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930-2010
헤르만 악셀 일러스트 / ODbooks(오디북스) / 2010년 4월
절판


1930년에 우루과이에서 열린 제1회 월드컵부터 지난 2006년 독일에서 열린 제18회 월드컵까지 모두 아우른 이 책은 일러스트의 향연으로 무엇보다도 눈이 즐거운 책이다. 각 선수들의 특징을 묘사해내는 캐리커처나 각 대회의 주요사항을 포착하는 시선은 재미있으면서 독특하고, 주요 경기의 골 장면이나 특정 선수의 플레이를 재현해낸 일러스트는 치밀하면서도 재기가 넘친다. 책의 어떤 페이지를 펼치든 월드컵의 특별한 순간이 펼쳐지면서 독자가 월드컵의 묘미를 만끽하도록 만든다.

월드컵의 첫 대회는 우루과이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우루과이로 향하는 각국의 여정이 만만치 않았고, 그 긴 여정과 치열한 승부의 끝에는 월드컵 창시자인 줄 리메의 이름을 딴 줄리메 컵이 기다리고 있었다.

1954년 월드컵은 스위스에서 열렸다. 당시 독일이 헝가리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사건은 '베른의 기적'으로 회자되는데, 여기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것이 바로 베른에 내린 비와 최초로 나사식 뽕을 장착한 아디다스의 축구화였다. 독일은 조별예선에서 그들에게 대패를 안겼던 헝가리에 3대2로 승리를 거두었다.

1966년 월드컵을 자국에서 치렀던 잉글랜드는 드디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축구 종주국으로서의 체면을 살렸다. 자국을 위한 몇몇 특혜 문제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들은 우승을 할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 한편,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른 게 바로 이 대회이기도 했다.

1974년 서독 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연이어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 두 대회를 거치는 동안 크루이프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떠올랐다. 물론, 1978년 대회의 경우 크루이프는 대회에 불참했지만, 그가 네덜란드 축구에, 그리고 세계 축구에 끼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토탈 풋볼'로 대변되는 새로운 전술의 선구자였으며, 또한 '크루이프 턴'의 창시자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마라도나의, 마라도나에 의한, 마라도나를 위한 월드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손으로 골을 성공시키는 비신사적인 짓을 저질렀지만, 곧바로 세기의 골로 꼽히는 환상적인 골을 성공시킴으로써 그의 능력을 입증해 보였다. 결국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우승을 차지했고, 핸드볼 파울 논란은 '신의 손'으로 남았다.

지난 2002년 FIFA의 인터넷 투표를 통해 '세기의 골'로 선정되었다는 마라도나의 골을 헤르만 악셀은 위와 같이 묘사해 놓고 있다. 여러 차례 본 골 장면이지만, 이렇게 보니 또 색다르면서 재미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했던 카메룬의 로저 밀러는 38세의 나이로 4골을 기록하면서 카메룬의 8강행의 1등 공신이 되었고, 그의 세레머니는 축구팬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놀랍게도 그는 42세의 나이로 1994년 미국 월드컵에도 출전했는데, 더욱 놀랍게도 또 다시 골을 기록하며 월드컵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선명히 새겼다.

브라질이 우승했지만, 그보다는 이탈리아 로베르토 바조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기억되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물론, 당시에 실축을 했던 건 바조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에 공을 허공으로 날린 건 꽤나 강렬했고, 무엇보다도 토너먼트에서 놀라운 활약을 선보인 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다.

