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창생들 - 3. 여자는 뭐든지 속이지 ④.

 

 


  송파구 문정동의 밤. 아파트 옥상에서 남자가 여자를 끌어안았다. 근무평가의 키를 쥔 남자의 요구로 몇 차례 몸을 섞긴 했지만 여자는 그 때마다 남편이 알아챌까봐 늘 걱정이었다. 여자가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술에 취한 남자의 팔은 여자를 놓아주지 않았다. 
 "경정님, 이러지 마세요." 여자가 가까스로 그 손을 뿌리쳤다.
 문제는 경찰서 간부들이 여경을 위로하고자 만든 회식자리에서 비롯되었다. 그 자리에서 남자 간부들은 줄곧 부하 여경들에게 추파를 던졌다. 문인식 경정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문인식은 한미희 경위의 남편이 지방 출장을 간 걸 알고 집까지 따라와 성관계를 요구했다. 한미희는 차마 집안에서 그럴 수 없어 그를 달래려 옥상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어서 돌아가세요. 안 그러면 사모님에게 전화할 거예요."
 "할 테면 해 봐. 너도 무사하진 않을 걸?"
 남자가 여자의 스커트 자락을 올리곤 서슴없이 손을 사타구니로 집어넣었다.  여자는 비틀거리며 난간에 등을 기댔다. 그 순간 낡은 난간이 떨어져나가며 여자의 몸이 아래로 사라졌다.

 

 

 

 

 

 정화는 후배 여경의 추락사망 사실을 조간신문으로 접하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찌기 소문으로 들었지만 둘 관계가 확인되긴 처음이었다. 그것도 비극으로. 대체 이놈의 조직이란. 동업자 정신에 따라 사건은 쉽게 묻힐 것이다. 아침 일찍 정화는 서장실로 갔다. 서장은 찾아올 줄 알았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맞았다. 
 "나 따라와서 고생이 많지?" 서장이 소파에 앉길 권하며 물었다.  
 장만영 총경. 강화경찰서장으로 있다가 강남으로 온 직후 서울청 수사지원과에 있던 정화를 이리로 부른 인물이었다. 그가 정화를 강력3팀장에 앉히자 말이 많이 돌았다. 정화와 장 총경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둥, 강남경찰서에 인맥이 없는 장 총경이 측근들을 불러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둥, 문제아로 찍혀 임용된 지 10년이 넘도록 만년 경위로 지내고 있는 정화가 그 일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둥, 하는 것들이었다.

 우선, 정화와 장 총경이 특별한 사이인 건 맞지만 소문처럼 불미스러운 관계는 아니었다. 그는 돌아가신 정화 아버지가 초급장교였을 때 관사 일을 챙겨주던 당번병이었다. 전역 후 정화 아버지의 추천과 자기 노력으로 경찰간부후보생 시험에 합격해 경찰 인생을 시작했다. 그 뒤 자주 아버지를 찾아왔고 정화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녀에겐 마치 작은아버지 같은 인물이었다. 그가 파주경찰서 감식반장에 있을 때 정화는 같은 경찰서에서 막 수사과 임무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정화에게 여러가지로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었다. 그 해 유종하가 자살했을 때도, 그녀가 상관을 폭행했을 때도, 인터넷신문에 경찰 간부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가 징계를 받은 작년에도 그랬다. 
 "무슨 말씀을요.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자네를 보면 오 장군님 생각이 많이 나네. 참 능력 있고 강직한 분이셨지."
 3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다. 일명 하나회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 시절에 강원도 모 부대 사단장을 끝으로 전역했다.  
 "최 과장이 많이 밀어주나?" 서장이 물었다.
 "잘 해줍니다."
 "예상 밖이군." 서장이 중얼거렸다. 서내 구 인맥의 핵심인 형사과장이 신진세력의 하나인 오경화와 별 트러블 없이 지낸다는 게 그에겐 신기한 일이었다.
 지난 해 말, 이 경찰서엔 큰 태풍이 몰아쳤다. 검찰의 강력한 불법유흥업소 수사가 있은 뒤 그곳과의 유착 혐의로 서장을 비롯한 많은 경찰관이 옷을 벗거나 징계 조치를 받았다. 몇 몇은 구속되기도 했다. 형사계장 자리가 비어 있는 것도 그 인사조치의 결과였다. 사직한 서장의 후임으로 비교적 청렴한 인물로 알려진 장 총경이 오자 오랫동안 이곳에서 근무해 온 일선 경찰관들은 바싹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성의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들을 '수사권을 둘러싼 검경 갈등의 희생자'로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최재서 형사과장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곳에서 오래 근무한 형사과장 역시 비리에 연루가 되어 있었으나 계장이 덤터기를 쓰는 바람에 운 좋게도 검찰의 칼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반 순경 출신인 과장은 경찰대 출신 간부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그 반면, 장 총경은 정치에 서툴렀고 인맥이 보잘 것 없었다. 워낙 몸을 사리는 성격 탓이기도 했다. 요즘 형사과장은 공공연히 서장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형사과장이 잘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경찰청장이 장 총경의 든든한 배후란 것을. 고시 출신인 청장은 경찰대 출신들의 요직 독점을 견제하고 싶어 했다. 

 장만영이 정화에게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그녀가 이번 사건을 맡고 싶지 않다고 하자 대뜸 질문이 날아왔다.
 "파주에서의 일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악몽이 자꾸 떠올라서요."
 "실은 나도 처음에 좀 놀랐네. 우리가 맡았던 사건이 들어 있어서 말야." 그가 차를 다 마시곤 잔을 내려놓았다. "오 경위, 이젠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오래 전에 자살한 놈의 일을 왜 지금도 마음에 두고 있나? 어린애처럼 왜 그래?"
 "아직 어린앤가 봅니다."

 "이 건을 해결해 봐. 그러고 나면 자네에게 경감 시험 응시할 시간을 주겠네." 장만영이 일어나 이만 가 보라는 듯 일어나 손짓을 했다.
 "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정화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제 요청을 받아주실 거라 믿습니다."
 "관련기관과 상의해 결과를 일려주겠네. 큰 기대는 하지 말게. 최 과장 말마따나 우리도 실적이 중요하니까."
 정화는 거수경례를 한 뒤 서장 방을 나왔다.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유종하의 동생 종서 이야길 꺼내지 않은 게 떠올랐다. 종서는 2년 전에 경화의 구파발 하숙집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다가 순찰 중인 경찰들에 붙잡혔다. 정화의 선처호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징역 2년을 선고했고 수감된 지 1년 6개월 만에 모범수로 출소했다. 그게 작년 8월의 일로, 종서는 그 뒤로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장만영은 정화가 나간 뒤에 정보과장을 방으로 불렀다. 정보과장 서진욱 경정도 정화와 비슷한 시기에 서장이 이곳으로 데리고 온 케이스였다.
 "수서동 모텔 사건은 어떻게 되고 있나?" 서장이 물었다.
 "강력1팀에서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예상대로 만지작거리고만 있습니다." 

 "최 과장이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만. 청부 냄새가 나지?"
 "그렇습니다. 우리도 창촌 애들을 감시하고 있지만 별다른 냄새는 안 나네요."
 "오정화가 밝혀낸 건하고 관련이 있을까?"
 서장의 물음에 서진욱은 그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서장은 조금 아까 찾아온 오 경위가 사건을 맡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얘길 해주었다. 서진욱이 그 이유가 뭔지 들어봤냐고 물었다.
 "자네도 짐작하고 있는 얘길세. 그 일에서 풀어주고 수서동 건을 맡겨볼까?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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