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 폴로어 25만 명의 신종 대여 서비스!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지음, 김수현 옮김 / 미메시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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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대여하는 서비스가 있다며 세계에서는 이런 일도 일어나고 있다는 기삿거리로 다뤄진 뉴스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역시나 그 대상은 일본이었고 일본은 왜 이렇게도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인지 의아해하며 분명 시청자들도 그런 선입견에 확증을 더하는 느낌으로 작성된 뉴스였다. 화제를 주목하게 만드는 거창한 주제거리로 화려하게 수식어를 붙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정말인지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된 사람이 되어 자신을 대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우스갯소리로 비즈니스관계로 얽힌 약간의 거리감 있는 회사동료와 잡담을 나누기에 딱 알맞은 주제가 아닌가 했다. ‘있잖아요. 일본에는 그런게 있대요’라면서 운을 띄우며. 
근데 그 사람이 책을 낸 사실을 알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책도 낼 수 있나 하며 웃음거리로 넘길 수도 있겠으나, 무료한 주말의 오후를 채우기에 이 정도 두께의(실제로 손에 잡기 편한 사이즈의 슬림한 두께의 판형) 알맞은 책도 없어 보였다. 읽다가 흥미가 없으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니까. 저자에 대한 죄책감 따윈 없어 보이는 이유도 한 몫했다. 

책은 철저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콘셉트로 만들어졌는데, 그게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작가는 글을 쓰지 않았다. 편집자가 질문을 하면 그것에 답하는 조건으로 책이 구성되었고, 생각과 글은 결국 작가의 본인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지만 글로 기록되고 문자로 인쇄된 것은 결코 작가가 하지 않은 일이었다. 책에서 작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의 기준이 계속해서 모호하게 제시되는데 (심지어 작가 본인도 잘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준은 있다) 상황에 따라 그 기준의 영역이 좁아졌다 넓어졌다를 반복하며 절대적인 기준 앞에서는 모호한 입장을, 관대한 관점에서는 유동성이 있는 자세를 취하며 작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철학을 펼친다. 작가는 자신의 의도가 이렇게 까지 확장되며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때문에 이 책에서 입 밖으로 질문을 통해 나온 대답이 구체화되면서 자신의 기준이 정리되는 인상을 받았다며 스스로가 신기해했다. (이것은 또 다른 발견!) 어차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개념은 작가 스스로가 출발한 이념이기에 그가 어떤 기준을 제시하든 그것은 자신 맘에 따른 일이지, 누군가가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작가는 조금의 타협의 여지가 없다) 무료로 시간을 렌털하며 자신을 대여하여 사용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결코 봉사활동도 아니며(사용자는 왕복 교통비와, 렌털에 부가되는 비용일 일체 지불해야 한다)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보람 있는 활동도 아니라고 말한다. (누군가 작가에게 돈을 주기를 원하면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 트위터라는 플랫폼을 통해 의뢰와 사연, 후기를 기록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본인을 이끌어 내었으며 작가는 그 공간이 연극을 위한 무대이며, 관객들은 서로를 바라볼 수 있고 누군가가 자진해서 자신을 렌털하기 원한다면 그 무대의 주인공이 누구라도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작가는 이러한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을 통해 사회가 규정한 정상적인 삶의 인간을 부정하고 시니컬하게 비꼬려고 했다. (작가 본인이 분명하게 그런 의도로 표현을 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표현으로 시사하였다) 개인적인 가정사에서 비롯된 이유도 있겠지만 자신이 사회에 소속되면서 강압적으로 강요된 위치와 효율성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배경으로 과연 본인 자신이 무엇의 쓸모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에 관한 철학이 앞서있다. 배우자도 아이도 있으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당면한 과제를 벗어던지고 시간을 할애하는 무료한 활동은 타인이 지정한 규칙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때문에 능력주의로 점쳐지는 현대 사회에서 작가가 주목을 받으며 세상의 이목이 아니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이유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과관계이다. 나는 사실 가십거리로 존재할 법한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만나본 작가는 가십거리로 넘기기에 너무나도 깊은 자아 성찰과 고민이 가득해 단순히 작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내 모습 혹은 누군가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고민거리를 대신 이야기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것은 결코 한 때의 뉴스거리로 치부해버릴 문제가 아님을 알게 해 준다. 