몇 번을 되풀이해봐도 감동적이고 놀라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안정환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넣은 골든골 장면이다. 그림의 오른쪽 편을 보면 이탈리아의 왼쪽 풀백 코코가 붕대를 감고 있는 게 눈에 띄는데, 그 묘사 하나만으로도 악셀이 얼마나 충실하게 그림을 그렸는지를 알 수 있다. 단, 골대 뒤편 걸개의 글씨는 차마 한글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우승팀은 이탈리아였지만, 이 대회의 주인공은 단연코 지네딘 지단이다. 지단은 이 대회 직전에 이미 은퇴를 밝혔기에 이 대회는 지단이 마지막으로 축구 인생을 마무리하는 무대였고, 과연 그는 이 대회를 끝으로 그라운드 위를 떠났다. 물론, 그의 '박치기'는 영웅의 퇴장 장면으로 삼기에 그리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마지막까지 인상적이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관련해서, 이 책은 본선 32개국의 주요선수 한 명씩의 캐리커처를 수록해 놓고 있다. 당연히 한국의 선수는 박지성. 우리와 같은 조에 속한 국가의 선수로는 아르헨티나의 메시와 나이지리아의 카누 그리고 그리스의 카라구니스가 선정되었다. 캐리커처의 얼굴 크기로만 따지면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실하다.


지난 월드컵의 역사를 모두 다루는 이 책은, 기실 그렇게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치 넘치는 일러스트가 이 책의 내용을 특별하게 바꾸어 놓았다. 글로 묘사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이 그림 덕택에 생동감을 찾았고, 특히 각 대회의 특징들을 직관적으로 포착하는 그림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수록된 500여 컷 중 어느 하나 버릴 게 없었고, 그래서 책을 들여다 보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게다가 도판의 크기는 시원시원해서 소장의 가치도 한껏 높여준다. 한 마디로 단언컨대, 가히 축구팬들의 보물이 될 만한 책이다.


덧.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이 책에서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선수들의 이름 표기다. 기본적으로 이 책에 나오는 선수들의 이름 표기는 영어식 발음을 토대로 하는데, 그로 인해 실제 우리가 아는 선수의 이름 표기와는 사뭇 달라졌다. 가령, 월드컵 역사상 한 대회 최다골의 주인공인 프랑스의 쥐스트 퐁텐이 폰태인으로, 네덜란드 선수인 레이카르트가 리지카드로, 그리고 독일 선수인 게르트 뮬러와 루디 펠러가 각각 거드 뮬러와 루디 볼러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잉글랜드 선수인 리네커는 라인커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다양한 국적을 지닌 선수들의 이름을 일관되고 정확하게 표기하기란 어렵지만, 약간의 감수만 거쳤더라도 좀 더 나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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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의 첫 경기를 시원한 승리로 장식해 기대감을 한껏 높였던 한국 대표팀은 아르헨티나와의 두 번째 조별예선 경기에서 1대4로 패했다. 몇몇 아쉬운 상황들을 보면 운이 없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개인 기량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낸 경기였다. 그런데, 대패였던 만큼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플레이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과도한 비판이 쏟아지는 게 마뜩치않다. 더욱이 몇몇 선수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경기에 투입해서는 안 되었다는 원초적인 비난을 가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박주영과 염기훈 그리고 오범석을 투입한 게 잘못이었다고 말하고, 이를 한국축구가 지닌 고질적인 인맥과 학연에 따른 선발과 연결시킨다. 오범석의 경우에는 그의 아버지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에 김희태 축구센터 총괄감독이라는 사실까지 언급된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 오범석이 선발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기사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유럽선수들과 상대하기 위해 신체조건이 좋은 차두리를 기용하고, 기술이 좋고 작은 남미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영리하고 민첩성이 좋은 오범석을 기용한다는 전략은 꽤나 그럴듯한 전략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고, 누가 나오든 선전을 바란다던 기사 말미의 응원은 끝내 공염불로 남았다.

