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난해해서 쉽게 읽기어렵다는 타인의 후기를 들었다. 직업인으로서의 디자이너는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지 일을 마주함에 있어, 하루를 채우는 생활에 있어 나는 작가를 통해서 문득 나의 모습을 빗대어 보게 된다. 자신을 잃지않고 나를 믿고 꿋꿋이 나아가는 모습은 결코 특정직업에 한해서 어려운 일은 아닐터. 그렇기에 조금은 타인에게 날카롭게 파고들며, 때로는 예민하고 세심한 어려운 존재로 보일 수도 있겠다. 작가의 글도 그러했다. 스스로를 지켜내기위해, 내가 온전히 나로써 존재하기위해 최소한으로 막아내는 방어막처럼 나는 그의 글을 읽었다. 우리는 아마 똑같은 한국말을하고 소통을하는데, 말의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고있는 의도와 정서, 감정의 균형은 사람에 따라 미묘하고 어색하게 조화를 이룬것처럼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애매한 경계에 있어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지키고자한 오늘에 아마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은 아닐런지.
대단한 사람이 대단한 삶을 살며 대단히 과분한 조언을 해준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지 아닐지는 본인들이 처한 상황에 빗대어 세심하게 살펴보면 될터이다. 자본주의 삶에서 숫자로 서열화한 우월성을 부정할 길은 없으나, 맹목적인 탐닉에 빗댄 목적성이 내게는 꺼림직하게 거부반응을 일으킨것을 보면 나는 아직 분명한 내 길을 감지할 수 있나보다. 타인의 조언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타자의 삶이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듯이 모든 상황이 단편적으로 평가절하 될수 없을 터이다. 다만 그 상황이, 해결책이 내게 동일하게 적용될지 아닐지는 내가 결정함에 있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는다.
삶을 살아간다는건 사람들과의 모습에 동화된다는건데, 그 안에 섞인 편견과 차별을 나는 홀로 벗어날 수 있을까? 차라리 그 안에 길들여져서 차별 받는 대상이 되지 않도록 존재하길 기도해야 하는건 아닌지. 머리로는 알지만 맞닿은 현실에 스스로가 부끄럽게 여겨지는 글들이 한 권으로 묶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