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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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라는 제목의 이 책은 검사출신으로 삼성에 입사하여 근무하다가 퇴사하고 이후에 삼성에서 보고 들었다는 온갖 비리를 폭로하였던 김용철 변호사가 그 내용을 상세하게 적은 책이다. 주로 삼성에서 겪은 일이 적혀있고, 검사와 삼성임원으로서 우리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담겨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영화 다크나이트 아이폰의 한국 출시, 이 두 가지가 떠올랐다. 

다크나이트를 본적이 있는가? 수퍼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는 다 그렇듯이 고담시티에서도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지만 그 고담시티를 더욱 더 숨막히는 곳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은 더욱 강력한 범죄자들이 아니라 바로 고담시 전체에 만연한 부패이다. 더 강력한 범죄에는 더 강력한 힘으로 맞선다고 하지만, 내부의 부패는 수퍼영웅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고든경감과 하비덴트는 유력한 증인을 잡아들이고나서 경찰과 검찰 어느쪽에 맡겨야하는지로 격론을 벌인다. 부패로 인하여 서로 상대방의 조직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힘들게 법정에 서게 해도 범죄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해야할 판사가 독살당하고, 경관의 가족들이 인질로 납치되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 앞을 가로막는 것이다. 속속들이 썩어있어서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영화지만 나는 이런 장면들에서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었다.
그런데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록한 이 책을 보고 그것과 동일한 종류의 답답함을 느낀 것이다. 김용철이라는 사람이 그런 히어로도 아니고 정의롭기만 한 사람은 아닐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비슷한 일로 용기를 내게 되었을때 외면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다.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되고, 번화가에 붙어있는 국내기업들의 입간판만 봐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진다는데, 해외에 가본적이 많지 않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야기이다. 스파이더맨에서 뉴욕타임스퀘어에 큼직하게 붙어있는 삼성과 엘지의 입간판을 보며 나 역시도 뿌듯해하였고 비록 등장하자마자 외계로봇의 레이저 공격에 금새 두동강이 나버리기는 하지만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에 뉴EF소나타가 등장했을때,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기업의 물건이 노출된다는 사실에 설레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년 말 아이폰이 출시되자마자 수십만대가 팔려나가자 삼성(혹은 SKT)에서 애국심에 호소한 마케팅을 한 것은 충분히 짐작가능한 마케팅이었고 아마 효과도 있었지 않을까 싶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야 국내 대기업 물건 사줘봐야 독점구조가 형성되어 소비자가격만 올라가고, 그렇게 올린 매출로 해외에 공장지어 버리면 국내에 고용창출되는 것도 아니어서 내게 돌아오는 이익은 없지만, 논리적으로 설명이 힘든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적당히 용인가능한 범위를 넘지 않고, 가끔씩 애국심에 호소해주면 우리 국민들은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도 속고 대충 넘어가주게 되고, 설령 용인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짓을 서슴없이 하더라도 교묘하게 은폐하기라도 해주면 이 역시 힘없는 서민으로서는 넘어갈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이런 것이 먹혀들기 때문에 삼성에서 서해안에 기름을 유출하고, 3세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해서 편법을 동원하고 세금을 떼어먹어도 애국심, 위협(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 추상적인 구호(사재출연) 등으로 그럭저럭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폰 이라는 물건이 국내에 출시되었다. 그 파급효과는 삼성도(이통사도) 대충 짐작하였기에 2년 이상을 막아온 것이겠지만, 결국엔 출시되었다. 아이폰이 옵니아 보다 우수하다고 한들, 더 우수한 물건을 못만들었다고 비난 받을 일은 없다. 그냥 덜 팔리면 그만인 것이다. 문제는 아이폰을 사용해보면서 사람들이 꽤 오랜 동안 속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고, 아이폰이라는 것을 매일 손에 쥐고 사용하면서 꽤 오래 속아왔다는 것을 매일 매일 상기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아이폰 자체는 가치판단이 들어가지 않는 중립적인 물건이지만 그동안 은폐되어온 사실을 보여주는 직관적인 물건이기도 하다. 여기에 약간의 추리력이 더해진다면 오랜 동안 덮어져 왔을 진실이 크게 어렵지 않게 유추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폰이 세상을 바꾼다 라기 보다는, 진실은 완벽하게 덮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의외의 지점에서 연기처럼 세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현재 존재하는 인물과 기업을 다루고 있으며, 주류언론에서는 이를 거짓말인 것 처럼 취급하고 있다. 또 반면에 우리에게 주어진 몇가지 힌트들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알수 있는 정보들은 가공되고 순화된 것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이 100% 거짓말인지 아닌지에 논의의 촛점이 맞추어져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책이 어느 정도는 과장된 부분이 있을수 있으나, 또 저자가 이야기 했듯이 잘 모르는 영역(국세청 관련된 부분 이라던가)까지 감안한다면 현실은 적어도 이 책이 묘사하는 것보다 더 암울할 것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그러니 거짓말 논쟁 자체는 의미가 없고 오히려 우리 사회가 한국을 쥐락펴락한다는 삼성의 경영권 상속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어리버리 넘어갔는지를 짚어보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 저자가 말한 삼성의 힘이 과장된 음모론이고 가설에 불과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향후에라도 그런 거대한 통제불가능한 권력이 대두되지 않도록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강한 불의에 맞설때 우리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온몸에서 용기를 내어서 이에 저항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전부 외면한다면 그 사회는 자정능력을 더이상 갖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우리들은 더이상 용기를 내지 않게 될 것이기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용기를 내기에도 늦어버렸을지 모르지만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 
동시에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사보고, 아이폰을 써보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일 처럼 느껴지는 현실이 암울하다.


P.S.  이 글을 적는 동안 경향신문에 이 책에 대한 칼럼이 실리지 못한 것과 관련한 글을 하나 읽게 되었다.
이 것은 각종 신문에 이 책의 광고가 실리지 못한 사태에 한걸음 더 나아간 일이다. 책 내용 외적인 일들이 이 책의 신빙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http://twtkr.com/view.php?long_id=LnV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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