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한 동창생들
[프롤로그]
늦은 밤 보스톤 남부 슬럼가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은 어둡기 짝이 없었고 그나마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게 태반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우산을 쓴 여자가 잰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틈엔가 남자 하나가 여자 뒤에 멀찍이 나타났다. 그리곤 여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뒤를 따랐다.
여자는 위험하게도 가로등이 없는 곳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조금 더 가자 허름한 건물들이 나왔다. 몇 년 전엔 중학교였지만 지금은 재개발을 앞두고 폐교된 상태다. 여자가 건물 사이 길로 접어들자 남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빨리 했다.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여자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남자는 먹이를 발견한 표범처럼 더 빨리 여자를 좇았다. 건물 사이로 난 골목 폭이 좁아지고 있었고 여자는 숨이 차는 걸 느꼈다. 남자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산을 내던지고 더 빨리 달렸지만 여자 앞에 나타난 것은 높다란 벽이었다. 막다른 골목이었던 것이다. 여자는 벽에 등을 붙이고 골목 입구를 막아선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 남자 얼굴을 비췄다. 젊고 덩치가 큰 백인이었다.
"파티를 시작해 볼까?"
남자가 손으로 눈을 가리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몇 발자국 더 여자 쪽으로 다가섰다. 순간 남자가 딛은 땅이 푹 꺼지면서 오른발이 무릎까지 빠졌고 그 바람에 몸의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구덩이에서 발을 빼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한 번 넘어진 몸이 취기에 말을 잘 듣지 않았던 것이다. 남자는 얼핏 자기가 함정에 빠진 건 아닌가 하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바둥대는 동안 손전등이 꺼졌고 그의 눈앞은 암흑으로 변했다. 눈이 어둠에 다시 익숙해지자 코앞에 바싹 다가온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했지만 동양 여자였다. 여자 손엔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뭐야 이거?"
남자는 머리 속이 텅 비어지는 걸 느꼈다. 곧이어 몽동이가 어깨를 강타했고 남자는 윽, 소리를 지르며 완전히 바닥에 널부러졌다. 통증이 심했다. 아마도 어깨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이어 여자가 남자의 얼굴과 가슴을 구둣발로 몇 차례 걷어찼다. 남자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됐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여자가 무릎을 꿇더니 머리채를 세게 움켜쥐곤 그의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혔다. 여자 손에 칼이 들려 있었다.
"자, 잠깐만......"
그게 남자가 이 세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여자가 남자의 목을 그은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피는 그의 목에서 뿜어나오지 않고 조용히 배어나와 바닥에 고였다. 그리곤 구덩이 속으로 뱀처럼 슬금슬금 빨려들어 갔다. 여자는 건물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손을 씻으며 경련 속에 숨통이 끊어져 가는 남자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남자 몸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 얼마 뒤, 여자는 유유히 현장을 떠나갔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