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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평점 :
이 책의 출간일은 아래 나와 있는 대로 2006년이다. 서문에 11년 만에 개정판을 내놓는다고 나와있으므로 1995년에 이 책은 세상에 나왔다. 사실 이 책이 나올 당시부터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 정말 오랜 동안 이 책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이유가 웃기다.
시국 관련한 사건으로 저자가 파리에서 고향으로 돌아올수 없는 신세라는 사실을 주워들어 알고는 있었고, 그런 처지에 놓인 저자가 그에 대해 쓴 글이라는 사실도 알고는 있었으나 '파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제목에서 나는 치열함보다는 낭만적이고 한가로운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1995년이라는 시기가 한나라당이 말하는 ‘10년을 잃어버리기 전’이니 당시에 이러한 낭만과 한가로움은 '사치스럽다'라고 느껴졌던 것이다. 택시를 몰고 매력적인 도시, 파리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이 책을 읽는 것을 가볍게 포기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저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며, 한국에는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근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 왔다가 사라져갔고, 그사이에 나도 파리를 두 번이나 다녀올 수 있었다.
시간이 내가 가진 웃기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이 책을 다시 읽게 해준 셈이다. 실제로 가본파리는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도시이지만 망명자에게는 서러운 타국일 수 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과 택시운전사라는 직업이라는 것이 또한 자유로운 여행과는 거리가 먼 일상의 고된 노동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지만, 책을 다 마치자마자 내가 가진 순간의 느낌에 갇혀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어서 놀랐다.
아무튼 저자는 독재국가의 탄압으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남겨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 (유람자로서의 택시운전사가 아니라)가족들의 생활고를 해결 해야 하는 육체노동자로서의 고단함, 그리고 그를 만든 어렸을 적의 기억들을 씨줄과 날줄 엮듯 엮어서 탄탄한 글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하여 그의 고민이 먼 과거의 일이거나 나와 무관한 남의 일인 것으로 남겨지지 않고, 마치 나의 고민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책을 읽는 속도보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먼저 달려나가 방해하는 바람에, 단숨에 책을 읽어 본 것이 한참 되었는데 오랜만에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다. 아마도 그의 이야기 구성능력도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고, 얼핏 가본 거리들을 상상하면서 읽었다는 점과 관심 있는 주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들 때문일 것이다.
그가 파리에서의 생활을 설명하고 서술하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톨레랑스에 대한 것이다. 본인이 스스로가 이 점을 중요하다고 여겨 개정판의 마지막에는 톨레랑스에 대한 챕터를 하나 추가해둘 정도였다. 우연히 살게 된 프랑스에서 그는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고, 그렇게 직접 말은 안 했지만 떠나온 한국이란 곳에 결여된 톨레랑스의 문화가 서럽도록 부러웠을 것이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한국이 프랑스보다 올림픽에서 더 많은 금메달을 따고 있고, 프랑스보다 더 좋은 전자제품을 내놓고 있고, 소득수준도 많이 따라갔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발전과 사회의 발전은 (어느 정도의 양의 상관관계가 있겠지만)정비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년 전에 동양에서 온 이방인에 대한 처우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가 들어도 ‘정말? 그게 가능해?’ 라고 할 정도로 놀라운 것들이다. 언제쯤 우리는 그런 ‘수준’을 당연하게 여기게 될까? 지금 내가 부러워하고 있듯이 그도 당연히 부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부럽다고 한들 민주주의는 대가 없이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니(후불제민주주의!) …... 아마도 저자는 이를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을 것 같다.
내가 윗 문장에서 톨레랑스와 민주주의라는 서로 다른 단어를 혼용하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제도와 절차의 도입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변화로 완성된다는 점으로 볼 때, “톨레랑스 = 현재형식적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결여된 민주주의의 정신”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혼용했다.
30년 전 저자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이를 14년전에 책으로 펴냈고, 나는 그 책을 이제 읽었다. 이 글을읽고 나서 ‘ 아.. 그 세월의 비극과 역경을 지나 이제사좋은 세상이 만들어졌다..’ 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해피엔딩 이었을텐데…… 아직도 갈길이 너무도 멀어 보인다. 아니 미디어법이 불법과 날치기로통과된 오늘, 우리는 갈 길을 거슬러 뒤로 너무도 빨리 뛰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