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언어학 강의 현대사상의 모험 18
페르디낭 드 소쉬르 지음, 최승언 옮김 / 민음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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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언어학자 소쉬르가 생전에 강의한 내용을 그의 제자들이 강의 노트를 기반으로 편집한 책이다. 이 고전에 대해 비전문가인 내가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전공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므로 책에 대한 감상은 생략하는 쪽을 택하겠다. 다만 이 책이 갖는 의의와 상징성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쳐 있음을 안다면 세상이 약간은 달리 보일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이 책에는 랑그/파롤, 시니피에/시니피앙, 공시성/통시성 같은 아주 유명한 개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쉬르의 천재적이고도 직관적인 개념들은 이후 구조주의라는 거대한 사조의 원형이 되고, 철학, 미학, 기호학, 사학, 인류학, 사회학, 그리고 수학과 건축학등 거의 모든 학문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책에서 소쉬르는 현대의 주요 개념들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는 이 책에서 단지 언어학만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현대의 거의 모든 개념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아마 소쉬르를 한번쯤 건드리게 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사상은 어마어마한 파생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소쉬르의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당시 한길사에서는 ‘한길로로로’ 라는 시리즈를 내 놓았는데, 이 시리즈는 당대의 유명한 인물들의 생과 사상을 한권의 책으로 간략하게 엮은 일종의 소개서였다. (지금 알라딘에서는 55개의 책들이 이 시리즈내에서 검색된다) 기본 지식이 거의 없는 나같은 학생에겐 참 유용하고 친절한 개론으로 기능했고, 여기서 소쉬르를 처음 만났다. 당시에는 별다른 충격없이 넘어갔는데 이유는 소쉬르에 대한 소개서를 읽은 이유가 단지 따분한 고등학교 야자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이후 대학교에 올라가 도서관 철학 코너에 자주 들르게 되면서 소쉬르를 다시 접했고, 그제서야 비로소 대단히 큰 충격을 받게 됐다. 내가 알던 언어 체계가 산산히 분해됨과 동시에 사회, 문화적 컨텍스트도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바라보게 됐다. 이후 푸코나 데리다, 들뢰즈같은 구조주의의 마지막 세대들에게 큰 지적인 수혜를 받았다. 지금까지도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고 관찰할 때 나는 소쉬르의 영향을 받는다. 구조주의는 이제 한물 갔 – 다고들 얘기하 – 지만, 그들의 방식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얼마전 방문한 통영에서의 긴 수다 도중 잠시 나의 과거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 퍼뜩 이 책이 생각나 이후 서울로 올라와 책을 구입했고, 이제서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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