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창생들 - 2. 2012년, 서울 강남 ①

 

 

 2. 2012년, 서울 강남 ①

 

 

 

 

 

 

 

 5월 초. 명환은 아내의 서른두 번째 생일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구청에서 계약직 행정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내 은지의 생일은 다가오는 토요일이다. 연애시절부터 작년까지 매 해 그 날이 오면 일곱 살 난 아들과 함께 오붓하게 외식을 하고 크고 작은 생일선물을 건네주곤 했다. 그러나 올해엔 사정이 좀 달랐다. 올초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트러블 때문에 둘 사이가 한참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발단은 아내의 무단외박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2월이었다.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내에 대한 걱정으로 그는 몇 번이나 전화를 했다. 그러나 아내는 받지 않았다. 걱정과 노여움으로 잠도 못 자고 밖을 서성이고 있을 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창 모임에 왔다가 늦어 여자친구 집에서 자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에도 동창회에 간다하고선 친구들 집에서 밤을 새우고 온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동창회란 보나마나 아내의 중학교 동창회일 것이다. 남녀공학을 나온 아내는 동창들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남자 동창도 있었다. 아내의 다른 동창으로부터 듣자니 만나면 술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때론 나이트클럽도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외박하기 전에 꼭 전화를 했고 그도 설마 무슨 일이 있으려니 하고 그냥 넘어가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아무 사전연락이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화가 치밀었다. 
 "그 친구 좀 바꿔 줘." 하자 아내는, "다 자는데 어떻게 깨워. 아침 일찍 들어갈게." 했다.
 수화기 너머의 사위가 너무 조용했다. 밀폐된 공간었다. 모텔방이나 그 화장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디라고 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상 쳐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하는수없이 통화를 마쳤다. 다음 날 저녁에 퇴근해 보니 아내는 집에 없었다. 아이가 말하길 회사일로 늦는다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외박한 데 이어 다음날도 늦게 들어오면서 전화조차 없다니! 그날 밤 부부는 대판 싸웠다. 그러나 아내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하루는 지방 출장을 갔다가 일이 일찍 끝나 예정보다 이틀 앞서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아이만 있고 아내는 없었다. 어디갔냐고 아이에게 물었더니 그냥 '어디 가는데 오늘 집에 못 들어올 거야'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집에 나타났다. 외출이 2박3일인 셈이었다. 와서 하는 말이 기도원을 다녀왔다고 했다. 무슨 기도원이 주일날 교회도 안 보내고 기도시키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자기 일에 간섭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하도 기가 막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다음엔 외박을 하고 오더니 친구들과 찜질방 갔다가 그만 잠이 깊이 들어 못 들어왔다고 했다. 언젠가부터는 자기 전화기를 잠금상태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가 개입된 게 분명했다. 기독교 신자라도 그 안에 속물이 얼마나 많은가. 그 뒤로 그는 아내와 아예 말하지도 않았다. 방도 따로 쓰면서 이혼의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이가 문제였기에 하루하루 망설이고 있었다.

 

 드디어 토요일, 명환은 간단한 짐을 꾸려 새벽에 현관문을 나섰다. 아내는 깨어 있었지만 자는 체를 하고 있었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탔다. 아내 생일축하 자리를 만들어 보았자 서로 어색할 게 뻔했다. 그런 위선적인 모습을 아내와 아이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1박2일 여정을 잡은 것이었다. 그는 당진으로 빠져 서해안으로 가 바다를 보며 하루 묵고 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나면 마음 속 답답함이 가실 것 같아서였다. 점심 무렵 태안반도 꽃지에 들어섰다. 바닷가에 있는 모텔에 방을 잡고 인근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후엔 바닷가를 걸었고 일몰을 본 뒤에 횟집에 들렀다. 거기에서 여자 하나를 만나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가 같이 모텔방으로 돌아왔다.