박주영에 대한 비판은 사실 그리스 전과의 경기에서도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미국의 한 언론매체에서는 박주영을 경기 MVP로 뽑을 만큼 그의 공헌도를 인정했고, 굳이 그런 공식적인 평가가 아니더라도 박주영이 그리스의 거한들과 맞서 공중볼을 경합하고 활발하게 공간을 창출했던 것은 모두가 목도했던 바와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경기에서 박주영이 기록한 자책골은 그의 모든 노력을 단번에 부정해버리는 모양새다. 그리고 이러한 잔인하리만치 혹독한 '비난'은 그리스 전에서 중원 장악에 힘을 보탠 김정우나 대표팀 선수 중 가장 많은 활동량을 소화했던 염기훈에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물론, 이번 경기에서 앞서 언급한 선수들이 아쉬웠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상대가 강하니 만큼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그리스 전에 비하면 집중력이 조금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지적도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해당 선수를 빼버려야 했다거나 모든 것이 인맥에 의한 선발 탓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어떤 건설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비판'이 아닌, 소모적이고 찰나적인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그런 식으로 몇몇 선수들을 계속해서 빼다보면 대표팀에 남는 선수들은 거의 없다. 가령, 적게 뛰는 이동국을 빼고 노쇠한 안정환을 빼고 경험 없는 이승렬을 빼고 인맥으로 들어간 염기훈을 빼고 이제는 세레머니도 못마땅한 박주영도 빼면, 과연 대표팀의 공격진에는 누가 남는가. 설령 누군가 새로운 선수가 들어간다고 해도 언젠가 지는 경기를 피할 수 없는 한 한국 대표선수들은 영원한 돌림노래처럼 들고 나기를 반복해야 할 뿐이 아니겠는가.

어떤 말로도 패배를 아름답게 포장하기란 어렵다. 그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패배조차도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역시 어렵다. 하지만 정말로 씁쓸한 것은 비단 패배가 아니라,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일부의 사람들처럼 '패배'를 그렇게 발작적으로 받아들일 바에야 차라리 한국 대표팀의 응원을 당장 관두고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혹은 스페인과 같은 강팀을 응원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게 백 배 나은 일이다. 물론 아무리 강팀들이라도 승리가 영원할 수 없는 한, '발작'은 곧 되풀이되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는 그저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패배의 아쉬움을, '비난'의 대열에 가세하지 않는 대다수의 팬들이 그렇듯, 다음에 다가올 짜릿한 승리에 대한 기대와 열정으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마냥 슬퍼하며 고개를 숙이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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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불과 5일 앞으로 다가온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지란 누구도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총 64경기가 펼쳐지는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최소한 3경기는 치르리라는 것이고, 이는 곧 한국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이들이 적어도 3경기는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남아공과 한국 간의 시차로 인해 특히 마지막 조별 경기인 나이지리아와의 일전을 보기 위해서는 어중간한 새벽 시간대를 뜬눈으로 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4년 만에 한 번 찾아오는 월드컵에서 자국의 경기를 응원할 수 있다는 것은 진정 축복받은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고작 그 정도로만 만족한다면 이는 4년간의 기다림 끝에 맞은 월드컵을 여전히 꽤나 소박하게 즐기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한국 대표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하여 경기수가 늘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고, 또 꼭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주목해 볼 만한 경기는 충분하지만, 가령 경기가 없는 날이랄지 혹은 경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어떨까? 주구장창 재방송을 시청하거나 관련 기사를 찾아 읽거나 혹은 목욕재계를 하고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좀 더 월드컵을 재미있고 풍요롭게 그리고 유익하면서도 비판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들도 넘쳐난다. 이른바 '월드컵 특수'를 맞아 축구와 관련된 책과 영화 등이 잇달아 선을 보이고 있거니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월드컵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월드컵 따위를 즐기지 않는다면 모르되, 이왕지사 월드컵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면 월드컵과 축구 관련 문화매체를 눈여겨보는 건 그래서 추천할 만한 일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진짜로 11배쯤 월드컵이 즐거워지는 건 실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월드컵과 축구가 이루어 온 방대한 역사적,문화적 깊이에 다가가면 갈수록 월드컵이 좀 더 풍성하게 다가오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다가오는 남아공 월드컵 기간 동안, 월드컵의 품 안에서 그저 '축구'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제법 괜찮은 일이 아닐까.

