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창생들 - 6. 낯선 재회

 

 

 이근우가 죽었다. 인질극을 벌이다가 정화의 총에 맞아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지 일 주일이 지나서였다. 그 소식을 정화는 외근 중에 알았다. 그 동안 그녀는 그를 두 번 찾아갔다. 그 때마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녀린 숨결만 내쉬면서 정화의 손만 잡으려고 애썼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불가능했다. 설희와의 관계, 유에스비, 그리고 여죄와 범죄의 동기 등. 조연현 경정의 팀도 안타까워하긴 마찬가지였다. 세 건의 살인에 대해 아무런 진술도 받아내지 못했고 새롭게 등장한 관련 인물 두 명의 소재도 오리무중이었다. 그 와중에 그가 죽은 것이다. 그러려면 차라리 현장에서 죽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를 위해서도, 또한 해당 수사팀을 위해서도. 먼지 같은 인생. 정화는 존재의 무상함을 새삼 절감했다.  
 정화는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아울러 뒤따를 감찰반의 조사를 떠올리곤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범인 검거엔 공을 세웠지만 경찰 총기가 아니라 개인 소유 총기를 사용한 점, 그리고 현장 제압 뒤 이틀 동안 보고 없이 무단으로 잠적한 게 상부의 눈에 거슬렸다는 이야길 들었던 터다. 서로 차를 몰았다. 마른 장마가 휩쓸고 있는 거리엔 먼지가 가득 휘날리고 있었다.
 강력팀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특별수사팀에 파견 나가 있던 규영이 자리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들어오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입니다."
 "그래. 오늘은 여기에 어쩐 일이야?"
 "형사가 한 가지 사건만 맡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미진한 건이 좀 있어서요." 정화가 자리에 앉자 그도 다시 앉았다. 그리고 물었다. "이근우 얘긴 들으셨죠?"
 "응." 정화가 애써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 쪽에 진전은 좀 있나?"
 "전혀요."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 경정이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는 눈치예요."
 "어째서?"
 "그 속을 제가 어떻게 압니까? 무리해서 공을 세울려는 분이 아닌지라 마침 이근우도 죽었으니 특별팀을 해체할 빌미가 생긴 거죠. 팀장님도 그 사건에 미련이 없잖아요? 조 경정의 요청을 또 거절한 걸 보면."
 그가 정화의 눈치를 살폈다. 인질극 직후 조 경정은 그녀에게 재차 합류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왠지 께림칙해서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사건과 다시 조우할 것 같은 예감은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녀가 자청해 사건을 맡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규영은 그 이야길 계속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녀는 외면하고 미제사건 파일을 뒤졌다. 그 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최재서 과장이었다. 서 안에 있는 그가 인터폰이 아니라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온 건 의외였다.
 "사무실인가?" 그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나도 서에 있네. 나하고 데이트 좀 할까?"

 

