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창생들 - 4. 감상은 나의 적 ④

 

 

 정화는 이게 과연 현실인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DMB를 켜보았다. 놀랍게도 지상파와 케이블 TV가 현장 중계를 하고 있었다. 나라의 심장부,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인질극을 저널리즘이 놓칠 리가 없었다. 화면에 가득한 경광등이 현장의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종각 일대에 어마어마한 경찰병력이 깔려 있었고 그 외곽을 군중이 구름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도심 인질극.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참 좋은 소재였다.

 화면에 나온 커피숍은 기껏해야 네 평 남짓해 보이는 작은 규모였다. 출입문은 테이블과 의자들로 막혀 있었고 어둑한 카운터 뒤로 두 사람의 신체 일부가 보일 뿐, 안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화면은 용의자인 이근우의 몽타주와 인질로 잡혀 있는 아르바이트 여대생의 사진을 수시로 내보내고 있었다. 서울청장 박두호 치안정감이 직접 현장 진두지휘를 맡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용의자가 정화와의 면담을 요구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조연현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 어디쯤 오고 있냐고 물었다. 정화가 정신이 혼란스러워 운전하기 어렵다고 하자 그는 그제야 아차, 하며 차를 보내줄 테니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했다. 일산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고 했더니 그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일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정화는 자세한 위치를 알려주었다.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다. 경찰 동료와 상관, 기자들이었다. 그 가운데 몇은 받았고 몇은 무시했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최재서 형사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그는 받지 않았다. 5분 뒤에야 연락이 왔다.
 "오 경윈가? 긴한 용무가 있어 전화를 받을 수 없었네. 미안하군. 종로 일 때문이지?"
 "네."
 "조연현이와 상의하면 되지 뭘......"
 "그래도 과장님이 직속상관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군."
 "지금 현장에 계신가요?"
 그러자 그는 아니라고 했다. 정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관할과 관련된 사건이기에 간부가 총출동했을 텐데 그는 어디에 있는 걸까? 답답해서 정화가 물었다.
 "용의자가 저더러
만나자고 한다는데 제가 꼭 그래야 하나요?"
 "그렇게 까지야......" 그는 말꼬리를 흐렸다. "인질의 목숨이 위태롭긴 하지만 수사관의 생명도 그만큼 중요하지. 놈이 원하는 게 뭐라던가?"
 "아직 모르겠습니다. 현장에 도착해 봐야 알겠지요. 조 경정님은 적극적으로 만나볼 것을 지시할 듯 합니다. 서두르는 기색입니다."
 "내 생각에 놈은 자살을 선택할 것 같아." 그가 말했다. "어차피 그럴 건데 만나서 뭐하누. 오 경위가 참 난처하겠군. 어쩔 생각인가?"
 "저야 명령에 따를 생각입니다만, 아직 얼떨떨 하네요. 하필이면 왜 저를 만나자고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옵니다."
 "그래 상황에 따라 처신하게. 몸 조심하고. 지금은 내가 경황이 없어 충분한 조언을 할 수 없겠군."
 "그나저나 현장에 안 오실 건가요?"
 "나중에 얘기해 줌세. 그럼, 행운을 비네." 과장이 전활 끊었다.
 정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경호용 순찰차 두 대가 도착했다. 오토바이 두 대도. 순찰차에서 내린 경찰관은 낯이 익었다. 예전에 충남서에서 같이 일했던 경위였다. 그는 오랜만이라고 하면서 어서 탈 것을 권유했다. 주말의 붐비는 도로였지만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그들 일행에게 차들은 순순히 길을 내주었다. 현장까지 가는 동안 DMB 뉴스에서 드디어 정화 이름이 나왔다. 인질범이 정화와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는 내용을 누군가 기자들에게 흘린 것이다. 뉴스 영상 자막에 자신의 사진이 나오자 정화는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현아영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소식을 들었다며 걱정을 많이 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오후 네 시 무렵, 종각 인근에 도착했지만 차와 사람들로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주변은 경찰 버스와 순찰차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형사기동대 차량과 특수기동대 차량도 여럿 보였다. 앰불런스와 소방차도 물론이었다. 정화는 경호차량에서 내려 경찰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사람들 숲을 헤치고 현장본부가 있는 조계사까지 내처 걸었다. 얼마 걷자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쉬가 집중해서 터지고 있는 곳이 보였다. 본부였다. 간부들이 모여 있는 한가운데에 박두호 청장이 보였다.

 

  - 박두호 서울지방경찰청장. 경찰대 출신. 차기 경찰청장 후보 2순위, 박근혜 라인.

 정화의 파일엔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주고받고 있었다. 정화가 도착하자 기자들을 제지하고 그녀에게 다가와 갑자기 악수를 건넸다. 평소엔 가까이도 할 수 없는 데다가 오만하기 짝이 없기로 소문난 인물의 돌출행동에 정화는 흠짓 놀랐지만 내민 손을 마주잡을 수밖에 없었다. 장만영 서장과 조연현도 그녀를 맞았다. 조연현 옆에서 양하섭 경감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갑군." 양하섭이 말했다.

