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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모든 것은 소비다 - 상품 미학적 교육에 대한 비평
볼프강 울리히 지음, 김정근.조이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9월
평점 :
판매중지
배경지식이 무지한 독자와,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직역이라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조합이 완성될 때, 나는 구글번역기에 돌린듯한 글을 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닳았다.
나는 독일어에 대한 어떠한 편견도 없지만, 이 책을 통해 난 독일어 문장구조의 개론을 엿본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공역이었기에 그 느낌은 배가 된 것일까? (책의 본질인 소비구조 주제 보다 더 임팩트있다)
아무리 전자책이긴해도 쉼표없이 이뤄진 네 글줄의 문장을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면, 특히나 번역된 글을 읽기에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자신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제품이 분명한 의미를 내포하게 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는 사실은 곧 인터넷에서 의사소통의 다양한 경로가 지속적으로 안정화되는 것에 걸맞게 당연한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나는 왜 자모음의 한글로 이뤄진 문장을 보면서, 어디가 주어이고 동사인지, 어떻게 문장구조를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깊은 회의감에 빠진다. (아직도 이 문장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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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1부터 엄청나게 몰아 붙이더니, 일단 저자는 기존에 당신들이 소유하고 있던(있는) 소비에 대한 관점은 근본적으로부터 잘 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다.(일단 내가 이해한 바로는) 뭐가 그렇게 잘못되었는지가 이 책의 존재 이유이긴 하나 그 근거가 꽤나 난해하게 이상하다. 아마도 이런 이유때문에 저자의 의견에 동의 하기도, 부정하기도 하게 된다. 독특했던건 실제 상품(혹은 브랜드)의 예를 많이 들어서 자신의 주장을 구체화하고자 했는데, 그 상황의 정도가 너무 많아 이 책의 구조 자체를 예시를 카테고리로 재정렬 하여 구성하는 것도 가능 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들정도였다. (그리고 그 예시가 너무 동일한 제품으로 반복적이다)
대중이 소비행위를 죄악에 비쳐 무의식화 하는것이 마치 종교의식화 하여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과 다를바없다는 주장은 꽤나 흥미롭다. 그렇게 학습화되어 소비하는 행위에 불완전함을 습득해 온 것은 내가 체득해 온 사회문화에서 분명히 그러하긴 했다. 때문에 종교나 예술이 하는 고귀한 역할을 소비행위가 대체 하려 하고있다 는 점(혹은 이미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고있는)에서 무엇이 상위이고 하위대상인지 분리해 관념화해 온 비정상적인 틀을 논의해볼 시점이다.
공급자가 마케팅의 관점에서 상품을 가장 매력적이고 필수적인 것으로 유도하여 소비를 부추긴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때로는 소비자는 그런 사실을 자신에 빗대는 순간 의도를 망각하기도 하여 구체화된 이상의 환경에 부합하고자 물건을 소유/자기화 한다. 결코 이러한 일련의 행위자체는 비난 받아야 할 죄의식이 아니며, 이런 결과를 마련한 기업행위의 오만함도 없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 되어야 하며 그 자체로는 속죄의 혹은 일상의 행동으로 간주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혀 다른 회사의 화장품 브랜드 모델이 갑자기 경쟁회사의 제품에서 상품의 맹목적인 소비자로 둔갑하는 상황을 나는 굉장히 이상하게 여겼다. 대중들은 무지해서가 아니라 그런 이미지 메이킹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고 애써 태연한척 하는 것일까. 아님 이미 길들여져서 그런 의도에 소비행위와 분절된 이미지화를 영민하게 구분 짓는 것일까. 전선 코드라고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얼음조각으로 둘러싸인 남극같은 행성에서 스탠드 에어컨은 당당하게 바람을 일으키며 작동한다. 소비자들이 열광해 마지못할 이미지를 기이한 혹은 비정상적인 루트로까지 구체화된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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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행위에 주눅들지 마라. 뭐 결국 이런 결론 아니겠는가. 그렇다고해서 나는 물건에 뒤엉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진않다. 자연주의, 환경의 책임, 크래프트먼쉽의 회복, 공정거래의 회기, 로하스 등등 새로운 마케팅의 재료로 학습되어 온 소비자가 어떻게 쉽게 그 퍼즐을 벗어나겠는가. 소비하는 이도 공급하는 이도 결국 동일한 인간이다. 나는 그 루트에서 벗어날 수없다면 나만의 결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소비의 종교를 세울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