 최 과장은 정화를 태우고 어디론가 차를 몰았다. 잔뜩 굳은 표정이라 그녀는 행선지를 묻지 않고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30분 뒤에 도착한 곳은 남한산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한 찻집이었다. 여주인이 아는 체를 하는 걸로 보아 가끔 들르는 곳인 듯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는데 스피커엔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사랑의 빛들은 언제나 내 곁을 조용히 비
추겠지만...
 마주앉은 그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 보였다. 검찰 조사와 아내의 불륜행각에 이은 중상으로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용기를 내서 물었다.
 "부인께선 어떠세요?"
 윤다정 경사는 모텔 창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친 걸로 알고 있다.
 "아직 병원에 있지. 일 주일 뒤면 퇴원인데 집으로 들여야 할지 고민이군. 그래도 조강지처인데 앞으로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할 여자를 냉정하게 내쫓아버릴 수도 없고."
 "배신감 같은 건 안 드세요?"
 "왜 안 들겠어. 하루에도 이혼을 수십 번 생각하지. 그 연놈들을 당장 잡아넣고도 싶고 말야. 그러나 아이를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 없고. 내가 한심해 보이지?"
 "천만에요. 그냥 안쓰러워 보여요. 아무튼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이겨내라.....좋은 말이군. 그러나 운명을 이길 장사가 세상에 어디 있나? 훗." 그가 쓸쓸히 웃었다.
 그는 정화에게 요즘 맡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러나 크게 관심 있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얘기하는 도중 가끔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곤 했는데 무척 지친 표정이었다. 정화를 이곳까지 데려온 용건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그가 얘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결혼은 안 할 건가?" 그가 물었다. 사적인 걸 묻는 건 처음이었다.
 "쓸만한 남자가 없네요."
 "그건 그래." 그가 미소를 지었다. "나는 나대로 쓸만한 놈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보니 아니더군."
 "딱히 과장님을 두고 한 소린 아니에요. 이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까 남자들의 세계에 대해 신물이 나는 걸 어떡해요. 하긴 여자도 마찬가지죠. 남자에게 의지하려 들고, 이기적이고, 음험하고, 한심하고......그러고 보면 제가 아직 미혼인 것도 남자들이 저를 쓸만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일 테죠."
 "아니야. 오 경위는 누가 보아도 멋있는 여자야. 허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 남자들이 접근할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럴 리가요."
 "난 남자잖아. 남자는 남자를 알아."
 "결혼을 꼭 해야 할까요?"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그러나 혼자 늙으면 외롭지 않을까?"
 "혼자거나, 다른 이와 같이 있거나, 인생은 어차피 외로운 거예요. 다른 이와 같이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 더 치명적이라고 생각해요."
 "허허, 인생을 많이 살아본 사람처럼 얘기하는군. 하긴 인생에 정답은 없지. 적당히 살다 가는 거니까."
 하지만 정화는 적당히 살긴 싫었다. 그 때 냉방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 잠시 대화가 끊겼다.
 "오늘 왜 보자고 한 줄 아나?"
 "저야 모르죠. 오랜만에 젊은 여자 향기를 맡고 싶어서가 아닌가요?" 정화가 반문하며 미소를 지었다.
 "정답일세. 내가 좀 엉뚱하지? 자네에게 그동안 한 번도 친절하게 대해준 적이 없는 데도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넨 나를 상관으로 깎듯이 대해주었지. 그동안 그게 참 고마웠어."
 그동안? 정화는 갑자기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디 멀리 가는 사람처럼 말씀하지 마세요. 혹시 사표 내실 생각인가요?"
 "그래."
 "아......" 정화는 머리를 짚었다. "그렇군요. 꼭 그럴 필요까지야. 과장님은 나름대로 이 직업에 사명감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공로도 많고. 그런데도 왜 그런 결심을 하셨어요? 평생 후회하실 걸요?"
 "후회야 되겠지. 그러나 추하게 경찰직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아. 경찰에 누를 끼치고 싶지도 않고. 나 말야, 곧 구속될 것 같아. 검찰이 칼을 갈고 있어."
 "저런......"
 정화는 할 말을 잃었다. 이근우가 준 유에스비 파일엔 그의 이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룸살롱 사건에 크게 연루되어 있는 건 틀림 없었다.
 "하지만 검찰도 비리에서 자유롭진 못하지. 내가 아는 검사장 몇도 관련되어 있어. 그러나 증거가 없는 게 한이야. 내가 그걸 찾아내려고 하니까 그쪽에서 선수를 치려는 것 같아."
 정화는 그 검사장급들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유에스비를 통해서다. 최 과장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까하는 충동이 몰려왔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개인 사정을 생각하는 건 금물이었다. 더군다나 그 유에스비 파일 내용이 사실이라는 확신도 아직 없었다. 그녀는 그 거대한 블랙커넥션의 실체에 대해 큰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 해당 사건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다. 또한 굳이 그걸 파헤칠 의지나 욕심도 없었다. 새로운 세상이 와도 어차피 세상은 그런 약삭빠른 놈들끼리 손잡고 돌아갈 테니까. 갑자기 세상에 대한 환멸이 몰려왔다.
 "내가 사표를 내기 전에 장만영 서장에게 자네를 추천하려고 하네. 형사1계장으로 발령해 달라고. 보통 계장은 경감들이 맡지만 자네는 선임 경위니까 가능할 거야."
 드디어 그가 하려고 했던 얘기가 나왔다.
 "그건 왜죠?"
 "1팀에서 맡고 있던 수서동 모텔 사건을 처리하는 데엔 자네가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윗선의 눈치를 안 보니까. 강지수 전 형사계장이 필리핀에서 사라졌어. 십중팔구는 죽었을 거야. 그리고 며칠 뒤 수서동에서 살해당한 공무원 여자가 강지수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
 "무슨 말씀인지....." 정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사건엔 연관성이 있지. 자세한 얘긴 해주기 어려워. 내 치부와도 관련이 있으니까. 이해해 주게나. 마지막 자존심이지. 다만, 이 이야긴 해주지. 강지수는 룸살롱과 우릴 연결해주던 핵심고리였어. 그는 결정적인 자료를 가지고 있었지. 아마 그걸 그 공무원 여자와 공유했을 테고. 그래서 제거당한 것 같아."
 "그건 지금 1팀에서 조사하고 있는 내용 아닌가요? 과장님이 통제 가능할 텐데....."
 "1팀장 그놈은 불행히도 윗선의 끄나풀이야. 비록 내게 불이익이 돌아와도 강지수는 내 혈육과 같은 녀석이라 반드시 그의 실종사유를 밝혀내라고 닥달을 했지만 수사 일선에서 멀어져 있는 나로선 역부족이었어. 나도 실은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아. 내 추천에 장 서장도 동의할 거야. 자네와 가깝기도 하니까. 나를 위해 그 건을 맡아줄 수 있겠나?"

 정화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최 과장이 여주인을 불러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잠시 뒤 맑은 여자 목소리의 노래가 나왔다.

 - 고요한 새벽에 찾아온 너는 내 님을 닮아서 아무 말이 없구나...

 "산이슬이란 듀엣의 '새벽안개'라는 노래야. 오래된 가수라 자네는 잘 모를 걸세."

 그가 말했고 정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이슬. 아마 7, 80년대 가수인 듯했다.

 - 그리운 내 님의 소식이나 전해다오...

 "흠. 그런데 과장님은 그들을 납치하거나 살해한 자들이 누구라고 추정하시는 거죠?" 정화가 물었었다.
 "속단은 어렵지만 강남에 신흥 폭력조직이 뜨고 있어. 이현광 구속 뒤에 그 유산을 하나하나 접수해가고 있지. 아마 그들과 관련이 있을 거야."
 "그 조직의 핵심은 누구죠?"
 "김창호라는 놈이야."
 그 이름을 듣고 정화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걸 느꼈다. 이근우에게서 설희 얘길 듣고 그를 떠올렸지만 최 과장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올 줄은 차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위험한 동창생들 - 6. 낯선 재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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