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맨
찰스 브랜트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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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세이지의 영화를 극장에서만 두 번 보았던 나는, 원작인 이 책을 다시 읽으며 필름을 되감아 재생시켰다. 다시 말해 내게 이 독서는 영화를 위한 부가활동일 따름이었다. "비가역적"인 이 영화를 훤히 꿰뚫은 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영화화 과정에서 새로운 창작물이 탄생했다는 것. 스코세이지는 스토리텔러로서 원작의 수많은 등장인물을 압축하고 새로운 서브플롯을 탄생시켰다면(지미 호파가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 두어 마디의 대사를 추가하는 것만으로 그와 관객을 유대시키는 솜씨), 필름메이커로서는 영화적인 방법론을 접목시켰다. 무엇보다 감탄이 나오는 것은 호파의 죽음 직전 펼쳐졌던 일련의 대화들을, 거대한 파티 장면으로 결집하여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덕분에 <아이리시맨>이라는 영화는 <페인트공이라고 들었소>라는 원작과 결별하여, 새로운 정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번역가의 얘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윤철희가 번역한 책을 여러 권 갖고 있다. 읽을 때마다 실망했던 기억도 여러 번 있다. 특히 로저 이버트가 쓴 <위대한 영화>를 읽으며 여러 번 실소를 터뜨렸었다. 순전히 번역자의 실수 때문에. 아직도 생생한 것은 <대부>의 어느 문장인데, 그는 말런 브랜도가 품은 고양이(kitten)를 주전자(kettle)로 오역한 바 있다. 이 번역가는 최근에도 왕성히 활동 중인데, 솜씨가 그리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원문과 대조해보지 못해 오역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영어를 영어스럽게 옮겨 독자를 힘들게 하는 데는 출중한 듯하다.

모든 일이, 분명히 말하는데, 모든 일이 그 일의 결과였어.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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