  

1. 포포투

 월드컵을 맞아 월드컵 가이드북들이 더러 나왔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번 달 포포투 한 권만 있으면 굳이 가이드북들이 없어도 월드컵을 즐기는 데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월드컵이 열리는 달인 만큼 기본적으로 이번호는 월드컵과 관련된 특집 기사들이 다수 눈에 띄는데, 그중에는 대개의 가이드북들이 다룰 법한, 본선에 진출한 32개국에 대한 분석이나 한국 대표팀과 상대할 팀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한국 대표팀 자체에 대한 분석 등이 포함된 것은 물론이고, 또한 월드컵에 출전하는 해외 스타들과의 짤막한 인터뷰나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 몇 명의 인터뷰 등 어지간한 가이드북에서는 보기 힘든 기사도 수록되어 있다.
더욱이 이번 달 포포투는 부록만 해도 두툼하다. 제지값 상승으로 인한 부록 제공 중단을 번복하고 여전히 부록으로 제공된 <챔피언스>는 차치하고라도, 이번호에는 각각 나이키와 아디다스와 관련된 읽을거리들도 부록으로 제공된다. 물론 이러한 소책자들은 기본적으로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광고를 위한 것이겠지만, 월드컵의 역사가 본래 축구와 거대 스포츠 기업과의 공생의 역사인 만큼 이 부록들은 그러한 관계를 증명하는 흥미로운 자료라고 할 만하다.

2. 축구장을 보호하라 

 이 책은 2002년 월드컵과 관련한 책이다. 당장 2010년 월드컵을 코앞에 둔 마당에 또 2002년 월드컵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이 책의 의미는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지지 않는 그런 류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 책의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2002년에 우리를 환희로 이끌었던 한국 대표팀의 선전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선'이었지만, 또한 그런 이유로 2002년 월드컵은 다분히 제한된 수사에 의한 단선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곤 한다. 투혼을 보인 선수들에 대한 환호, 명민한 전략을 보인 히딩크에 대한 찬사, 열광적이고 동시에 질서 있는 응원을 한 국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등, 이런 기억들이 모두 한국 대표팀의 선전과 결부되면서 2002년 월드컵을 여전히 가슴 떨리는 '영광'의 이미지만으로 한정시키는 셈이다.
그에 반해 이 책은 보다 다채로운 수사로써 2002년 월드컵의 다양한 기억들을 풍부하게 펼쳐 놓는다. 단지 '한국팀이 선전한' 월드컵이 아닌, 이런 저런 에피소드와 이면들로 가득한 문자 그대로의 '월드컵'을 저자는 인문학적 깊이와 예민한 감각으로 접근하고, 이는 곧 월드컵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깊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3. 피파의 은밀한 거래

 가뜩이나 월드컵 단독 중계를 고수하면서 축구팬에게 밉보인 SBS는 최근 '전시권(Public Exhibition Right)'과 관련해 공문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연 시방새'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전시권이란 공공장소에서 월드컵 경기를 상영하면 경기당 적게는 수백만원에서부터 많게는 1억원에 이르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체. 하지만 시방새도 시방새지만, 사실 '전시권'에 대해서 특히나 찬사(?)를 받아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바로 'FIFA'다. 어떻게 해서든지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뜯어내려는 그들의 상업적 명민함을 보라.
이미 하나의 권력이 되어버린 FIFA가 그렇게도 돈을 벌어서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일까? 지구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선물하기 위해서? 분명 일부분은 그렇게 쓰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돈의 용처는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해서, 심지어 지난 2007년 제프 블래터 회장이 어느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봉으로 100만 달러를 받고 있다고 말하기 전까지(물론, 이 발언도 FIFA의 공식적인 발언은 아니다) FIFA 회장의 연봉조차도 베일 속에 가리어져 있었다. 이 책은 그렇듯 거대한 권력 속에서 썪어 있는 'FIFA의 은밀한 치부'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4. 존 듀어든의 거침없는 한국축구 

