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창생들 - 1. 전학생 소녀 ④

20일이 지나서야 시신 부검결과가 나왔다. 설희가 걱정했던 대로였다. 호석은 익사한 게 아니라 물에 빠지기 전에 이미 날카로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는 게 그것이었다.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경찰의 움직임이 분주해졌고 학교와 마을은 또다시 충격에 빠졌다. 단순 실종사망사건으로 간잔히 처리하려 했던 경찰은 뜻밖의 결과가 나오자 신경질을 부렸다. 주변 인물을 닥달하고 혹시나 목격자가 있는지 꼼꼼히 수사를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실종일로 추정되던 그 날에 호석이 버스를 타고 학다리 근처에서 내린 걸 봤다는 이가 나왔다. 그리고 미란이 학다리 아래에서 올라오더라는 목격자도 등장했다. 버스 목격자는 평소 술을 좋아하는 같은 마을의 노인이었고 미란을 목격한 이는 고모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집사였는데 종교에 심취해 약간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었다. 엉뚱하게 용의자로 몰린 미란은 처음에 경찰에서 그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그 이틀이 지난 오전, 미란은 호석의 실종 추정일 저녁에 설희가 학다리 아래에서 호석과 같이 있는 걸 봤다고 털어놓았다. 수업을 하다가 졸지에 경찰에 연행된 설희는 미란의 진술에 관한 설명을 듣고 미란이 창호까지 엮지는 않았다는 걸 알았다. 설희는 사실을 부인했다. 미리 말을 맞춘 대로 창호가 농구하는 걸 지켜보고 학교에서 혼자 돌아와 집에서 잠을 조금 잔 뒤에 고모를 찾아 면사무소로 갔던 일, 치킨집에 들러 여러 사람을 만났던 일을 설명했다. 조사를 받는 동안 경찰이 집을 수색했지만 허탕을 친 듯했다. 오후 들어 소식을 들은 고모가 경찰서로 뛰어 왔다. 설희는 수사과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고모가 구세주로 보였다. 고모는 경찰서장 나오라고 길길이 뛰었다. 자기에게 연락도 없이 설희를 연행하고 집까지 수색한 데 대해 항의하고 경찰을 고발할 거라고 윽박질렀다. 이미 경찰 생리에 익숙한 고모였고 게다가 지역 유명인사였다. 같은 공무원으로서 고모에게 신세를 진 경찰도 있었다. 경찰은 그 기세에 눌려 일단 설희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다시 소환할 계획이니 주거지를 집으로 한정한다고 경고를 했다. 수사과를 나오기 전에 고모는 경찰들이 다 보란 듯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남편 없다고 무시하는 거냐? 내 더러워서 니들 같은 공무원 관둬야지. 씨팔."
고모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고모는 말이 없었다. 도중에 마트에서 내려 맥주와 음료수를 샀다. 경찰이 어질러놓은 집을 같이 치우면서도 시종 침묵했다. 정리가 끝난 다음에 고모는 홀로 탁자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설희는 그 침묵이 두려워 방에 틀어앉아 주니어 잡지만 들추고 있었다.
한참 지나 고모가 설희를 불러 탁자에 앉으라고 했다. 그리곤 설희 앞에 조그만 유리잔을 놓다니 맥주를 가득 따랐다. 설희가 안 마시겠다고 하자 한 모금만 마시라고 했다. 쓰고 맛이 이상했다. 고모가 설희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설희는 얼굴을 돌렸다. 고모가 물었다.
"왜 그랬다니?"
느닷없는 질문에 설희는 하마터면 양 손으로 잡고 있던 맥주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설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날을 곰곰이 더듬어봤다. 내 사무실을 찾아오고, 사람들 앞에서 유독 명랑한 체하고. 네가 평소에 안 하던 짓이었다. 더군다나 그날 네가 입고나간 옷이 없다는 걸 진즉 알아차렸지만 물어보는 걸 깜빡했구나. 설마했는데 지금 보니 주방 가위가 하나 안 보이더구나. 이만하면 내 추리가 맞니?"
설희는 고개를 숙였다. 고모가 말을 이었다.
"서에 가기 전에 학교에 들러 네 친구 몇을 만났다. 너와 호석의 사이가 어땠는지 물어보려고. 꾸준히 너를 괴롭혔다고 하더구나. 이유는 모르겠고. 얻어맞고 돈까지 뜯겼다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선생들에게 항의할까 하다가 일이 커질 것같아 그만두었다만 지금도 화가 나고 억울해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그동안 그 얘길 나한데 왜 안 했니? 이 멍청한 계집애야."
