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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우째 검색도 안되고 이미지도 찾을 수가 없는지. 게다가 알라딘은 자기네들이 구비(?)해 놓지 않아서 검색이 되지 않는 상품에 대해서는 리뷰를 쓸수조차 없는 구조다. 좀 답답한데 이거. 그래서 페이퍼에 옮겨 적는다.

암튼, 이 책은 소개서라기 보다는 팜플렛에 가까운, 헤르타 뮐러의 대표작들의 번역본이 출간되기 전 일종의 홍보의 목적으로 제작된 100페이지 남짓한 소책자이다. 그녀의 대표작에서 발췌한 두편의 짧은 단편과 두편의 칼럼, 그리고 세개의 인터뷰 기사와 노벨상 수상 연설문에 대한 번역문을 담고 있다. 헤르타 뮐러에 대한 아주 가벼운 안내서이자, 그녀의 저작들에 대한 배경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치친위대 아버지와 그의 죄로 인해 러시아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막내딸로 자라난 그의 과거, 독재정권 아래에서 핍박을 받으며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던 그의 인생의 굴곡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의 비영어권 문학작품들은 의외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상당히 한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독일어나 불어, 혹은 기타 유럽어들에 대한 이해가 영어만큼 보편적으로 광범위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수의 전문 번역가들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오는 공급에 일방적으로 목이 메여야 한다. 논픽션이 아닌 픽션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원래 작성된 언어를 통해 감상해야 조금 더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믿지만, 그렇게 따지면 영어외에도 불어, 독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루마니아어, 폴란드어, 스칸디나비아어 등등..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의 언어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번역문학이 소중한 것이다.

시간이 나면 꼭 헤르타 뮐러의 작품들을 읽어봐야 겠다고 다짐했다. 다락방님이 선물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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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1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난 이거 어쨌는지 생각이 안나요. 세권 와서 종혁씨 하나 주고, 친구 하나 주고, 그리고 내껀 어딨는지... 나 이거 읽었는지 안읽었는지도 생각이 안나거든요.

jongheuk 2011-01-20 04:42   좋아요 0 | URL
전 이 작은 책자를 읽고 뮐러의 소설 몇권을 읽어 보기로 결심했어요.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네요.
 
Never Let Me Go (Paperback, Media Tie In)
Ishiguro, Kazuo / Vintage Books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여섯살이 되던 해 영국으로 이민을 왔고,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후 전업 작가가 되어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로 Booker 상을 받았고, 는 Times 지 선정 1923년 이후 최고의 영미문학 100선에 포함되었다. 내가 알기로 2005년 이후 발간된 문학들중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Kathy 라는 30대 초반의 여성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Ruth 와 Tommy 가 Hailsham 이라는 곳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로 구성된 1부, 성인이 된 후 Cottage 로 이동한 후 Donor 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2부, Ruth 와 Tommy 의 죽음을 기록하는 Norfolk 에서의 생활이 담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배경은 1970, 80년대 영국인데, 작가는 SF적인 발상을 통해 이당시 영국에 복제 인간이 합법화되어 있고, 소위 말하는 Clone 들을 생산해 집단 수용하는 시설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Hailsham 이나 Cottage 는 이러한 수용 시설중 한곳이다. Kathy 와 Ruth, Tommy 는 성인이 되면 그들의 장기를 의무적으로 기증하고 삶을 마감하게 되는 Clone 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을 SF 소설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소설의 배경은 거의 마지막 단락인 22장에서야 비로소 밝혀진다. 그 때는 이미 거의 모든 이야기가 진행된 상황이고, 작품의 줄거리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SF 적인 ‘냄새’ 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일종의 성장 소설로 읽었다. 다만 성장하는 과정이 약간 다를 뿐인 이 세 주인공들이 주고 받는 감정들에 집중했다. Kathy 는 극중 화자이지만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주관적으로 서술한다. Kathy 와 Ruth 는 Tommy 를 사이에 두고 미묘한 감정을 주고 받기도 하지만, 결국 우정으로 이를 승화한다. 자신이 클론이고 성인이 되면 세번 혹은 네번의 기증 후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감정은 절박하고 솔직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도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현실을 지배한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현실에 대항하는 삶보다는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의 ‘마무리’ 가 더 중요하다. 시작되는 감정에서조차 끝을 생각해야 만 하는 이들의 현실이 서글펐다.