 한국인 아내를 두고 소주와 삼겹살을 사랑하는 영국인 저널리스트 존 듀어든은 그의 독특한 포지션만큼이나 독특한 글을 쓰는 이다. 자발적으로 한국과 연을 맺은 만큼 그에게는 한국,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축구에 대한 애정이 넘치지만, 또한 태생적으로 한국과는 멀고도 다른 곳에서 온 만큼 한국축구가 지니는 모순과 문제점에 대해서도 적확하고 날카롭게 지적할 줄 안다.
이 책은 그렇듯 내국인의 따뜻함과 외국인의 냉철함을 아울러 지닌 그가 네이트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것이다. 연재의 묶음이라는 책의 속성상 시의성 측면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그야말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그의 글들은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봄직한 것들임에는 분명하다. 여느 한국의 축구칼럼과 달리 시원하고 명쾌한 것은 물론, 유머러스한 그의 글은 사뭇 재미있기까지 하다.

 

 

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세계의 도처에서 무시로 벌어지는 무수한 축구경기 중에서도 유독 아름다운 경기들이 존재한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적대 중이던 영국군과 독일군이 잠깐 휴전을 하고 치렀던 축구경기라거나 혹은 비아프리아 전쟁(나이지리아 내전) 중 3일 간의 휴전을 이끌어 낸, 펠레가 속한 브라질과 나이지리아와의 축구경기 같은. 물론, 경기가 끝난 이후 짧은 휴전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그때 있었던 '아름다운 게임'의 의미마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로벤섬에서 펼쳐졌던 '아름다운 게임'의 자취를 좇는 이 책이 오늘날 여전히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절망과 고난의 수용소에서 '인간'의 '존엄'과 '행복'과 '희망'을 되새기는 데에 기여했던 '축구'의 가치는 수용소가 폐쇄된 후에도 여전히 빛나고, 또한 그곳에서 남아공 축구 리그가 배태되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이래저래 이 책은 남아공 월드컵과 함께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책으로 보인다.


6. Football 축구
 

 3만원 대의 정가에 200페이지도 안 되는 이 책의 스펙(?)을 보면 일단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이 책의 실물을 확인하고는 조금은 납득을 했다. 이 책의 외관은 기본적으로 축구공을 닮은 둥근 형태를 띠고 있는데, 표지의 재질은 마치 스펀지 마냥 푹신푹신하다. 전체적으로 미니 사이즈의 축구공을 압축한 형태로, 외관만 놓고 보자면 이 책은 진정 축구팬을 위한 '맞춤형' 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에 비해 책의 내용은 기실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축구의 역사와 규칙'을 설명하고 '불멸의 스타'들을 언급하며 '주요 대회'를 소개하는 건 이미 축구팬들이라면 익숙한 내용이다. 관건은 익숙한 내용을 얼마나 참신하고 생생하게 다루느냐 인데, 솔직히 말해서 191페이지로는 너무 턱없이 부족할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축구팬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독특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7. 축구란 무엇인가 

 작년에 <야구란 무엇인가>를 무척 감명 깊게 읽고는 왜 축구에는 그와 같은 책이 없는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의 북 섹션을 통해 <축구란 무엇인가>가 출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야구란 무엇인가>와 <축구란 무엇인가>는 실제로 각기 다른 국적의 원서를 번역한 것이고, 둘 사이의 상관관계는 사실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야구란 무엇인가>가 그랬던 것처럼 <축구란 무엇인가> 또한 수많은 축구관련 서적 중에서도 '탁월한' 책을 출판사가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목차를 살펴보면 일단 충분히 흥미로워 보인다. 다양하고 독특한 소제목들은 과연 그러한 소재로 축구의 어떤 면을 이야기하려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내용도 적잖이 만족스럽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축구 책들 중 으뜸가는 책이다."라는 어느 방송의 소개 멘트는 믿을 게 못 되지만 "독일의 수많은 축구 도서 중에서도 이 책이 최고로 꼽힌다."는 차범근의 추천사는 한 번 믿어 봐도 좋을 듯하다.

