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창생들 - 4. 감상은 나의 적 ②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광란도 신이 준 선물이다. 젊은이들이 미쳐날뛰는 건 세상이 미쳐서 그렇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들은 정말 미치고 말 것이다.
제시카 일행이 클럽 안으로 들어서자 고막이 터질 듯한 밴드 음악소리가 가장 먼저 그들을 맞았다. 이어 눈을 찌르는 강한 사이키 조명이 뒤따랐고 역한 담배 냄새가 훅 끼쳤다. 그 가운덴 마리화나 냄새도 섞여 있었다. 무대에선 한창 두 외국인 여성 보컬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주위를 에워싼 수많은 젊은이들이 반나체로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형광봉과 형광팔찌가 그에 맞춰 춤을 추었다. 여가수 하나가 상의를 벗어 객석에 집어던지자 그걸 잡느라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일행은 일단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바 테이블로 갔다. 제시카가 맥주 몇 병을 시켰고 창호는 짐빔 두 잔을 주문했다. 빨간 미니원피스 차림의 로즈는 곧장 플로어로 나갔고 미키가 짐빔 한 모금을 마시곤 재빨리 그녀 뒤를 따랐다. 클럽을 메운 젊은이들의 옷차림은 각양각색이었다. 여자들은 대부분 핫팬츠나 미니스커트 차림이었고 남자들은 대부분 진을 입었다. 여자들의 윗도리는 브래지어나 꽉 끼는 티셔츠였는데 대부분 가슴골과 배꼽이 다 보이는 차림새였다. 일부는 갖가지 가면을 쓰고 있었다. 클럽 한구석의 문신 코너에선 몇 남녀가 전문가의 손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한 여자는 아예 엉덩이 한 쪽을 다 드러내고 문신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보컬이 물러가고 플로어가 개방됐다. 빠르고 강한 비트의 음악에 맞춰 남녀들은 광란의 도가니를 연출했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엉덩이와 가슴을 주무르는 건 물론 어떤 여자는 엉덩이를 남자 사타구니에 문지르거나 남자의 심벌을 슬쩍 만지곤 했다. 말리거나 시비를 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깔깔거리며 흔들어댈 뿐이었다. 술에 취한 한 여자가 플로어에 마련된 좁고 높은 단상에 올라가 몸을 흔들자 '벗어! 벗어!'하는 함성이 높아갔다. 여자가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고 엉덩일 살짝 깠다. 여잘 만지려고 남자들은 아우성을 쳤다. 모두 미친 듯했다.
"가관이군." 창호가 말했다.
"어제 오늘 일인가? 너도 즐겨." 제시카가 창호의 손을 이끌고 플로어로 나갔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로즈와 미키가 있는 곳으로 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도중에 제시키와 창호는 춤을 추는 체하면서 몸을 슬쩍 만져대는 남녀들을 겪어야 했다. 로즈와 미키는 어느 틈엔가 각각 다른 남녀와 짝을 이루어 한데 엉겨붙어 있었다. 제시카가 미키를 여자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하자 근육질의 한 외국인 남자가 그녀 팔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주위를 빙빙 돌며 놀자는 듯 허리를 흔들어댔다. 창호가 제지하려고 했으나 그 역시 몸매가 기막힌 여자의 손아귀에 잡혔다. 여자의 교태를 한몸에 받으며 창호도 즐기는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그러기를 한 시간. 그 사이에 디제이와 밴드가 몇 차례 바뀌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클럽 안의 광란은 더해만 갔다.
제시카는 엉덩이에 묵직함을 느꼈다. 한 남자가 몸을 밀착해 온 것이다. 그녀는 제지하지 않고 엉덩이로 남자의 물건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남자는 엄지를 치겨세우곤 낄낄거리며 남녀들 속으로 사라졌다. 이번엔 키가 작은 남자가 다가와 추파를 던졌다. 제시카가 가슴을 그의 얼굴에 대고 문지르자 남자는 황홀해 자지러졌다. 창호 쪽을 보았다. 한 여자를 부둥켜 안은 채 춤을 추고 있었는데 둘은 아주 지남철처럼 붙어 있었다. 그때 미키가 다가왔다. 그의 앞지퍼 부분이 불룩했다. 제시카가 거길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자 미키가 덥썩 그녀를 안고 입술을 포갰다. 제시카는 그러면서 로즈를 눈으로 찾았다. 그렇지만 플로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미키와 함께 사람들을 헤치고 바로 돌아왔다. 그 옆 의자에 로즈가 있었다. 의자에 앉은 남자 허리에 양 발을 두른 채였다. 제시카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그들을 향해 확 뿌렸다. 그들이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자 제시카와 미키는 배꼽을 잡았다. 그러나 바닥에 구른 남녀는 그 자세로 입을 맞추고 상대 몸을 더듬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창호가 다가와 남자를 일으켰다. 그러자 남자가 주먹을 휘둘렀는데 창호가 피하는 바람에 다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모습을 본 주위의 남녀들이 허리를 꺾으며 웃어댔다. 창호의 덩치를 가늠해 본 남자가 자리를 피했다. 미키는 기분을 잡쳤다며 토라진 체 했다. 창호가 그녀를 화장실 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들이 자리를 비운 동안 제시카와 미키는 자리에 앉아 진한 입맞춤을 나누었다. 미키의 손이 제시카의 엉덩이를 더듬었고 그녀는 더욱 그에게 밀착했다. 미키의 손이 겁 없이 제시카의 앞지퍼로 오자 제시카가 손길을 제지했다. 그 때 창호와 로즈가 돌아왔다. 둘의 눈은 잔뜩 풀려 있었다.