이 작품에는 아주 작은 스릴러적인 요소가 하나 있다. 클론들 – 소설속에서 클론이라는 단어는 몇번 나오지 않는다. 기관내에서 이들은 students 라고 불린다 – 이 사랑에 빠지면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제출했던 예술 작품을 통해 그 감정을 인정받고 기증을 연기할 수 있다는 루머의 사실 여부가 그것이다. Kathy 와 Tommy 는 이 루머에 의거해 기증 연기를 하기 위해 “Madame” 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과거 Hailsham 에서 자신들을 훈육했던 Gardian 들을 만나 이 루머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된다. 그 실체가 바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 소설의 주제중 하나인, 복제 인간들에게도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 다는 사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Kathy는 성인이 된 후 기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Donor 가 되기 전 그들을 돌보는 Carer 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물론 소설의 처음에서 암시되는 바 그녀 역시 언젠가는 Donor 로서 삶을 마감하게 되겠지만, 그녀는 바람이 울타리를 넘어 자신에게 다가오고, 다시 자신을 지나쳐 길 저쪽 너머로 흘러가듯이 자신의 삶 역시 그렇게 흘러갈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혼자 남은 그녀가 그렇게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사회로부터 획득하지 못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이미 인간보다 더 현명한 존재라고.

킨들 + 영어 원문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읽었는데 문체가 워낙 깔끔하고 정갈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사려깊게 씌어져 있어서 읽는 데에 큰 불편함은 느낄 수 없었다. 2010년의 마지막날부터 읽기 시작해서 새해에 읽은 첫번째 책이 된 이 소설은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한글로도 번역되어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고, 작년 캐리 멀리건, 키라 나이틀리, 앤드루 가필드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불행히도 영화는 현재 근처에서 상영중인 곳이 없고 DVD 로 2월 1일 출시 예정이다. 소설에서 묘사된 장면들이 어떻게 영화속에서 되살아 났는지, Kathy 의 시선으로 그려진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변화가 어떻게 표현되어졌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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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11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물론 번역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했는데!!
나도 읽어봐야 겠어요.
:)

jongheuk 2011-01-13 16:29   좋아요 0 | URL
꼭. 꼭. 읽어 보세요.

다락방 2011-01-13 17:25   좋아요 0 | URL
오늘 샀어요!

jongheuk 2011-01-16 15:21   좋아요 0 | URL
오 저도 기쁘네요. 다락방님께도 좋은 책이었으면 합니다.

2011-01-11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ngheuk 2011-01-13 16:28   좋아요 0 | URL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예요. 전 손글씨가 적힌 편지나 카드를 주고 받을 때 마다 드는 느낌같은 게 있는데요, 봉투를 열 때 보내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그런 기분이 있어요. 봉해져 있는 봉투안에 보내던 당시의 기운이 그대로 간직되는 느낌.
 
위대한 개츠비 펭귄클래식 10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토니 태너 서문, 이만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닉 캐러웨이는 중서부 출신으로 뉴욕에서 증권업에 종사한다. 그는 상류층은 잘 쳐다보지 않는 웨스트 에그에 거주하고, 그곳에서 매일 파티를 열어 사교를 즐기는 제이 개츠비와 전형적인 상류층 부부인 톰과 데이지 뷰캐넌 부부를 만난다. 닉 본인은 사교계의 flirt 조던 베이커에게 빠져 들고, 그는 바로 곁에서 개츠비가 어떻게 거짓된 삶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왔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했으며 그렇게 형성된 재산을 이용해 과거의 사랑이었던 데이지를 되찾으려 하는지 목도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닉은 개츠비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끝까지 '친구' 로서 남아 있게 된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정사는 결국 톰에게 발각되고, 톰은 자동차 수리공 윌슨을 교사해 개츠비를 죽이고 아내를 되찾는다. 닉은 개츠비의 죽음 후 그의 장례식을 주관하고, 조던에게 버림받은 후 뉴욕을 떠나 본인의 고향인 중서부로 돌아간다.

팽귄 클래식 번역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수험생 시절 공부하기 싫다는 핑계로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읽었던 게 벌써 십년도 더 된 기억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만큼, 이제 작품의 화자인 닉의 나이에 가까워진 지금, 개츠비를 읽는 느낌은 많이 달라졌다.

