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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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수상이 결정되어 신문 한쪽에 기사기 실렸길래, 이번에는 어떤 난해한 이야기가 관심도 없이 잊혀질까 하는 마음에 쓱하니 헤드라인만 힐끗하고 넘겼다.<편의점 인간>이라니. 모두 알고있으며, 그동안 무관심에 속해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던 그 주제가 드디어 민낯을 드러내고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했다. 이미 편의점은 백화점을 능가하는 성장속도로 유통채널의 신 영역으로 그 주목성을 한 몸에 받는 동시에, 신문 한 장을 넘기면 알바의 대표적인 상징의 직업군으로 을의 관계를 대변하는 (지금의 현대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역할의 또 다른 얼굴을 갖고있다. 언제쯤 번역되나 했는데, 수상기사의 흥미가 조금은 잊혀갈 정도에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은 낮선 겉표지를 두른채로 판매중 이었다. 마음을 추수리고 아직은 읽을 때가 아닌것 같아 미루다가 적당한 시기를 골라 소설을 집어들었다.(정확하게는 이북을 다운받았다) 무덤덤하게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위트로 가득찬 한 권이(다소 한 권이라고 하기에 그 양이 부족한 느낌이다) 편의점이라는 특수공간에서 아름답게 빛나고있다. 개성있는 주인공의 사상이 언뜻 스쳐지나간 누군가를 잠깐이라도 떠올려 볼만한 대중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고있기에 정확히 선을 긋고 이것은 픽션이다라고 치부할 수없게 만든 그 상황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대중은 그냥 위트있는 작가의 망상에 존재된 현실로써 글을 읽을까, 아니면 현대가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상황을 재현한 나와 그 들의 관계를 재현한 작품으로 받아들일까.비정상이고 이상한것은 주인공에게 있어 그녀가 놓인 상황 그 전부였기에 정상을 강요받는 환경을 대놓고 비난하기도 힘들다. 비난은 칭얼대는 아이의 투정에 불과할 뿐이고, 그것은 어른됨이 바른 인간의 초상이 된 사회에서 용납되어서는 안될 금기이다. 나는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환경에 동의 하여 이미 대중의 부속이되어 그들과 사고를 공유하는 충실한 일원의 한 명으로써 그에 합당하지 않은 인간을 찾아 날마다 재판장에 올려 그들을 갱생시킬궁리만 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편의점은 그런 사회의 축소판이자 매뉴얼로 깔끔하게 정돈된 그야말로 이상화된 특수공간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며 정확하게 처리해준다. 그야말로 찬양받아 마땅할 미래의 성지로써 사람들에게 자리매김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과거의 위치와 의미를 고집하기에 변화의 속도가 인간을 뛰어넘고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구태연한 녹슨 유물처럼.느껴진다. 불안한 이 마음을 정확한 매뉴얼에 기대고 싶은 건 사치라고 비난할 인간은 과연 누가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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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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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구축되어 현대인의 삶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SNS라는 부속물들이 전혀다른 한 개인과 개인을 급속하리라 할 만큼 동등하게 묶어낼 수 있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있다. 온라인이 만든 관계의 접근성과 대비되어 나타난 현대인의 고립성을 구차하게 반복적으로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소 누구나 알고있어서 식상하기 그지없는 그 명제가 얼마나 당연하기에 그토록 이상하기에 짝이없는 불편한 문제가 도서에서 분출하는지, 나는 그 원인의 한 조각이라도 그것에서 붙잡고 싶은 심정에 따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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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정의는 어디에도 써있지 않았는데 나는 읽은 것 같다. 저 인간이 싫은 이유도 관계의 오해를 사는 이유도 모두 내가 마련한 사고에서 출발하는데, 나는 누구를 시발점을 두고 그 책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려 했던 것일까? 원인을 재료의 대상으로보고 분해하며 설득시키는 작가의 노력이 가상하다. 그렇게 까지 해서라도 문제는 해결되어야만 한다. 