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이라는 장르를 뒤집어 쓴 소설같다. 에릭호퍼가 얼마나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는지는 책을 덮은 후에 느껴도 충분하다. 오히려 오퍼리즘으로 대변되는 인물을 장황하게 설명하려드는 옮긴이의 말이 너무 거추장스럽게 불편했다. 철학이라는 거창한 틀은 그 한 권의 몇 장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얘기가 얼마나 자유분방한지, 그 가 길을 떠나는 여정마다 마치 기획된 장치라도 마련해 둔 것처럼 모든 것이 이상적으로 마련된 픽션같았다. 욕심없는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세계란 저런 모습을 하고있는 것일까? 일에 대한 것도 삶에 대한 것도 답이란 없는 것인데, 그가 겪은 상황과 세계관이 조금 낮설게 경외스러울 뿐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구매를 유도하는 홍보성 글이다) 소개글에 몇 줄의 문장으로 주절주절 거리다가 마지막 단락에 이런 말이있다.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탐색하는 독자들에게 세속적 욕망과 인생의 이상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점검할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글쎄 이 문장을 얼마나 가슴에 와닿게 이해하고 책을 장바구니에 담은이가 있었을까? 사실 그 홍보글이 허구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아이러니 하게도 저자가 하고자 하는 요지가 바로 그 문장으로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표지의 일러스트와 ˝하버드˝라는 브랜드로 뭔가 멋진 유학길에 오른 듯한 느낌이었기에 끝 문장을 뒤로하고 책을 덮고서는 뭔가 배신 당한 감상이 들었다. 다소 반HBS감정이 격한 저자는 학교에 대한 애정이 과한 탓인지, 그냥 쉽게 넘어가는 구석이 없다. 다소 비판적인 그의 관점이 전혀 나와는 관계 없는 소리라고 단정지어 넘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절실하게 그가 겪은 과정이 남일 같지도 않았던 것은 내가 지나오며 기억할 수 있는 과거의 끝자락과 저자의 상황이 신기하게도 잘 맞물려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심지어 ˝하버드˝의 그런 대단함과 전혀 관련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본 가치가 동일한 규칙으로 공유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가 학교를 다니며 고민하고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해 불안함을 갖는건 그렇게 위대하다고 우러러 칭송받는 네임밸류에서도 (심지어 자세히 더 알지못해 그 가치가 더 높게 느껴진다) 별반 다를게 없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늘 비교하며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만큼 인생을 쓸모없이 소비하는건 다시한번 버려야 할 관습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은 얼마만큼이나 강인한 자아를 구축해야 하는 것일까? 과연 그 자아의 끝에는 어떤 가치만을 남긴채 유유자적하는 나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일까? 하버드의 비지니스는 그냥 허울 좋은 틀 일뿐 저자가 분명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사실 그게 아니었다. 지금 보다 조금 더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기를 원한다. 그게 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건 본인이 결정할 일이지 그 가치가 훼손 되는 건 아니니깐. 시류는 더욱더 강하고 그렇게들 다들 쉽게 얘기하는 ˝초심˝이라는 가치는 그냥 이상화된 박제처럼 고고할 뿐 아무런 답을 해주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신앙을 받들여 왔는지 이미 그런 강요에 익숙해 나 조차 그 조각의 하나인지도 모를지경이다. 발표를 준비하고, 시험공부를 하며 때로는 친구와 나누는 저자의 사소한 대화가 다시한번 학생이었던 때를 기억하게 했다. 헛소리만 주절대는 교수의 수업때는 읽는 상황에서도 같이 지루하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멋진 가치가 왜 그렇게도 그 때는 답답하기 그지없는지, 완벽하게 만들어진 공식처럼 나는 나의 모습을 책을 빌미로 다시 한 번 기억에서 꺼내보았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고민하고 질문할 것˝ 그게 아직까지 내가 찾은 유일한 단서인듯 하다.