이 작품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하며 또 아름다운지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이 처음 발간된지 약 85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이 작품에 대해 다시 이야기한다는 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를 지닌 고전의 미덕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끔 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대로 작품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허투루 읽을 부분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짧은 기간동안의 한 사건에 집중하면서 중편에 가까운 구성 양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사회의 공기를 오롯이 담아내는데에 한치의 오차도 없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이스트 에그와 웨스트 에그로 대비되는 공간 개념부터 주인공 닉이 처한 위치,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가 전후 '버블' 이 극으로 치달았던 당시 미국 사회의 술에 취한 듯한 사회상을 정확하게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 닉과 개츠비는 뉴욕 출신이 아닌, 중서부 출신으로 "상류 사회가 덜 선호하던" 웨스트 에그로 상징화된다. 전통적인 뉴욕 상류층 출신인 톰과 데이지 부부는 이스트 에그로 상징화된다. 이 두 집단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당시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집단 허영심과 도덕적 공황상태를 충실하게 대변한다. 톰에게 이용당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마는 하류층 윌슨까지 동원되어 사회의 모습을 묘사해 낸다. 계층간 대립과 계층 내부의 부패, 그리고 그 계층 구조의 덧없음까지 문장 한땀 한땀에 진하게 베어 나온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잔인한 좌절의 늪으로 몰고 간 것일까? 돈과 자본주의 사회, 소유에 대한 집착과 욕망, 보여지는 것에 대한 굴복과 물질에 대한 복종. 그 모든 것이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적절한 지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우리는 개츠비와 닉이 빠졌던 늪에서 완벼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 개츠비는 데이지앞에서 참으로 낭만적이었고 철이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면서도, 재산 형성 과정에 있어서는 완벽에 가까운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그의 비뚤어진 욕망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데, 혹 우리는 그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즉 왜곡된 가치를 스스로에게 주입해 그릇된 자기 정당화를 가져오지 않는가 말이다.

책에는 작품에 대한 대단히 좋은 해설인 토니 태너의 서문과 에스콰이어에 연재되었던 피츠제럴드의 수필 <무너져 내리다> 가 함께 수록되어 그의 문학적 배경을 짐작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만식 옮김. 2009년 1판 3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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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1-0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년도 더 전에 이 작품을 읽었을 때, 그때는 어떤 느낌이었어요? 나는 이십대 중반에 처음 읽었는데 재미도 없고 무슨말인지도 몰라서 내팽개쳤었거든요. 무라카히 하루키의『상실의 시대』에 끊임없이 개츠비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읽었었는데.. 그런데 그 뒤로 친구에게 빌려줬는데 친구가 엄청 재미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다시 읽었죠. 여전히 왜 재미있다는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러가다 몇년 지나서 세번째로 다시 읽어봤는데, 와, 엄청 좋더군요! 뭐가 어떻게 좋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았어요. 그래서 피츠제럴드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고 그러다가 단편집을 읽었는데, 피츠제럴드는 단편에 더 천재였어요! 저는 개츠비보다도 그의 단편에 완전 반해버렸어요.

근사해요, 피츠제럴드는.

jongheuk 2011-01-11 14:2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인데요, 피츠제럴드는 세상에 많이 찌들고 더 많이 서글픈 인생을 살 수록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작가인 것 같아요. 십대들이 읽기에는 적절치 않죠. 단편도 시간날 때마다 잘 읽고 있어요. 단편도 무척 좋죠.
 
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다니엘이라는 소년이 있다. 어릴적 어머니를 잃은 이 어린 소년은 서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간 '잊혀진 책들의 묘지' <바람의 그림자> 라는 소설을 발견하고 이내 매혹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악마의 이름을 가진 라인 쿠베르라는 얼굴없는 이가 이 소설의 저자인 훌리안 카락스가 쓴 모든 소설을 불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소년은 수수깨끼의 인물인 훌리안 카락스의 정체를 찾아 나가기 시작한다. 소년의 십대는 카락스라는 인물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으로 압축된다. 그의 주변에 카락스를 알고 있는 점점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고, 다니엘은 스스로의 성장과 함께 카락스에게로의 접근도 점차 완성해 간다.