고모가 울면서 설희의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그러나 아프지는 않았다. 고모가 울자 설희도 덩달아 울었다. 그 모습에 고모는 설희의 범행을 확신하게 되었다.
"너를 도울 수 있는 건 첫째 너 스스로고, 그 다음은 누가 뭐래도 이 하늘 아래에서 이 고모만 유일하다. 사정을 알아야 너를 도울 수 있지 않겠니?"
고모의 유도심문에 마침내 설희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호석이 괴롭힌 일, 창호가 그걸 못하게 한 일, 다시 호석이 나타나 다리 아래로 끌어가 몹쓸 짓을 하려고 했던 일. 그리고 호석을 찌른 일, 그걸 창호와 미란이 봤고 창호가 수습을 해주었던 일, 집으로 돌아와 수습했던 그동안의 일들을......다 털어놓았더니 속이 시원했다.
얘기가 끝나자 고모는 고개를 끄덕였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일어나 거실을 서성거렸다. 다시 자리에 앉은 고모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겨 가며 턱을 괴고 천장을 한동안 올려다보았다. 머릿속으로 뭔가 그려보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혼잣말처럼 말했다.
"창호가 큰 일을 했구나. 고마운 녀석."
다시 한참을 생각하던 고모는 생각의 어느 대목에서 화들짝 놀라는 것 같았다. 그리곤 얼굴을 설희에게 바싹 들이대며 말했다.
"이건 큰 의문인데 너답지 않은 게 하나 있구나. 왜 호석이에게 그렇게 꼼짝을 못했니? 걔한테 뭔가 약점 잡힌 게 있었니?"
설희는 얘기를 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어느 순간에 판단이 섰는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고모가 고모부를 강으로 밀어버리는 걸 호석이가 봤대요. 나도 그날 봤고요."
그리곤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 말에 고모는 충격을 받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가더니 마신 맥주를 다 토해냈다. 그리고 욕실에서 나와 설희를 껴안으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널 위해 이 나라 최고의 변호사를 불러야겠구나."
그 뿐, 설희 고모는 자신이 남편을 강물에 밀어버린 것에 대해 자신이 죽기 전까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창호는 불안하고 초조했다. 시체유기죄로 잡혀간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미란이 경찰에서 자기 이름은 불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가족이든 누구에게든지 간에 실토하고 말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했다. 설희 역시 경찰의 추궁에 못이겨 자포자기하면 어쩌나하고 걱정했다. 그렇지만 설희가 일단 풀려나자 깊은 안도했다..
미란은 계속 그를 피해다녔다. 몰래 찾아가 불러냈지만 나오지 않았다.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가 불러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미란은 금세 친구들 사이로 도망쳐버렸다. 그런 창호를 주위에서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기에 창호는 미란을 만나는 걸 포기했다. 설희가 두 번째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날 저녁에 설희 집을 찾아갔다. 어지간하면 만나지 말자는 게 약속이었지만 창호가 그걸 깼다. 설희 고모는 집에 없었다.
"너 괜찮니?"
창호의 물음에 설희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다행이구나. 마음 강하게 먹어라. 알았지?"
"응."
"네 고모에게 사실을 얘기했지?" 창호는 묻고싶던 말을 꺼냈다. 설희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창호가 담배를 꺼내물었다. "어쩐지 날 보는 눈초리가 이상하다라니. 뭐라시든?"
"끝까지 잡아떼라고 하셨어."
그 말에 창호는 담배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곤 연기를 허공에 뿌렸다. 그리고 말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네가 곤란해지면 경찰에게 내 이름을 말해도 난 상관없다."
"진짜?"
"그럼. 아무 상관없다. 알아보니 우린 아직 미성년자기 때문에 큰 벌은 받지 않을 거다."
그러자 설희는 심각한 분위기에 맞지 않게 깔깔거렸다.
"오빠 이름이 나오는 일은 결코 없을 거야. 하늘에 맹세해."
이 조그만 아이가 어떻게 그리도 독한 마음을 먹었는지, 창호는 설희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론 설희가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창호는 저도 모르게 설희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설희는 따뜻한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래, 설희야. 이 일 끝나면 우리 서울로 놀러가자."
"좋아."
설희는 얼굴을 붉히며 창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손을 잡은 건 세월이 한참 지나서였다.
검사는 경찰을 밀어붙여 증거 없이 미란의 진술을 토대로 설희를 기소하려고 했다. 서울에서 온 변호사는 별로 성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희는 기소에서 벗어났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미란의 진술 번복이었다. 그 직후 고모는 설희를 데리고 마을을 떠났다. 1997년 1월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