 

8. 월드컵 1930-2010 

 이른바 '월드컵 시즌'을 맞아서 나온 책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단 한 권만 고르라면 바로 이 책, 표지부터 익살스럽고 독특한 캐리커처로 흥미를 끄는 <월드컵 1930-2010>을 선택하겠다.
책장을 넘기면 이내 마주하게 되는 캐리커처의 향연으로 일단 눈이 즐거운 이 책은 내용 면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다.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부터 2010년 제19회 남아공 월드컵까지, 월드컵의 역사를 모두 아우르면서 각 대회를 빛냈던 선수나 결승전의 골 장면들, 혹은 '지단의 박치기'와 같은 흥미로운 사건들과 특기할 만한 단편적인 사실 등이 헤르만 악셀의 재기 넘치는 일러스트로 '재현'되고, 각 대회의 특징을 포착하는 안목도 인상적이다. 게다가 도판의 시원한 크기는 이 책의 소장 가치를 더욱 높인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책은 가히 축구팬의 보물이 될 만한 책이며, 굳이 축구팬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난 월드컵의 역사를 흥미롭게 개관하는 데에 상당히 유용하고 즐거운 책이라고 할 만하다.


9. 맨발의 꿈

 월드컵은 지구촌 축제로 명명되지만, 기실 이 축제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국가는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이를테면 동티모르. 200개국 남짓의 피파 회원국 중에서 현재 200위를 기록 중인 동티모르가 월드컵을 즐기기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동티모르에도 '기적'은 일어났다. 2004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 유소년 대회인 리베리노컵에서 동티모르의 어린 소년들은 일본을 4-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 그리고 이 기적의 한가운데에 한국인 김신환 감독이 있었다.
<맨발의 꿈>은 김신환 감독과 동티모르가 함께 엮어낸 기적 같은 실화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축구선수로서 불운을 겪었던 김신환이 동티모르에 스포츠 용품점을 열고, 거기서 장사에는 실패한 대신 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게 되고, 함께 '꿈'을 꾸게 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6월 24일 개봉 예정이며, 최근에 김신환 감독이 직접 쓴 <맨발의 기적>이라는 제목의 책도 출간된 바 있다.

 



10. 축구의 신 : 마라도나

 축구에 관하여 21세기를 20세기와 비교하여 정의 내리자면, 나는 21세기는 '신들이 사라진 시대'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록 21세기에도 여전히 호날두와 메시 같은 경이로운 선수들이 존재하지만, 전설처럼 전해지는 20세기 선수들의 압도적인 존재감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유일무이한 '축구황제'로 추앙 받는 펠레나, 혹은 '신'으로까지 일컬어지는 마라도나와 같은 선수들이 21세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실제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종교도 있다고 한다).
<축구의 신 : 마라도나>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와 조별 예선에서 만나게 되면서 더욱 많이 들리게 된 이름인 마라도나에 관한 영화다. 아직까지는 과연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이 마라도나의 '신적인 행적'일지, '인간적인 면모'일지, '악동의 기행'일지, 아니면 이 모든 모습을 망라한 것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쨌거나, '신들의 시대'인 20세기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던 한 위대한 축구 선수에 관한 영화는 축구팬들이 놓치기 아까운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11. 피파 피버(FIFA FEVER)
 

