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창생들 - 1. 전학생 소녀 ①
1. 전학생 소녀
1993년. 강물이 구비구비 관통하는 경기도 북단 Y군에도 봄이 왔다.
강가의 버들강아지에 물이 오를 무렵, K초등학교 3학년 2반 담임선생은 학생들에게 새 벗을 소개했다. 그 나이 또래의 평균 키에 얼굴 생김새가 수수한 소녀였다. 그러나 눈매가 깊고 어딘가 모르게 날카로워 보였다. 소녀는 학생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근 Y군에서 그리 멀지 않은 E시에서 전학을 왔다며 자신의 이름을 임설희라고 했다. 소녀는 잘 다려진 회색 면바지에 유명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검은 티를 입고 보라색 샌들을 신고 있었다. 도시풍 옷차림의 이 소녀는 처음 나타난 그 날로 학교 학생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한동안 이 학교에 전학을 온 학생이 없었거니와 자동차 사고로 졸지에 부모를 잃고 당분간 자기 고모 집에 의탁을 하게 되었다는 배경이 호기심과 동정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나날이 계속되면서 소녀에 대한 관심도 점차 학생들 사이에서 줄어들어 갔다. 소녀는 명랑했고 친구를 알맞게 사귀었으며 그다지 눈에 띄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특별한 동정을 받을 만큼 이곳 어린이들의 집안 사정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부모의 이혼이나 도시행으로 조부모에게 맡겨진 아이들, 쇠락하고 있는 소규모 자영업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집안의 아이들이 태반이었던 것이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기 전의 설희 부모는 E시에서 작은 식당을 하고 있었다. 지난 해 한가위 명절에 아빠는 승용차에 엄마와 설희를 태우고 자신의 본가가 있는 충남 B시로 가고 있었다. 고향집에 거의 이르렀을 무렵 경사가 심한 길에서 차는 중앙선을 넘어온 소나타 승용차와 정면충돌했다. 설희 부모와 소나타 운전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설희는 머리에 찰과상을 입고 목을 다쳤지만 큰 부상 없이 기적으로 살아남았다. 불행하게도 부모에겐 변변한 보험 하나 없었고 죽은 소나타 승용차 운전자가 무보험자였기에 설희 앞으로 나온 보상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보상금마저 아버지가 받은 은행대출금을 갚는 데에 거의 쓰였다. 한마디로 천애고아에 알거지가 된 것이다.
고향에 있는 할머니는 경제적으로 설희를 떠맡기에 여러모로 적당하지 않았다. 한편 외가는 그럭저럭 잘 살고 있었는데 외조부모는 연로했고 막 결혼한 외삼촌과 아직 독신인 이모는 설희를 책임지는 것에 난색을 표했다. 외조부모는 설희를 친가 쪽에서 맡아주기를 바랐다. 대신 양육비로 일정한 적지 않은 목돈을 내겠다고 제안했다.
결국 친가 쪽 누군가가 설희를 떠맡아야 했는데 건설노동자인 큰아버지는 결혼하지 않은 채 해외를 떠돌고 있었던지라 우여곡절 끝에 Y군의 한 면사무소에서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고모가 설희를 당분간 맡기로 했다.
설희의 고모 임지현은 그 해 스물여덟 살로, 5년 전에 Y군에서 건설자재상을 하고 있는 남자와 결혼했다. 3년 전에 이곳에서 공무원 자격증을 따 면사무소에 나가고 있다. 그녀보다 7년 연상인 남편과의 사이에 아직 자식은 없다. 집안에서 장남인 남편은 지현이 아들을 낳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생활이 안정궤도에 오를 때까지 임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그 배경엔 남편의 난잡한 여자관계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지현은 설희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맡겠다는 조건으로 설희의 친권자가 됐다. 그녀의 남편은 그걸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사업이 어려워지고 있던 터라 설희 앞으로 나온 외가의 목돈에 눈독을 들이곤 아내의 계획에 동의했다.
고모네는 학다리 근처 마을의 한 허름한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었는데 겉보기와 달리 집안은 깨끗했고 마당은 제법 넓은 편이었다. 고모는 부모를 잃은 설희의 처지를 생각해 아낌없이 보살폈다. 용돈도 넉넉히 주었고 옷이나 학용품, 장난감과 악세서리도 늘 새것으로 바꾸어주었다. 이웃들은 설희 앞으로 나온 돈을 쓰고 있는 거라고 수군거렸지만 고모는 그 돈에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성품이 꼼꼼한 고모는 설희에게 가끔 통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봤지? 봤지? 이건 너에게 생명과 같은 돈이야."
그러나 설희는 그 돈의 가치가 얼마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고모는 나름 지독한 여자였다. 주말에 가끔 서울로 나가곤 했는데 어느 날 고모는 통장을 다시 보여주었다. 거기엔 동그라미가 제법 많이 붙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것도 네 거야. 사고를 내고 죽은 사람 있지? 그 부모한테서 받아냈지. 잘 사는 사람이드만. 한 1억 받아낼 걸 그랬지?"
설희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간단하게 계산해서 피짜 한 판이 오천 원이니까 적어도 피짜 만 개는 먹을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뿌듯했다. 그렇게 마음을 써주는 고모가 몹시 고마웠다.