 새벽에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네 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처음엔 받지 않았지만 벨이 재차 울리자 폰을 끌어당겼다. 여자는 잠에 빠져 있었는데 시트 밖으로 벌거벗은 엉덩이를 내보이고 있었다. 전화를 건 이는 굵직한 목소리의 남성이었다.
 "박은지 씨 남편 되시죠?"
 이 시간에 아내 이름이 다른 남자 입에서 나오다니. 불쾌했다.
 "그렇습니다만." 명환이 언짢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남경찰서 고찬진 형삽니다. 박은지 씨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혹시 지금 어디에 계신지요?" 이렇게 묻는 형사의 목소리엔 다소 의심하는 기운이 묻어 있었다.
 "충남 태안입니다. 무슨 사고인지요?"
 "그건 오셔서 확인하십쇼. 여기 수서동인데요. 삼성병원 아시죠? 빨리 오셔서 신원 확인을 해주시겠습까?" 형사가 말했다. 어조에 높낮이가 없었다.
 "무슨 사고인지 물었습니다." 명환이 짜증을 냈다.
 "저희도 지금 수사를 하는 중입니다."
 "혹시 제 처가 사망했다는 걸 뜻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명환은 당황하지 않았다. 불륜녀의 죽음. 흔한 일이다. 아마도 남자와 함께 있다가 변을 당했으리라, 명환은 그렇게 예상했다.
 "지금 충청도 태안에 있습니다. 서둘러 올라가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몇 시간 걸릴 것 같군요. 급하면 처남을 먼저 보내겠습니다. 지금 전화 거신 번호로 연락을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명환은 아들이 걱정 되어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러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처남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잠을 깨운지라 처남은 귀찮은 말투로 받았다. 아이가 와 있다고 했다. 아내가 어제 저녁에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명환은 아내에게 변고가 있으니 경찰에게 전화해 병원으로 먼저 가보라고 부탁했다. 처남이 무슨 소리냐고 되묻기에 고 형사에게 들은 얘기를 해주었다. 그 이상은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처남이 그렇게 하겠다면서 경찰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일을 처리한 뒤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아내가 과연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해졌다. 별의별 상상이 머리 속에서 다 일어났다. 두 시간을 달려 올림픽대로에 접어들었을 때 처남한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있다면서 어디 쯤이냐고 물었다.
 "올림픽대로야. 30분이면 도착해. 병원 어디로 가면 되지?"
 "일단 도착하면 전화해요. 시신이 어디로 이동할지 나도 몰라요."
 "대체 무슨 일로 그렇게 됐대?"
 "오면 알아요." 처남이 퉁명스럽게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병원. 처남과 고 형사의 안내로 시체안치실로 갔다. 시체로 보이는 침대가 몇 개 보였고 그것들 주위로 연고자와 많은 경찰관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장인과 장모가 시신에 흰 천을 씌운 한 침대 옆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를 보자 장모가 울부짖었다. 경찰이 천을 살짝 들어 아내의 시신을 보여주었다. 얼굴과 목, 가슴이 만신창이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흰 천이 다시 덮였다. 젊은 경관 하나가 다가와 잠깐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장건희 형삽니다. 현장은 수서동의 한 모텔입니다. 직장 동료와 10시 경에 투숙했고요, 새벽 1시에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유감이지만 현장 사진은 이렇습니다."
 그가 파일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A4 크기의 다섯 장이었다. 첫 사진을 보았다. 벌거벗은 두 사람이 침대에서 피범벅인 채 십자가에 매달린 형태로 누워 있었고 침대와 바닥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명환은 속으로 혀를 찼다. 남자 배에선 장기 일부가 빠져나와 있었다. 명환은 더 이상 안 보겠다며 파일을 도로 건넸다. 남자와 아내의 관계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예상대로였다. 경찰관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시신을 보내 부검을 해야 한다며 서류를 내밀었다. 명환은 형식적인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자신에게 분명한 알리바이가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글쎄요, 아직 뭐라 말씀드릴 수 없네요. 수사 중이라서요." 장 형사가 무심히 말했다. "여길 떠나지 마십쇼. 선생님도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명환이 폭발했다.
 "조사? 아내를 잃은 이 마당에 조사라니?" 새벽부터 내내 형사들 말투와 행동에 속으로 화를 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우라질 놈의 경우가 다 있나? 새벽부터 속을 긁어놓더니만. 책임자 오라고 해!"
 명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모두 이쪽을 바라보았다. 구레나룻을 기른 형사가 다가와 팀장이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명환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구레나룻이 구두발로 장 형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이 새끼, 벌써부터 조사는 무슨 조사야? 아내를 잃은 분한테!" 구레나룻의 일격을 받은 장 형사가 무릎을 절룩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보아도 과장된 몸짓이었다. 구레나룻이 명환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조사가 아니라 그냥 참고로 몇 가지 물어볼 겁니다. 저희도 업무가 많아 힘듭니다. 좀 도와주십쇼."
 "잠시 집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명환이 물었다. "여행을 하고 온 뒤라 좀 씻고 옷도 갈아입으려고요."
 "그러시죠, 뭐." 구레나룻이 선선히 대답했다. 그러나 '네가 튀어봐야 벼룩'이라는 표정이었다.
 명환은 화장실로 가 문을 잠그고 옷을 입은 채 변기에 걸터앉았다. 생각 끝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새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그의 희망과 달리 장미빛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오후 세 시까지 병원으로 돌아오겠다고 하곤 집에 왔을 때였다. 집안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서랍이란 서랍은 죄다 열려진 채 내용물을 흉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새로 장만한 컴퓨터 본체가 보이지 않았고 아내의 빈 보석함은 바닥에 팽겨쳐져 있었다. 도둑이 들었다는 걸 확신하고 명환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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