누구도 존재 자체로서 의미를 갖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작가는 쓸모없다는 낙인으로 기억된 본인의 사회생활에서 오히려 반기를 들며 나섰다. 나는 존재 자체로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삶의 의미를 스스로 지정하고 개척하려는 시도가 다소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처럼 여겨지는 사회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는 정말인지 진지했다. 그 진심이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결코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그가 하는 얘기가 내 삶의 의미를 다시 이야기해 줄 수 있을 실마리처럼 보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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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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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자연스레 죽음을 상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은 살아있음으로 가득 차 있고 지금 당장 숨을 쉬는 영속의 행위가 당연하게 동반되는데 그것을 멈추고 정지를 의미하는 죽음을 떠오르기에는 삶은 너무나도 빈틈없이 계속된다. 삶이 죽음과 맞닿아있는 특수청소업체라는 작가의 일은 그런 관점에서 보면 꽤나 특별하다. 때문에 작가가 사람들과 대화하며 돌출되는 어이없는 질문들은 신기한 일반 대중의 시점에서 바라보기에 당연할 따름이다. 대중들에게 공통적으로 일상의 죽음은 존재하고 있지 않다. 작가가 대면하는 여럿 상황을 지켜보았다. 시를 쓴다는 작가의 배경도 그러했지만 유연하게 써 내려간 문장들과 현장의 생생함이 읽는 독자에게 부담을 지우려 들지 않으려는 듯이 세심하고 배려 깊은 문체로 다가왔다. 아마 작가 본인의 성품 또한 그러하겠지.

화자는 자신의 일을 단순히 한 공간에서 다른 장소로 물건을 옮기는 업무로 단순화하고자 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 대상이 얼마나 사람들이 기피하고, 복잡하고, 더럽고, 외면하고 싶은 물건일지언정 간략하게 일상의 삶에서 부정되어야 할 쓰레기임을 간과한다면 개체가 움직임의 이동만 존재하는 변화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는 현실이 되었을 때 삶과 죽음의 대비되는 성격처럼 극에 다다른 양면성을 드러낸다. 근친조차도 외면하고 싶은 죽음이 한 사람을 뒤엉켰을 때 작가라는 역할을 찾는 수요는 증가할 뿐이다.

사람은 왜 죽음 후 어떠한 신호도 낼 수 없는 정지된 상태에서도 냄새와 지저분한 흔적을 통해 주변에 구조를 요청하는가. 스스로가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죽음은 또 다른 이의 손과 발을 필요로 한다. 생을 시작하고 죽음을 마무리하는 끊임없는 굴레 속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은 서로 기대어 살아가야 할 인간의 당연한 숙명에 따름인가. 때문에 누군가의 죽음이 매시 전전긍긍하지만 피폐하게 파헤쳐진 현장의 뒷수습 앞에 초연한 모습으로 상황을 마주하는 작가라는 사람이 더욱 기이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책을 통해 나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풀어나가기까지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담아두고 있는지, 혹은 그가 일을 통해 여러 번 마주해야 했던 심적인 혼란과 불안정한 마음상태가 꿋꿋이 하지만 동시에 흐릿하게 담아있기에 아련하게 묻어나는 감정을 결코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오늘을 살고 살아가고 있지만 누군가의 죽음과 맞닿아있고, 또 내가 대면할 죽음을 결코 간과하지 않고 있기에 지금의 순간이 이토록 불확실한 모호성 가운데 더더욱 삶이 애틋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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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고 싶은 기분 - 요조 산문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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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님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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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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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일어난 행동을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행동이 일어나기까지 머릿속에서 그려진 사고가 글로 쓰여진다. 사람은 순간에도 부유하는 수많은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데, 집착이라는 행동으로 귀결되는 하나의 목적지만 고집한 채 작가는 쉴새없이 주절거린다. 일관되게 집착만으로. 내가 그를집착하는건지 작가가 집착을하는 것인지 70페이지 남짓한 짧은 단편에 나는 작가와 사고를 교류하며 집착에 빠져든다. 사람을 쫒아 그를 흠모하고 타인을 미워하고 감정에 빠져드는 극히 당연한 논리가 작가의 글 안에서 수축되었다가 발산되고 평면의 이론을 뒤흔들며 실재와 시간의 흐름을 무의미하게했다.