특히 지금의 모든이들에게 강요아닌 사고의 자체를 통해서 말이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았던 변화하지 않을 상황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덕목이 되어야 할지 모른다. 현실은 디지털이라는 상황에 맞추어 조금 더 세밀하고 민감해졌고, 모두는 그로인한 신물질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했다. 어쨌든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도 없으며, 매일 반복되는 상황에서 마주치는 인간관계 형성 가운데 자아를 매번 확립해 나갈 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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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물의 도움을 받지않아도 상황에 반응하는 자극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이에 책은 간단명료하리라 할 만큼 독자에게 단순하게 진단한다.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는 지금의 인간이 갖춰야 할 당연한 소양이 아니라 제어가 가능한 경고장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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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쁜 뉴스의 나라
조윤호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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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묵을 낼 께˝
사람의 심리를 가지고 노는 듯한 발언은 이런 사소한 가위바위보에서도 일어나곤 한다. 그럼 나는 상대를 이기기위해 반대를 제시해야하나? 아니면 그가 거짓을 얘기 할 수도 있으니 그 수를 미리 예견하고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준비해야 하나? 생각이 여기 까지 다다르면 애초에 하려고자 했던 계획이 무엇인지 다소 헷갈리기까지 한다. 기껏해봐야 가볍게 빗대어 얘기하고자 한 가위바위보라는 장난에 불과 한데 이게 그렇게 간단하지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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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크게 바쁘지 않다면 하루에 항상하는 것이 아침식사, 아침식사시 배달된 조간신문 읽기(요즘엔 구독자가 별로없는 탓인지 배달부가 적어 배송이 매우 늦다..) 그리고 퇴근 후 저녁식사와 함께하는 지상파 저녁뉴스이다. TV는 그렇다고 쳐도 종이신문은 최근에 들어 급격하게 드문 행위처럼 여겨져, 주위사람들에게 종종 본인스스로가 굉장히 독특한 취미행위를 가지고있는 것처럼 보여진다.(이게 언제부터 취미활동으로까지 격상했는지 세월의 힘은 대단하다)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습관처럼 고착화되어온 탓에 기계적으로 뉴스를 읽어내는 행위는 내가 현재의 사회를 읽는 유일한 방법이자 가장 최선의 기능처럼 생각되었다.

정독까지는 아니기에 휘리릭 넘기는 책장과 시선사이에서 어느정도는 광고성 기사가 무엇인지, 이게 어떤 의도로 미화된것인지는 판단될 정도로 대락적인 관점은 가지고있다고 생각했다. (다소 그 깊이가 미미하다는 건 문제) 근데 저자가 얘기하는 일련의 얘기들을 듣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조간이 형성하고자하는 그들의 사고체계로 내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인간이 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그런 초입단계를 벗어나 다음 스텝으로 진입한 듯) 비판적으로 읽기에 그들은 나의 리스트에 없었다. 당연히 기사는 공정하고 분명한 논지로 (다소 거론되는 정치색이나, 광고성은 그들의 애교정도) 지면과 함께 항상 뭔가 굳건하고 신뢰두터운 대상임에 틀림없었다. 아직도 스스로가 변화한 뉴스취득방법에 익숙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대변되는 그런 변화가 단지 가볍고 (물론 항상 가볍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순히 소비되는 기삿거리로 격하해 생각하기만 했다. 이전에는 팩트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조차 앞으론 하나하나 따져서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전락해버린건지, 아니면 그만큼 냉철한 시각으로 자신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는것인지 언론이라는 지금의 구조가 나에겐 너무 낯설고 불편하다. 이래서 관여하고 싶지않았던 대부분의 대중들은 감정의 타이틀만 가볍게 취하고 다음 이슈를 던지는 여론의 흐름에 생각을 맡기고만 있는걸까? 이건 비난이라기 보다 자조적인 허망함에 가까워서, 오히려 마음편히 그렇게 얘깃거리로 만들고 그렇게 잊혀지는게 지금 현대인이 갖춰야 할 자연스러운 덕목인것 처럼까지 느껴진다.