 "그래." 정화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일선 책임자급들이 그들 주위로 몰려들었다. 일부는 무장을 하고 있었다. 이제 카메라 플래쉬는 본격적으로 정화를 중심으로 터지고 있었다. 경비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기자들을 멀리 밀어보낸 뒤 곧 회의를 가졌다. 회의는 조 경정이 주도했고 상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인질의 안전 때문에 결국 이근우 요구대로 정화가 나서야 할 판이었다. 이근우가 왜 굳이 정화를 찾는지에 대해선 사전 설명이 있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급히 설치한 상황실 티브이에선 조금 전 정화가 도착했을 당시의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자막엔 '오정화 경위 현장 도착'이라고 써 있었다. 스타가 따로 없었다. 이어 인질범이 면담을 요구한 배경에 대한 아나운서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정화가 인질범이 저지른 부녀자 납치살인사건의 담당 수사관이었으며 범인과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내용이었다. 또, 이근우의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정화에 관한 기사스크랩이 발견되기도 했다며 범인과 정화와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언급을 했다. 범인과 여경의 관계, 보도 분위기는 대중의 구미에 맞도록 선정성으로 치닫고 있었다. 좌중은 정적에 빠졌다. 수사관들 가운데 누군가가 언론에 귀띔해 준 게 분명했다.
 "우리 가운데 빨대가 있구먼." 장만영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화는 담담했다. 많은 수사관이 알고 있고 어차피 다중에게 알려질 내용이었으므로.
 "일선 수사관이 인질범의 요구로 사지로 들어간 예가 있는지요?" 정화가 조연현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금 현재로선 모든 게 정화 마음에 달렸다며 자신이 없으면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그 때 박두호가 나섰다.
 "우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공직자야. 사사로운 감정은 금물이지."
 그는 분명 눈앞의 상황 해결에 집착해 후배 경찰의 안전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는 듯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상황도, 자신이 경찰이란 사실도. 그러나 마음을 다잡았다. 정화는 박두호의 말을 무시하고 조연현게 다시 물었다.
 "자수하겠다는 이근우의 말에 과연 신빙성이 있을까요?"
 "반반이야." 조연현이 말했다 그러면서 박두호의 표정을 살폈다. "일단 시도는 해 봐야겠지. 권총과 방탄조끼, 그리고 도청기를 준비했네."
 "이근우와 직접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조연현이 양하섭에게 뭐라고 귀띔하자 그가 휴대폰을 작동시켰다. 이근우가 나왔고 그녀가 폰을 받았다.
 "나, 오정화입니다. 저를 보자고 했다면서요?"
 박두호 청장을 비롯한 주변 상관들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범인 목소리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요, 선배. 참 오랜만입니다."
 그의 목소린 차분하고도 담담했다. 체포를 앞둔 연쇄살인범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환각상태도 아닌 듯했다. 다행이었다.
 "난 이근우 씨와 같은 후배를 잘 모릅니다. 절 아시나요?"
 "그럼요. 기억 안 나세요? 당시 동네에서 모세당구장이 있는 건물 주인집이라고 하면 다 아는데요......"
 예상과 달리 놈은 깍듯하게 경어를 쓰고 있었다. 모세당구장, 모세당구장. 정화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당구장과 전혀 인연이 없어서였다.
 "꼭 저를 만나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군요."
 "제가 감옥 들어가면 오정화 씨를 다시는 영영 볼 수 없겠지요. 그 전에 긴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입니다."
 "전화로는 안 될까요?"
 "곤란합니다. 그리고 오정화 씨께 매우 유익한 대화가 될 겁니다."
 그 말에 정화가 주위 사람들의 표정울 살폈다. 모두가 무척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통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대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를 만나보면 아십니다. 오정화 씨 안전은 보장합니다."
 정화는 입술에 침을 축였다. 주변 인물들이
 "제가 들어가면 약속대로 인질 내보내고 자수하실 거죠?"
 "그렇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나요?"
 "그래? 이 여자가 중국놈 빤쓰를 입었나." 갑지기 그의 말투가 반말로 바뀌었다. 뉴앙스도 음산했다. "그렇게 믿지 못한다면 지금 모든 걸 끝내기로 하지."
 정화는 개의치 않고 화제를 돌렸다.
 "이거 봐요. 남자로서 약한 여자를 인질로 잡고 있다는 게 창피하지 않나요?"
 그러자 박두호가 범인을 자극하지 말라고 낮은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들어오면 풀어주겠다고 했잖아, 핫하." 이근우가 다시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오기 싫으면 관둬. 나야 어차피 끝난 인생인데."

 이근우의 돌발적인 기질이 드러나고 있었다.
 "잠깐만." 정화가 말했다. "우리, 만납시다. 10분만 기다려요."
 정화는 전화기를 끄고 양하섭에게 돌려주었다.
 "그는 아마 자살을 선택할 겁니다." 정화가 상관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