아니 에르노는 당혹스러우며 파격적이지만, 그 어느것 하나도 부자연스럽지 않게 치장한 모습으로 으레 평범한 나를 파괴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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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 -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
요조 (Yozoh) 지음 / 북노마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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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서울의 이곳저곳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독립서점이 유행처럼 각자의 매장을 오픈할 즈음, 나는 사무실의 딱딱한 테이블에 앉아 팀장이 지시하는 책방 프로젝트를 따르고 있었다. 때문에 책방 무사가 사무실 근처의 조용한 언덕 위에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곳을 소규모 서점으로 생각하기보다 비즈니스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대상인지 여부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 당시 내게 그곳은 책방이라기보다 한 때 유행의 흐름에 편승해 생겨난 장소 그 이상은 안 되는 듯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뒤늦게 그 책방이 주인이 된 이야기를 손에 쥐고 앉아 서점을 운영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독립서점을 취합하고 있던 그 당시의 나는 사무실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되었고, 계동에 있던 책방‘무사’ 또한 이미 그곳을 떠난 지 오래전이었다. 겉에서 바라보기에 마냥 낭만적이고, 시간과 여유가 남아서 책방이나 오픈했던 것 같던 유명세 있는 저명한 사람이 시간이나 죽일 심상으로 (이렇게 오해하고 있어 정말인지 참으로 죄송하다) 운영하는 것 같던 그 공간은 나의 철저한 고정관념으로 오해되었을 뿐이었다. 매달의 내역서를 보면 적자임에 분명하여 계산서를 정리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운영 상황과, 여성 운영자에게는 CCTV설치가 필수인 독립서점의 모양새는 날것을 드러낸 판타지였다. 마치 산타할아버지는 사실 너의 부모라고 기껏 모른 척해왔던 노골적인 진실에 맞닿은 것 같은 당혹감으로 나는 그 상황을 애써 못 본 척 외면해 왔는지 모른다. 독립서점이라는 네 음절의 소소한 개인의 취향이 가득 담긴 프레임 안에 고이 사고를 접어 넣어 세상이 너무 각박하기에 나는 그런 판타지라도 누군가 지속하고 있다고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의 글은 늘 내게 너도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딱히 응원의 말 따윈 한 줄도 안 쓰여있는데 한 권을 후루룩 읽으면서 계약된 상황의 어쩔 수 없는 경제적인 이유로 글을 쥐어짜는 작가의 상황과는 전혀 상반되게 나는 독특한 감명을 받는다. 이렇게 살아갔던 사람이 있구나. 단순히 책을 좋아하고 책이 좋아서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너무 당연한 조건과 환경의 일치함이 무료하게나만큼 재미없게도 그 사람의 인생이 된 것 같아서 나는 그 점을 사람들이 만들어낸 판타지로 오해하고 가공해서 곡해하지 않았는지 했다. 홀로 서서 내가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은 참으로 외롭고 쓸쓸하다. 정답이 없는데 만들어 나아가려다 보니 자꾸 주변을 흘겨보고 잘하고 있는지 비교대상을 찾아 스스로를 재단하기 일쑤이다. 나보다 앞서나간 누군가를 보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되는 나에게 작가의 글은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돌이키게 하며 나는 그렇게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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