근데 나는 아직 TV뉴스를 끄고싶지도 조간배달을 취소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에게 휘둘리더라도 그들이 보여주는 유치한 구조잡기를 멍청하게나마 쳐다는 보고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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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채식주의자 : 한강 연작소설
한강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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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입해 놓고서는 걱정되는 마음에 열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구입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잊어버린 척을 했다. 갑자기 유명해진 탓에 시류에 따라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에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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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에서는 맨부커 상이 어떤 것인지와 더불어 한국어를 공부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십대의 젋은 번역가에 대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듯 했다. 어쨌든 언론은 사람들의 흥미로운 식감만 자극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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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너무 잘 잔 탓인지 날이 넘어가는 시각에 이만큼 좋은 타이밍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열고 소설을 읽어 내려가기엔 여간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간략하게 나마 알고있었던 내러티브 보다 훨씬 어둡고 무거운게 이 소설에서 받은 가장 큰 인상이다. 이해하려고도 혹은 크게 와 닿지도 않은 그들의 상황이 다소 낯설면서 왠지 이미 정해져 있던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소 모호한 경계에서 드러난 불완전한 형태가 오히려 ˝그게 현재를 보여주는 지금이다.˝ 라는 느낌이다. 잘 정비되고 계획에 맞춰 진행되는 모든 것이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이라는것을 느끼기엔 소설속의 그들이 너무 거북하리라할 만큼 비이상적이다. 정상적이라는 정의가 비정상적인 모순이라 얘기하지 못할만큼 나는 어딘가에 매여서 어떤 불만도 제기할 수 없는 소시민에 불과하다. 고민따윈 조각난 거울처럼 어떤 자아도 제대로 바라볼 수없는 상태에 이른 나를 소설을 읽는 내내 소극적으로 언뜻 내비춰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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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오늘부터 가벼워지는 삶
기시미 이치로 지음, 장은주 옮김, 하지현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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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워지긴 커녕 마음이 무겁다.˝
시니컬한 응답이긴 하나, 소소하게 나마 열거되는 그 방법론이 전혀 모르지 않아 온 익숙한 명제들이었기에, 이제 와서 스스로에게 적용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완독의 반응은 그 부담감이 앞서 왔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삶은 만나는 부정확한(예기치못한) 사례들과 조우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다시 각인 하게 된다. 삶이 이렇게 까지 복잡하리라 할만큼 까다로웠던 것이었을까? 이전에도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적이 있었을까 하고 기억을 되살려보려 했다. 헌데, 과거의 경험과는 단절하라라는 저자의 논조에 일반적으로 사고해온 관습이 당혹스럽다. 어쩌면 결과의 원인이라도 정확하게 끄집어내어 그 피해 감정이라도 수습해 보려했던 오랜 전통이 무색하리라 할만큼 구차한 변명거리 밖에는 안되었었나 보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게 남아야 했던 기억이 구제 받지 못했던걸까? (이건 또 무슨 핑계거리란 말인가..)

타인을 조종하지 말 것. 타인을 대등하며 존경과 배려의 대상으로 마주할 것. 자아의 분위기로 타인을 판단하려 들지 말 것. 작가는 내면의 오해로부터 싹트는 타자에 대한 인식의 어떠한 오해조차 마련할 틈을 두지 않는다. 현자의 말이 이렇게도 이상화 되었던가? 머리로는 알겠는데 도저히 상황의 중심에 놓인 나는 그 구체화를 실현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나에게 저자는 큰 변화 보다 작은 실천에서 도전하기를 계속해서 종용한다.
실로 그렇지 않아도 미움받는 나를 어떤 사람이 두팔벌려 환영하겠는가. 낙관은 있어도 낙천과 비관은 지양의 대상임에 분명함에도 모든 이가 저자가 말하는 (오히려 더욱 계획적인)인간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논하고자 하는 과정에 있어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에 의미가 있지는 않겠는가. 반복 되는 책장속에 계속해서 특정 누군가를 떠올리고 회사 내의 관계를 상기하게 되는 모습에 어이없기도 하며, 이게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인가 하는 순간이 연이어졌다. (저자는 과연 심리상담가였다) 딱히 답답해서 혹은 심리상담가라는 전문가의 소견을 적용하려 했던 이유는 아니었다. 누구나 생각하게 되는 다양성의 존재에 마주함에 앞서서 고민하게 되는 과정에 그저 하나의 관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것이 파장을 일으킬 만한 것이었든 아니었든 문제에 대한 답은 아직 나에겐 오리무중이다.

다소 돌출 된 느낌이긴 했지만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전에 보았던 저자의 얘기외 동일해 결국 과정은 달라도 향해 가고자하는 방향은 모두 동일한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체를 보되, 오늘을 중요시 할 것. 나를 찾되, 타인의 다양성을 받아들일 것. 어찌되었든 나는 오늘도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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