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성숙한 사람의 모습을 한번 묘사해보겠습!
먼저 밝혀두고 싶은 말은 우리 안에는 성숙한 면과 미성숙한면이함께 있고 성장은 내 삶에 장애를 일으키는 미성숙한나를 개선해 나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에 이야기할 성숙의 조건을 지금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서 자책하지 않았으면좋겠습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우리까지 충분히 고통받아왔습니다. 나보다 성숙한 사람의 모습은 닮기 위해서 노력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과 똑같은 삶을 살 수도, 살필요도 없습니다. 성장의 길을 걸어 성숙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은모든 사람들이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함이 아닙니다. 성장은누군가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자기다워지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우선 자신의몸을 잘 알고 있고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잘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볼 수 있으며 왜 그런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보내는 감정과욕망의 신호를 잘 알아차려서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롭지 않도록건강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 그의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감정과 마음을 경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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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 믿음은 계속 우리를하게 만든다. 하지만 비상식적이거나 비지성적이어서 불편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지성이라는 그 안정적인 틀을 깨기 때문이다.
ㅡ천국을 가지 말고 살라ㅡ
예수님의 관심은 단 하나,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닌 천국이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해을 때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셨다. 이것은 하늘 아버지의 이름이 이 땅에서도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관심은 죽어서 가는 천국만이 될 수없다.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할까? 바로 이것이 믿음의 관심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믿으라"고 외치는 대신에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선포하셨다. 심지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눅 17:21)고 선포하셨다.
예수님의 사역으로 그 천국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그 천국을 살라는 것이다.
‘천국을 사는 것‘ 이것이 진짜 회개다. 물론 우리가 죽으면천국에 가겠지만, 그 죽어서 가는 천국과 내가 살아서 이 땅에서 살아내는 천국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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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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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더 가문의 미술관인 뉴욕 노이에 갤러리 Neue G객러리 Neue Gallery 에 전시돼있다. 1912년에 그려진 두 번째 초상(180쪽)은 2006년 11월유명여성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사들여 2014년 가을부터 약2년간뉴욕 현대미술관에 장기 임대했다. 이후 2016년 여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개인 소장가가 다시 이 그림을 구입했다. 작품은 새로이주인에게 넘어가기 전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 일시적으로 전시되었고 현재는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둘러싼 국제적 법적 분쟁의 전말이다.
아델레를 그린 그림의 소유권이 아델레가 아닌 남편에게 있다는 결론은 미묘한 여운을 남긴다. 클림트가 그린 귀부인의 초상들은 많은 경우, 그 남편들이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며 세련된 아내‘를 과시하기 위해 청탁하면서 그려졌다. 아름다운 황금 장식에 죽여 옴짝달싹 못하는 듯 보이는 초상 속 아델레처럼, 그극 아델레처럼, 그림 속 여인들은 남편의 가장 중요한 장식품이자 소유물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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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제는 결국 읽다가 생긴 자연스러운 질문과 궁금증을 갖고 시작하면 된다. 단 명심해야 할 점은 논제에 주관적인 의견이 담겨서는 안 된다. 그런 논제가 오히려 생각을 한정시켜서 다양한 발언을 막는다. 예를 들어 스토리상 배반처럼 느껴져 ‘배반‘이라는 단어를 논제 문장에썼는데 책에는 결코 배반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면 쓰지 말아야한다. 누군가는 배반으로 보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제문 안에 내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주의 깊게 검토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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