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일어난 일을 담담하게 얘기하는데, 그 화자의 태도가 독자를 어르고 달래서 “조금 잠자코 기다려봐 그럼 재촉하지 않아도 내가 차근차근 얘기해줄꺼야.”라고 한다.한 마디로 독자를 길들이고 있다.나쁘게 보면 별것도 아닌 얘기를 왜이렇게 감상적으로 해결하려 드는건지 의문이 들어 의아해질 뿐이지만, 반면 수긍하고 “그래 일단 들어봅시다”하는 또 다른 태도가 앞선다. 보잘것 없어보이는 기억들이 인간을 구속한다. 그리고 그를 또 그 안에서 살아가게 한다. 나는 종종 온갖 학창시절의 순간을 뒤엉켜서 공존하는 꿈을 꾼다. 그게 중학교 배경일 때도 있고 고등학교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껴들어 올때도 있고, 꿈이라해서 그냥 망상이라 치부할만한 쓸데없는 기억들이 혼재해서 기억을 사실화로 뒤덮으려한다. 내가 보고 말한, 재생되어 기록된 저장창고에는 무엇이 진실이고 가짜인가? 스스로가 운명에 대한 결정권을 내맡겨둘때 자아는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상황에 처했을때 지금의 나로 만족할 수 있을까? 왜 이런 소설을 써서 사람들을 동요시키는지, 나는 더욱 작가에 대해 궁금해졌다.
도대체 ‘영휴’가 무슨 뜻이지? 하고 생각했다.기존에 못들어 본 단어라해도 대략적인 느낌을 유추로 어느정도 가늠할만도 한데 도통 그 추측조차 허용하지 않았다.마치 일부러 꾸며낸 듯한 어려운 단어를 찾아 헤매인 결과라는 듯이.전개가 예상밖으로 나아가길래 조금 당혹스러웠다. 이내 마음의 평정을 찾고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지 관망하는 자세로 지켜보기로 했다. 다소 비슷한 이름으로(심지어 일본인들) 등장인물들이 중첩해서 새로이 등장하는데 나중에는 일일히 기억하는것도 부담스러워서 늬앙스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작가본인이 언급한 사항이지만 이건 중편소설이었다. 중편인지 장편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건지 페이지 수량인가? 아니면 글의 구성으로 척도를 삼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소 단절된 듯한 결말. 그것이 여운이라도 발휘할 것이라는 작가의 의도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잘 발휘하던 능력을 후반부에 들어서 최후의 순간을 감지하고서는 뒤로 빠지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결말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전개는 그의 다른 소설과 같이 시간의 흐름이 서로 번갈아 얽히다 후반에 들어서 마주하게되는 방식이다. 추리소설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도 되는양 작가가 고집하는 전개방식이 나름 고집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죽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없다. 직접적이라고 얘기해서 꼭 본인이 죽을 것 같다는 경계에 서있었다는 것을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고, 이를테면 친척이나 주위 사람들의 죽을을 목격하거나 관여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에게 장례식장은 나이가 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여러 번 가지 않을 수 없는 환경으로 조성되었고, 마치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듯한 성의를 내보이듯 나는 조문을 하게 되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듯 해보이는 고인과의 친분은 그의 가족이나 지인을 알고 지냈다는 조건으로 함께 슬퍼할 수 있다는 입장권이 되었다. 그래서 멀리멀리 돌아서 도착한 "죽음"이라는 단계에 내가 크게 감흥하거나 인상적으로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은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서로 다른 죽음과의 관계를 얘기하고 있지만 그 형태의 본질이 어떻게 다양화 되어 구체화 될 수 있는지, 나는 조금이나마 멀찍이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서 소설집을 관망하듯 읽었다. 마치 알고 지내는 사람의 엿들을 소식마냥 나와 관련있으면서도 전혀 모르고 지낸 타인 대하듯 그렇게 말이다. 오랜만에 읽은 한국작가이었기 때문일까. 작가가 풀어헤친 문장과 단어사이로 스며드는 전개가 빠른 속도로 머릿속을 스며드는 듯이 조심스럽게 동시에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글이 대놓고 대단하거나 엄청나거나 위압되는 모습이 아니었기에 묵묵히 퍼져나가, 시간이 흐른 뒤의 반응이 당혹스럽게 느껴지는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잘 맞아떨어져서 아무런 위화감없이 서로 얽힌 톱니바퀴마냥 죽음은 그렇게 삶에 연결되어있나보다. 뭐 그리 대단한 것 마냥 떠들어봐도 죽음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에 섞여서 삶과 시간에 적절히 교회될 수 있는 요소인가 보다. 이렇게 까지 삶을 포착하고 디테일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감성을 가진다면 얼마나 삶이 무섭게 다가올까. 슈퍼파워라고 불리는 히로물의 영상속에서의 그것이 꼭 상상속으로 유희되는 산물에 그치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했다. 행동하나가 인상하나가 서로 한데 모여 새로운 논의를 하고 또 다른 모양으로 그 존재의 이유를 부각한다. 그건 느낄 수 있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의 죽음이고, 작가는 무지한 독자를 위해 친절하게 순간을 포착하여 문자로 남겨주었다. 너무 좋은 글과 작가의 감성에 더 이상 무슨 할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