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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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의 소식은 인터넷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접하는 것이 고작인 이 곳에서 최근 발간된 한 소설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책을 구입하게 된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 아닌 내게는 더더욱 그렇다. 두가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검정치마의 “antifreeze” 가 소설에서 중요하게 쓰인다는 것과 (나중에 알고 보니 릴리 슈슈의 “glide” 도 나오더라)  70년대 후반, 혹은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젊은이” 들이 자녀가 아닌 부모의 신분으로 소설속에 등장한다는 것. 이 소설과 김애란이라는 젊은 작가의 이름은 내가 들르는 거의 모든 인터넷 공간에서 최소한 한번은 회자되었다. 그러다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구하기 위해 한국의 한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해야 할 일이 생겼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배송비가 아까워 전부터 사고 싶었던 책들을 마구 끼워 넣던 중 이 책의 이름이 생각나 함께 주문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 책을 아주 좋게 읽었다. 단지 유쾌한 버전의 “병원 24시” 라던가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을 주세요> 의 한국 버전이라서가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오히려 상투적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주제에서 오는 무거움과 그것을 떨쳐 내는 긍정의 기운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이 소설의 독창성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기술적인 장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작가가 진심을 다해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분 부분 상투적인 표현들과 어쩔 수 없이 전개해야 하는 비소설적인 구성, 예를 들어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만드는 (이건 대부분의 현대 소설이 가지는 고질적인 병폐라고 할 수 있다) 묘사들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최소한 그러한 단점들이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 무언가를 퇴색시킬 정도는 아니다. 어린 부모와 늙은 자식의 이야기는 덜 자란 부모와 지나치게 성숙한 자식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부모를 통해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을 바라보고 자식을 통해 – 역시 –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을 바라보는 마주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작가가 아주 섬세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억지로 상황을 만들어 내는 어리석은 창조주가 아니다. 묘사에 집착해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그려내는 한 가족의 담담한 일상을 통해 어떤 ‘선’ 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인터뷰는 아직 전혀 읽어보지 않았다) 내가 이 소설에서 받은 인상은 일종의 직선같은 것이었다. 비뚤비뚤하게 그어져 있을 수도 있고, 어떤 구간에선 희미하게 표현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결코 어느 한쪽으로 치우처져 있지 않은 곧은 모습의 선. 그 선은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몸부림치지 않는다. 그냥 주욱 앞을 향해 갈 뿐이다. 그 선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당장 내일 먹고 살기 힘들어서 받는 고통, 혹은 삶을 더이상 영유할 수 없다는 극한의 슬픔,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어떤 일상이 있다. 거대한 담론속에 함부로 묻혀버릴 성질의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그리고 나누어야만 하는 따뜻함이 있다.

그래서 아예 희망이 없는 존재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는 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장기적인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삶의 작은 부분에 대한 가치를 일깨우는 일은 조금 더 쉬웠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가장 큰 희망, 혹은 가능성을 상실한 그 존재가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 얼굴이 벌개짐을 느낀다. 최소한 “아, 나보다 안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겠구나” 같은 기계적인 교훈때문은 아니다. 그건 아주 기술적인 교훈이고 우리가 얻고자 할 때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소모품과 같은 감동이다. 이 소설은 그 이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최소한 일곱 여덟번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으며 가졌던 생각이기도 한데, 굳이 의미가 통하는 단어를 선택하자면 “마주보다” 정도가 될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눈을 내리 깔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며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모습을 이 소설에서 느꼈다.

2011년 6월에 초판 1쇄가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내가 구입한 26쇄는 9월에 찍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에 괜한 안도감을 느낀다. 아마도 이 소설이 가지는 트렌디함과 늘어지지 않는 적당한 가벼움, 그리고 극적인 반전이 주는 구성에서의 매력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에서 좋은 것을 발견한다. 그것때문에 잘 읽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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