"할래?" 제시카가 미키에게 물었다.
"오케이." 미키가 앞장을 섰다.
화장실 안엔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었다. 섹스를 하는 건 금지사항이었지만 남녀 화장실을 막론하고 거의 섹스와 다름이 없는 체위를 취한 커플이 여럿 있었다. 그 가운데는 동성 커플도 있었다. 그들은 화장실 앞을 그냥 지나쳤다. 홀 끝에 있는 작은 문을 두드리자 문 중간의 구멍이 열리더니 커다란 눈알이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단골임을 확인하자 문이 열렸고 10분 뒤 그들은 그 방을 나왔다.
한 시간을 더 놀고 일행은 밖으로 나왔다. 새벽 한 시가 되었지만 이태원의 밤거리는 여전히 흥청대고 있었다. 클럽 앞엔 여럿이 늘어서서 짝을 고르고 있었다. 제시카를 발견한 한 외국인이 다가왔다. 클럽 안에서 시종 제시카 주변을 맴돌던 남자였다. 제시키가 그의 팔짱을 꼈다. 그는 자신을 미군 중위라고 소개하며 창호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저 형식적인 것이었다.
"콘돔 잊지 마." 하며 창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둘은 키득거리며 호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호도 한 외국인 여자를 선택했다. 여자는 조금 술에 취해 있었는데 창호가 손짓하자 재빨리 다가와 그의 허리를 두 손으로 와락 껴안았다. 로즈와 미키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둘은 깔깔거리며 서로 입술을 맞췄다. 그는 손을 들어 작별인사를 하곤 여자와 함께 네온사인 숲으로 사라졌다.
신촌의 한 빌라. 잠에서 깨어난 명희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마시고 시계를 보았다. 아직 오후 4시였다. 출근하려면 아직 네 시간이나 남았다. 그녀는 눈을 더 붙이려고 침대에 가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간밤의 술로 머리가 띵 했다. 다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소주병을 찾았다. 병 주둥이에 입을 대고 두 모금을 마신 뒤 욕실로 들어갔다. 소변을 볼 때 밑이 화끈거렸다. 새벽까지 남자에게 시달린 탓이었다. 뚱뚱하고 머리숱이 적은 40대 남자는 두 시간 내내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고 있었다. 2차를 가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지만 늙어가는 나이에 찬밥 더운밥 가릴 게 어디 있느냐며 보도방 총무가 떠미는 바람에 일이 그렇게 됐다. 총무는 그녀의 밥줄을 쥐고 있었다. 그녀 나이 올해 서른 아홉. 조선족과 동남아계 젊은 여자들이 도우미 업계에 치고 들어온 지 꽤 오래 된 데다 취업이 어려워진 20대 국내 미스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던 터라 나이가 많은 그녀의 입지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었다. 한때는 한 달에 20일 이상 일을 했고 수입도 한 달 평균 300만 원이 넘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달에 보름 정도 나가면 많이 나가는 셈이었고 다른 여자들에게 타임을 빼앗기기가 다반사라 수입도 옛날의 반으로 줄었다. 그걸 만회하려면 2차를 나가야 했다. 그러나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어떨 때는 일을 나가기 위해 총무나 사장 친구들에게 무료 서비스를 해주어야만 했다. 때론 단속 경찰들에게도. 노래방에서 몸 여기저기를 지분거리는 남자들의 손길, 역겨운 입 냄새엔 만성이 되었지만 2차를 나가 몸을 팔 때는 그 수치심이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범죄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심이 늘 그녀를 떨게 했다. 그래서 술을 마셨고 어느덧 그게 일상이 되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출근준비를 하고 있을 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화면엔 '발신자 표시 없음'이라고 나와 있었다. 명희는 잠깐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남자였다. 그는 홍대 소극장 옆 모텔에서 그녀를 두 번 만난 적이 있다며 기억이 나느냐고 물었다. 명희는 그렇다고 했다. 30대 중반 남자로, 그녀를 시종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었기에 명희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책정한 화대 말고도 10만 원을 더 얹어주며 차비에 쓰라고 했다. 명희는 그의 요청을 거절할 수 밖에 없는 지금 당장의 사정이 미웠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그를 만나고 싶었다.
"미안하지만 지금 일 나가야하기 때문에 어려워요. 내일 낮에 점심 사주실래요?" 명희가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그는 새벽 네 시 반에 시간에 예전의 그 모텔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새벽 다섯 시, 명희가 택시로 모텔 앞에 도착하자 골목에서 한 남자가 나와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늦었네요?"