고모는 면사무소에서 아주 열심히 일했다. 사무실에 앉아 있기보다 주로 문제가 있는 가정을 찾아다녔다. 독거노인을 챙겨주고 부모가 없는 가정의 아이들을 돌봤으며 지원금이 나오면 그걸 들고 대상자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일손이 바쁠 때면 설희에게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고모는 강한 여자였다. 고모부 사업이 실속이 없어 그리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었지만 집안을 알뜰하게 꾸려나갔다. 고모부 도움 없이도 일과 살림에서 완벽에 가까운 여자였다. 가끔 집에서 서류를 늘어놓고 밤새 끙끙거리기도 했는데 다음 날 끄덕없이 면사무소에 출근했다. 고모에겐 또순이, 수퍼우먼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고모는 집안이 흐트려져 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성격이라 설희에게도 정리정돈에 관한 교육을 철저히 했다. 안방과 주방 청소는 고모가 했지만 작은 거실과 마당 청소는 설희에게 시켰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있어선 안 되었고 침대 이불은 가지런히 놓여 있어야 했으며 책상은 지우개 똥 하나 없이 깨끗해야 했다. 티브이 리모컨은 늘 한 자리에 있어야 했고 옷은 옷장이나 빨래줄, 옷걸이 말곤 다른 데서 굴러다녀선 안 되었다. 하루는 고모의 헤어스프레이를 썼는데 고모는 퇴근하고 와서 한 눈에 알아차리곤 그것을 썼느냐고 물었다. 냉장고 내용물 위치가 바뀌어도 금세 알아내곤 했다. 심지어 냉동실에 얼려둔 얼음조각 숫자 조차도. 설희는 고모에게 약간의 결벽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은연 중 설희 몸에 배기 시작한 그 습관은 장차 설희가 살아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고모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특히 닭고기 요리를 잘 했는데 닭곰탕이나 삼계탕, 닭볶음탕은 일품이었다. 특히 닭살을 발라내 고추장을 바르곤 숯불에 구운 뒤 나무꼬치에 꽂은 닭꼬치를 설희는 좋아했다. 설희는 그걸 먹을 때마다 찬사를 잊지 않았고 고모는 즐거워했다.
"고모는 닭꼬치 장사해도 되겠어."
설희가 그렇게 말하면 고모는 "그렇게 맛있니? 에이 요것."하며 설희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고모의 요리 솜씨가 남다른 데도 불구하고 무슨 일인지 고모부는 거의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다. 설희로선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무렵 고모부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일찍 나가고 늦게 돌아오는 고모부와는 거의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집에 안 들어오는 날도 많았고 어쩌다 일찍 들어오는 날이나 휴일에는 안방에서 잠만 잤다. 그러니 부부사이에 대화가 거의 없었다. 설희와 마주쳐도 그저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나 고모 몰래 용돈은 자주 주는 편이었다. 설희는 나름 고모부를 내성적이며 정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좋지 않은 소문도 많았다. 여자 문제 말고도 설희가 이곳에 오기 전에 고모부가 고모에게 자주 폭력을 가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술을 마시고 외박한 것을 고모가 추궁할 때마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고모를 때렸다고 한다. 그러나 설희가 온 뒤로 고모부는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설희는 와장창 하는 소리에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다. 문틈으로 내다보니 고모부가 그릇을 집어던지고 고모를 주먹과 발로 때리고 있었다. 소문대로였다. 설희는 겁에 질려 침대로 올라가 몸을 한껏 웅크리고 밖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날 죽이기 전엔 그 돈에 절대 손 댈 수 없어! 그건 그 애 거야!" 고모가 소리쳤다. 무슨 상황인지 설희는 짐작이 갔다.
"잠깐 빌리자는 것 뿐이야. 굶어죽고 싶어?" 고모부가 고모의 뺨을 때렸다.
"당신이 그동안 얼마나 집에 돈을 가져왔다고 그래?" 고모는 지지 않고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쳤다. "거의 내 돈으로 생활을 꾸렸어. 네 돈 바라지도 않아. 그러니까 알아서 처리해."
고모부는 욕설을 퍼붓더니 휑하고 어둠 속으로 사려졌다. 다음 날 아침 설희가 일어나보니 고모는 퉁퉁 부은 눈으로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설희를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어제 다 봤지?"
"네."
"내 집구석도 구제 못하는 판에 남의 가정 보살피고 있다니, 내 팔자도 참." 고모는 그 뒤로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고모는 창피해서인지 그 일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고모에겐 오로지 교회가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평일 새벽기도회를 꾸준히 나갔고 주말엔 종일 교회에서 살았다. 여신도회장과 주일학교 반사를 자창해 맡기도 했다. 설희도 고모의 권유로 교회에 몇 번 따라다녔지만 동네 아이들과 노는 게 더 좋아 다니길 그만두었다. 고모는 그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가끔 이렇게 말하고 했다.
"너도 언젠가는 예수님을 믿게 될 거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셔."
그럴 때마다 설희 마음 속엔 반항기가 발동했다. 그렇게 우릴 사랑한다는 예수님이 부모를 빼앗고 고모를 다치게 하다니, 설희는 예수가 없거나 만약 있다면 고모부처럼 참 무심한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밤, 부부는 또 싸웠다. 설희가 자기 방문에 귀를 대고 가만히 들어보니 고모부가 무슨 보증인가를 잘못 서서 문제가 된 것같았다. 고모는 닥달했고 고모부는 예전처럼 물건을 던지거나 고모를 때리지는 않았다. 다만 묵묵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고모 입에서 여자 이름이 나왔을 때였다. 집이 떠나갈 듯이 쾅, 소리가 난 뒤 누군가 후다닥 집을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설희가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보니 식탁이 엎어져 있었고 컵과 과자 그릇, 과일들이 바닥에 구르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고모는 설희가 나온 것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원수 같은 새끼." 고모가 중얼거렸다. 고모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설희는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런 날이 계속되면 고모나 고모부 가운데 한 사람은 크게 다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