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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평점 :
관심 있는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는 다소 급작스러운 알림에 당황하여 급하게 책을 주문했다. 몇 시간이라도 빨리 그 책을 손에 쥐고 읽기를 바라면서.
누군가는 코로나 팬데믹이 일어났을 때 그 소재를 써서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이라 예상했다. 코로나라는 유행병의 시기가 그만큼 많은 사람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아질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에 가득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예상치 못하게 움직이는 이례적인 변이는 사람들을 희망을 비웃듯이 모두를 또다시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질병의 흐름은 아직도 활개 치며 지금에 이 순간에도 그 막대한 영향력을 소강시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근래에 들어 코로나는 하루 날씨만큼 사람들에게 무료하게 동감을 일으킬 만한 더할 나위 없는 소재를 던지며, 이렇듯 작가에게도 현실 반영이라는 매력적인 주제를 던져주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기대를 많이 했나? 전작들을 통한 작가에 대한 무한한 기대감에 사로잡힌 탓인지, 나는 이번 신간에 도저히 후한 감상을 남길 수가 없었다. 그냥 별로였다.
형광에 가까운 연두로 둘린 책 띠지에 선명하게 박힌 수식어들이 묘하게 눈이 갔다. “맨부커 노미네이트”, 작가가 유명하다는 그 상을 받았던가 하고 찾아보았다. (노미네이트되었다고 분명하게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해했다) 그리고 하단에 적힌 “사랑 3부작의 마지막 작품”에 눈을 돌렸다. 애초에 작가는 3부작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집필을 하지 않았음에 분명해 보이지만, 화려하고 멋들어진 출판사의 기획력으로 작가의 소설은 규격화된 마케팅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있었다. (나는 이렇게 작가의 3부작을 다 읽음으로써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인가.?)
소설은 누군가의 연애, 혹은 주변의 이야기를 한 다리 건너 전해 듣는 듯한 느낌이다. 들어봄 직한 그저 그런 얘기들이 약간의 픽션에 버무려져서 가공되었다. 소설의 역할에 알맞게 어느 그 시점에 눈이 내렸고, 딱 그 부분에서 등장인물들이 미묘한 분위기로 엮인다. 쪽대본까지는 아닐지라도 전형적인 드라마를 시청하는 듯한 제목만 바뀌고 등장인물만 교체된 그때 그 기억 속의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은 왜일까. (이래서 출판사는 ‘사랑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판촉하며 작가의 전작들을 기이한 묶음 세트로 묶어버리며, 동시에 자가 복제하는 듯한 소설을 작가가 더 이상 쓰지 않기를 바라는 고도의 계획을 세운 것일까) 그만큼 가공이 없다고 해야 할지 작가 자신도 후기에서 누군가가 이야기해준 단서들에 감사하고 있었다. 물론 구체적인 소재와 취재한 각종 정보를 취합하고 섞어서 엮은이는 능동적으로 작업한 소설가 작가 자신임에는 부정할 수 없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이 읽었다. 절친한 친구가 해준 걔네 회사 얘기. 싸이코 같은 상사를 대하는 잡담. 이렇게 돈 벌기가 힘들다니 하면서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그런 투덜거림 때문에 급하게 포장해서 마무리한 챕터를 시작으로 이어진 남자 회사원의 코로나 대처 얘기. 신규사업에 회사 얘기, 회사원들의 사람들 관계. 그리고 각 챕터에 풀어 헤쳐놓은 얘기를 어떻게든 묶어내려고 만들어 낸 마지막 챕터. 감흥이 없다. 구태여 책을 펼쳐서 하얀 종이에 가지런히 펼쳐진 검을 활자들 바라보며 습득하지 않아도 될 그런 회사생활 이야기를 마주하고 앉아 있으려니 내가 왜 이걸 읽고 앉아 있나 했다. 또 “E사의 가전인 워시타워가~”, “워시타워를 두기에도 빠듯한 공간에서~”라고 표기하며 구태여 워시타워라는 특정 가전브랜드의 상품명을 자꾸 언급하는 부분이 거슬렸다. ‘E사’라고 마치 스티커 한 장으로 가려버린 브랜드 옷을 버젓이 입고 나오던 예능프로그램 혹은 드라마의 연예인들처럼 소설에도 PPL이 적용되는 건가 실소가 일었다.
작가가 다른 인터뷰 매체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소설집에서 묶인 연작들은 처음부터 4편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고 독자인 나에게도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첫 단편인 ‘요즘 애들’에서 보여준 시작점은 넘어가는 챕터마다 확장되는 듯하지만 각각으로 고여있다. 등장인물들이 공평하게 배치되어 한 권으로 엮었을 때 문제없어 보였지만 난해하게 연결되어있어 얼기설기한 그 억지가 나는 조금도 자연스럽게 익숙하지 않았다.
너무 투명하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서 거부감이 드는 것일까. 작가 자신도 시즌2라며 새로운 방향으로 시도했다는 이번 소설은 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담아낸 탓인지 코로나19, 부동산가격 폭등과 같은 큼직큼직한 이슈들이 전혀 낯설지는 않다. 다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로 엮인 그의 글이 왜 이렇게 낯설게 다가오는지는 정말인지 의문이다. 작가는 이전에 그의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나 공평하게 똑같이 펼쳐졌던 과거에서 지나쳐버렸을 법한 찰나를 사진 한 장 증거 남기듯 세분화하고 묘사했다. 전작에서 보여준 그 예민하고 뾰족했던 디테일을 지켜보며 묘하게 기이한 한숨을 내쉬던 나는 이번 작가의 신간이 정말인지 아쉬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