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짧고 간략하게 정리하기 위해 노력해본다. 먼저 이 소설은 여러모로 영화의 시나리오나 연극을 위한 희곡을 연상시키는데, 이 소설의 저자인 사폰이 영화계에 몸담았고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이 소설을 마치 영화화되기 전의 원작소설과 같은 느낌으로 쓰고 있다. 모든 장면에 대한 세세한 묘사와 스릴러적인 긴장감을 조성하는 네러티브 구조는 전통적인 소설의 형식이라기 보다는 두시간짜리 영화를 위한 짧은 호흡의 기승전결에 가깝다. 십대 소년의 성장기와 미지의 인물에 대해 한꺼풀씩 벗겨 내는 스릴러 구조의 묘한 대구는 퍽 명민한 구성방식이다. 카락스는 다니엘의 거울이고, 다니엘은 카락스의 복제판이다. 유치할 정도로 세부적인 묘사를 통해 이 두명의 과거와 현재를 대구로 연결시키면서 한 소년이 호기심 가득한 철부지 어린 아이에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역사를 반복하는 주체가 될 때까지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너무 영화적이고 또 시각적이어서 사실 소설을 읽는 맛을 크게 느끼기는 어렵다. 단어 하나 하나에 집착하지 않고 빠르게 읽어 나가도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결코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불필요한 문장들이 넘쳐 나는데, 이 문장들이 문학적인 완성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인 구성을 위해 쓰인다는 점을 알고 나면 더더욱 글자들에 집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흡인력은 아주 강한 편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갈구하는 정보들은 적당한 긴장감을 유도한 뒤 아주 솔직하게 던져 주는 편이다. 독자는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카락스와 다니엘이 결국 같은 운명을 반복할 것임을 알고 있고, (웰메이드 무비로서 기능하고자 한다면) 소설의 결말은 그 기대를 살짝 비틀면서 헤피엔딩으로 끝마치게 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읽는 내내 지루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읽으면서 영화 <타인의 삶> 이 계속 생각났다. 이래저래 비슷한 점이 많다. 전후 세대의 공허한 정서를 타인에 대한 집착과 광기로 풀어 내고 -다시- 타인에 대한 숭고한 희생으로 극복하게 된다는 기본적인 정서가 우선 그렇고, 영화의 결말과 아주 유사한 형태의 결말이 그러하며, 결말 부분에 이르러 얻게 되는 뭉클한 감동의 유사함이 그러하다. 영화 <타인의 삶> 도 그렇고 소설 <바람의 그림자> 도 그렇고 굉장히 잘 만든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완성된 예술작품같다.


개인적으로 그 어떤 등장인물로부터도 '감정' 을 느낄 수 없었는데, 굉장히 평면적으로 묘사된 캐릭터에 기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몸짓, 성격등은 너무 명확하고 또렷하게 각인되지만 그 인물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고통의 심연에 대한 묘사는 아주 직설적이고 투박한 어체로 표현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묘사된 행동들을 통해서 저 인물의 심리상태는 이렇겠구나, 하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명확한 줄거리와 기승전결, 확실한 긴장감과 그에 어필하는 뚜렷한 결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좋아할 만한 작품이고,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심리 묘사나 철학적인 사색, 조금 더 역사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관찰하는 쪽을 선호한다면 그럭 저럭 읽어 나갈 수 있는 소설같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읽은 - 한글로 번역된 - 픽션이어서 그런지 기대보다 못한 게 사실이다. 나는 속도가 약간 떨어지더라도 성실하고 깊숙히 들어가는 문장들이 얽혀 있는 책이 좋다. 이 책은 내게 너무 빠르고 급한 감이 있었다. 얼른 - 방학이 끝나기 전에 - 다른 작품을 읽어야 겠다.


씨네 21에 하도 광고가 많이 나와서 대체 뭐길래, 하는 호기심에 제목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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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30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 책을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 읽다가 막 가슴이 뛰기도 하고 벅차오르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을 다섯을 줄 수가 없었어요. 영화같은 느낌을 줬기 때문이죠. 저는 영화처럼 읽히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거든요. 마지막에 언급한것처럼 '성실하고 깊숙히 들어가는 문장들이 얽혀 있는' 그런 책을 나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책이라면 말이죠.

다음에 읽을 작품도 리뷰 써줘요!

jongheuk 2010-12-30 17:28   좋아요 0 | URL
그래서 다음에 읽을 책으로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골랐어요. 다락방님이 보내주신 단편선이랑, 위대한 개츠비요. 적절한 처방같죠?

다락방 2010-12-30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서재에 댓글 달고 왔더니 퍼스나콘 바뀌었어요! 튜울립인가? 아우~ 예뻐요! >.<

근데 서재 닉네임은 jongheuk 로 할거에요?

jongheuk 2010-12-30 17:29   좋아요 0 | URL
으하하 드디어 바뀌었군요. 처음에 자동으로 생성된 서재 스킨이 지금과 같은데요, 노란색 꽃이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해봤는데 진짜 잘 어울리네요.

음, 닉네임도 따로 정해야 하나요.. "순이" 어때요?

다락방 2010-12-30 18:03   좋아요 0 | URL
후버까페는? 후버까페는 어때요? 근사하지 않아요? 히히

jongheuk 2010-12-31 03:38   좋아요 0 | URL
완전 근사한데요, 제가 그 닉네임을 달기에는 너무 벅찬 감이 있네요. 닉네임이 지나치게 멋있어도 안되잖아요. 현실과의 괴리감때문에.. -_- 차근 차근 생각해 볼게요.

다락방 2010-12-31 08:18   좋아요 0 | URL
응! 무슨말인지 알 것 같아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순이'도 괜찮아요. 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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