˝핀란드˝라는 미지의 국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후루룩 뒤적이는 찰나에 보여진 그 자체로만도 귀여운 일러스트가 무슨 얘기들을 담고있는지 너무 굼금했다. 매끈하며 두께감있는 새하얀 지류와 투영하게 맑은 파란펜의 그림들이 모인 한 권은 이게 작가가 느낀 핀란드였구나 하는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종이책은 당분간 전자책과 타협할 수 없는 우위를 선점했다) -한 사람을 만나 시작된 여행의 출발점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듣는 것도, 일정에서 너구리를 끓여먹거나, 몸이 않좋아 멋진 뷰를 볼 기회가 사라진것도 어찌나 소소한지 그게 그냥 멋졌다. 보통 여행기라 하면 (특히나 이미지가 우선인 경우) 저자가 다녀온 곳, 먹은것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습득하곤 보통의 이국적인 상황으로 일반화해버리기 쉬운데, 작가가 경험한 관점으로 (일러스트화) 보여주는 방식이 꽤나 신선했다. (그 어떤 페이지에서도 실사 이미지가 없다) 덕분에 단순 ˝핀란드˝라기보다,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핀란드˝에 다녀온 느낌이 더 잘 표현되었다. (핀란드에 대한 인포는 구글에 물어봐야겠지) 사실 개인적으로 별 관심없는 먹는투어로 얘기가 새는 것 같아 (물론 중요는 하지..) 맛집소개서인가 하고 도중에 그 정체성을 의아해 하기도 했다. 몇 몇의 페이지에서 인쇄의 문제 탓인지 중간중간 이미지 상태가 들쑥 날쑥한건 조금 아쉬웠다. 아마 작가가 여러 노트에 그린것을 스캔한것인지 마지막 편집상태에서 통일되게 톤을 맞추려는게 미묘하게 보여 아쉬운 디테일이 드러난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런 멋진 책이 만들어 졌기에 보이는 옥의 티.작가가 다녀온 여행은 멋지고, 알려준 핀란드도 아름다웠다. 다음에는 작가가 어떤 다른 얘기로 찾아올지 기대된다.
책표지에 그려진 일러스트 만으로도 이 책은 당연하게 호기심을 일으키기 분명했다. 어느 누가 학생시절 자신이 가지고 다녀야 했던 문구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없었을 것인가? 그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한다면 저자는 타깃 설정에서 이미 엄청난 수준에 이른 고수임에 틀림없다. 사실 영국인 (본의 아니게 저자의 활동 구역이 수시로 노출된다)으로 바라 본 관점 탓인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낯선 제품이 추억의 문구로 등장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그건 나름의 신선함도 독특함도 느낄 수있는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매번 이미지 검색을 할 수고로움을 격을 수도 없으니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르는척 하고 책장을 넘기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잘 쓰던 대학 노트가 리걸패드라는 낯선 분으로 등장하는데, 차마 그게 그걸 뜻할 것이라 예상조차 못했다. 포켓프로덱터 라는 용어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너무궁금한 나머지 구글링..)문화적이 차이를 어쩔 수 없이 경험하고 나서는 문구 그 자체에대한 집중은 꽤나 흥미롭다. 특히 펜에 대한 아주 사소한 시작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의 확장성은 (이미 내가 경험해본 문구인 탓인지) 펜에 대한 경외심까지 품게 만들었다. 그런 이미 보편 기본적인 몇몇의 대상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심도있게 문구얘기를 풀어내지 못한 점이 (그 폭이 너무 상대적인 탓인지) 조금 아쉬웠다. 후반부의 조금 자질구레한 잡담이 뭔가 용두사미. 그래도 작가가 보여준 세계관은 멋지고, 누군가에게는 매혹적인 대상으로써 구축된 공간을 엿보게 된 점은 부인할 수 없도록 좋았다. *바로 이전에 감명깊게 읽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가 피력하는 가치관과 상충되는 점이 엿보여 다소 어지러웠다.. (다시 물건을 모아야하는 것인가..)
어른이 되면 조금이라도 분명한 가치관이 자동으로 나이가 채워지 듯 갖춰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지고 있던 방향마져 모호해짐을 느끼고는 한다. 개인주의로 살건 집단주의를 추구하든 이건 도대체 어떤 답을 제시하려하는지가 궁금했다. 저자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겪어온 그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 흥미롭다. 분명 이 분은 위트로 가득차있어 툭하고 치면 냉소적으로 상황을 간파할 무언가를 확실하게 제시해줄 것만 같다. 조금은 조심스러우면서 결국 할 얘기는 다 하고마는 그런 사람. 다음 챕터에서는 이 아저씨가 도대체 어떤 얘기를 할지 그냥 사회경험 많은 분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마음으로 관심이 갔다. 아직은 불완전 하기에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지만, 이미 그 기대감에 더한 감상을 주기에 이미 체념한 내가 보였다. 글쎄 무엇을 바라며 내일을 바라고있는건지 이 끊임없는 질문가운데 한 아저씨가 건내는 말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