미소녀물이나 (약간) 야오이스런 만화, 혹은 억척/열혈 소녀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정말 즐겁게 볼수 있을 것이다. 외견상 평범한 중학생 츠카사는 경찰관인 부모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졸지에 거리에 내몰리게 되고, 형제들을 돌보기 위해 동급생이자 관동 야쿠자 최대 보스인 류지의 보디가드로 일하게 된다. 티격태격 하면서 사랑하게된 두 사람을 기둥으로 해서, 류지의 약혼녀 아사고와의 삼각관계, 츠카사의 출생비밀, 라이벌 야쿠자들과의 관계, 야쿠자보다도 더 조폭같은 형사 무나카타와 야쿠자 딸인 아사고의 사랑등이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순정만화에 드물게 신나는 액션이 자주 등장하고, 뭐니뭐니 해도 액션의 주체가 독자또래의 소녀라는 점에서 큰 흥미를 유발시킨다. 게다가 황당 자체의 개그 컷과 대사를 읽는 재미도 엄청나다.
이 만화에서의 키워드는뭐니뭐니 해도 출생 비밀에 의해 결정지워진 츠카사의 성정체성이 되겠다. 평소엔 그냥 괜찬은 중학생 남자애이지만, 사건의 해결사로 활약할때면 수퍼섹시한 여성으로 변하는 츠카사. 일반 순정만화 독자들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중학생 남자 츠카사에 대입하고, 그 츠카사가 섹시하고 능력만빵의 여해결사로 변신할때마다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느낄수 있기에 열광할 수 밖에 없다. 섹시한 그녀가 뭇 남정네를 철저히 깨부수며 일대를 평정할때마다 얼마나 신나는가! 하지만 여주인공이너무 절대적으로 강하면 평범한 독자들은 괴리감을 느낄 수 있는법. 따라서 작가는 츠카사가 아무리 강해도 결국 류지의 도움/협조없이는 혼자 일을 해결하진못하는 걸로 그려냈다. (심지어 4권에선 보티첼리의 비너스 그림으로 박제당할 위기에서 류지에게 구원당하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츠카사가 등장한다.)
상당한 아이러니이지 않는가? 여성이 신체적으로 남자들에게 버금가거나 아니면 남자들 이상으로 강하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그 강한 여전사는 미모에 성적 매력이 넘쳐야 하며, 남자의 협조없인 일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없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야쿠자의 성처 신화에서 등장한다. 본처는 예쁘고 살림 잘하고 애를 잘 낳는 소위 '여자다운' 면을 대변하고, 그림자의 성처는 야쿠자 남편을 싸움터에서 돕는 '남성적인' 면을 대변한다. 여성의 재생산 기능만이 강조된 본처도, 여자다운면이 제거된 그림자의 처도 결국 남성의 관점에서 본 여성성의 이분법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는 이러한 불공정한 여성성의 이분법을 해체하고자, 그 양쪽면의 긍정적인 면만을 취한 새로운 여성 -미모의 여해결사- 을 만들어 냈지만, 원래 남성의 잣대에 의거한 이분법에서 나온 합체의 결과이므로, 결국 그 이분법에서 자유롭지 못한것이다.
어차피 '디스토피아/유토피아로서의 미래와 인물군상'을 다룬 심각한 작품이 아니고, 그냥 미래를 내세워 현실도피의 도구로서의 유흥거리 만화에 너무 많은걸 바라지 않아야 하는 걸까? 그래도 남자에 의해 인생이 절대적으로 결정되는 여타 순정물에 비하면 훨씬 후련하고 재미있다. 사실 재미만을 생각하면 별 5개에 받아도 손색이 없는 만화다. 재미만이 아닌 진정한 여성의 모습까지 그려 냈다면 더 좋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