남자는 예전보다 머리가 제법 길어 있었고 콧수염도 길렀다. 그러나 명화는 느낌으로 한 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미안해요. 뒷정리를 하느라." 명희가 말했다.
남자가 이미 방을 잡아 두었는지 안내데스크 직원은 팔짱을 끼고 들어서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남자가 가방에서 5만 원짜리로 50만 원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아침 같이 먹을 때까지. 아침은 내가 살게."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남자가 말을 놓았지만 여자는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명희는 샤워를 하고 나와 옷을 벗었다.
남자가 침대에서 여자의 국부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가 부어 있는 것 같은데?"
"어제 시달려서. 미안. 살살 해 줘."
남자는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곧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그들이 잠에서 깨어난 시각은 아침 11시였다. 가까운 해장국집으로 가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남자는 3일 동안만 자기와 같이 있어달라고 했다. 사례는 충분히 하겠다고 했다. 명희는 돈보다도 마음이 따스한 남자와 며칠 같이 있는 게 기쁘기만 했다.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장기간 부재하면 행여 실종신고를 할까봐서였다. 명희는 친척 상이 있어 3일 동안 지방에 간다고 거짓말을 했고 사무실 여직원은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투로 '알았어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자는 몸이 안 좋아 며칠 동안 회사에 휴가를 냈다고 했다. 어느 순간, 그의 말대로 그의 몸에 경련이 찾아왔다. 그는 휴대폰을 잃어버려 그러니 명희의 것을 쓰자고 했고 그녀는 동의했다. 그가 어진가로 전화를 걸었고 그의 요청으로 몇 가지 심부름을 했다. 가지고 온 약을 복용한 뒤에야 몸 상태가 진정되었다. 그제야 그게 마약이란 걸 알았다.
그가 차로 그녀를 처음 데려간 곳은 서해안이었다. 그들 사이에 대화는 거의 없었다. 바닷가를 돌고 노을을 보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은 뒤 남자는 밖으로 나가 새벽 두 시가 넘어 돌아왔다. 그녀는 어딜 다녀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품에 파고드는 어린애 같은 남자의 등을 꽉 껴안을 따름이었다. 외로움의 냄새. 그는 그녀와 동류였다. 다음 날엔 수안보로 가 온천욕을 즐겼다.
남자 행동은 여전히 수상했다. 현금카드를 주며 그 일대 은행 3군데에서 200만 원 씩 600만 원만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여자는 그렇게 했다.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다가 주차장에 세워진 그의 차 번호를 보고 렌터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호텔방에서 두 차례 섹스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그들은 평택과 수원을 들렀다. 모두 돈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오후 1시 경 그들은 종로에 도착했다. 남자는 조계사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점심을 먹자고 했다. 그는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가방을 챙겼다. 명희는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걸 알았다. 레스토랑으로 가 스테이크와 와인을 시켰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남자가 가 봐야 할 곳이 있다며 가방에서 두툼한 봉투를 하나 꺼내 그녀 앞 테이블에 놓았다. 그리고 일어섰다. 명희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고마워." 남자가 말을 마치고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녀 눈앞에서 사라졌다.
명희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무 일 없이 그가 떠나자 허탈감이 몰려왔던 것이다. 그가 수배중이란 건 수안보의 한 은행 현금자동인출기 코너에 붙은 지명수배 전단을 보고 이미 알았다. 그녀는 그 뒤로 언제쯤 그의 손에 죽을까를 줄곧 생각해 왔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긴장이 된 건 사실이었다. 이제 그는 떠났고 명희만 남았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명희는 그가 두고 간 봉투를 핸드백에 챙겨 넣고 레스토랑을 나와 종로 인파 속에 몸을 묻었다.
누들은 이근우가 기다리고 있는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손님은 거의 없었고 안은 어두컴컴했다. 이근우가 어둠 속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누들이 앞자리에 앉자 그가 종업원더러 잔을 하나 더 가지고 오라고 했다. 잔이 도착하자 이근우는 거기에 양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누들은 팔짱을 끼고 말 없이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이근우는 취해 있었다.
이근우가 페이스북 비밀계정을 통해 도움 요청을 해온 건 어제 아침이었다. 주변정리를 하느라 미처 출국하지 못하고 있다가 수배령과 출국금지령이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밀항하려고 안면도로 가 자칼을 만나려고 했으나 그것도 실패했다고 한다. 자칼이 그를 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밀항 루트를 다시 찾아봐야 한다. 새 여권도 필요했다. 중국 쪽엔 이미 돈을 보낸 상태였다. 이제 배만 타면 된다. 조직이 그의 제거를 결정하리라는 건 관례로 보아 기정사실이다. 그는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절친한 후배 누들을 마지막 카드로 선택했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콘돌 형님."
"미안해."
"참 형님도......어이가 없습니다."
"자네가 나를 처리하기로 했나?"
"그렇습니다."
이근우가 고개를 떨구었다. 누들이 긴 말 필요 없다는 듯 그에게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원, 달러 뭉치와 위조 여권이 들어 있었다. 사실 돈은 필요없었다. 이근우가 고맙다고 하곤 잔을 들이켰다.
"저들이 알면 자네도 무사하진 않을 텐데?"
"지금 제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