 "17번의 월드컵을 종합한 FIFA공식 최초의 영상물"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외관과 구성은 그렇게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FIFA라는 든든한 배경을 소스로 하는 DVD답게 총 3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피파 피버>는 축구 역사에서 기억할 만한, 혹은 흥미를 끌 만한 동영상들이 가득 들어 있다. 예컨대, 각종 '베스트10'이나 '최고의 팀', '최고의 선수'에 관한 영상처럼 익숙하지만 여전히 또 보고 싶은 동영상들이 있는가 하면, '여자축구'와 '악동', '풋살'에 관한 동영상 등 흔히 접하기 어려운 자료들도 있고, 또한 한국팀의 경기('이변의 명승부 :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이탈리아전')나 한국 선수의 활약상('헤딩골 베스트10 : 안정환')처럼 한국팬들이 반가워할 만한 동영상도 FIFA에 의해 선정되어 수록되어 있다.
한국팀의 경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보내기에 이 DVD는 꽤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고, 특히 지난 2006년에 출시된 이후 가격이 착해졌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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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냐
박상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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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 전에 '새파란상상' 출판사의 관계자인 듯한 분이 댓글을 남겨 주었다. 댓글의 내용인즉슨,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박상의 야구소설 <말이 되냐>가 나왔으니 한 번 읽어보라는 얘기였고,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를 계기로 '야빠 대동단결 이벤트'에 참여하라는 얘기였다. 뜬금없이 이런 댓글이 달린 이유는 순전히 내가 야구 관련 서적을 읽고 리뷰를 쓴 전례가 있기 때문인데, 이렇듯 야구팬으로 보이는 잠재적 독자를 일일이 찾아가는 홍보 방식은 나름 괜찮아 보였다. 어차피 야구소설이란 건, 결국 읽을 만한 사람만 읽게 되는 장르이니까. 다만 그 분이 간과한 게 하나 있다면, 그렇다고 해서 야구 관련 서적을 읽는 사람이 반드시 야구팬은 아니라는 것이고, 유감스럽게도 내가 바로 그런 경우다. 굳이 밝히자면 나는 '축구팬'이다. 그러니까 '축구팬' 블로그에 찾아와서 "야빠대동단결" 운운이라니, 이게 말이 되냐!

그런데 말이 안 되기로 따지자면, 제목조차 '말이 되냐'인 이 소설은 그보다 한술 더 뜬다. 사회인 야구팀에서도 별 볼 일 없는 야구를 하며 회사를 다니던 주인공(이원식)이 회사에서 잘린 후 산속 암자를 찾아가게 되고, 거기에서 만난 무공스님과의 인연 덕택에 무공을 전수 받고 내공을 얻고 비도술을 익힌다? 잠깐, 혹시나 이 정도쯤이야 이른바 차원이동 무협소설에서 흔히 보던 패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분명히 말해두자면,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대판 야구소설의 입장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후의 상황은 점입가경이어서, 비도술의 방식으로 던지는 이원식의 공은 조금씩 신체 운용의 묘리를 깨우쳐 가면서 점점 더 빨라지고, 그는 곧 꿈에서나 밟아 보았던 프로의 마운드 위에 오른다. 게다가 그런 그의 곁에는 야구를 사랑하며 언제나 그에게 기적을 베푸는 아름다운 여인(이선희)도 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냐!

그러나 평범하고 찌질한 인생을 살던 한 야구팬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거나 하는 따위의 문제는 기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가 본래 판타지와 로망의 영역이라는 것이고, 알다시피 판타지와 로망이라는 건 현실과는 억만 광년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까닭에 도리어 위안과 만족을 주는 법이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야구를 인생의 한가운데에 둘 수 있는 기쁨과 시속 160km대의 직구를 던질 수 있는 환희,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우정과 유대, 그리고 야구를 사랑하는 이와의 사랑도 외려 현실과는 다르기에 바라마지 않는 기적과도 같은 셈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야구소설'이랍시고 완전히 '현실'적이라면, 아마도 야구를 너무나 좋아하다가 회사에서도 잘리고도 정신 못 차린 채 '프로야구'를 꿈꾸는 이원식은 야구공을 손에 쥔 채 '야, 구..' 한 마디를 남기고는 처참하게 죽게 될 테고(물론 그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끝내 남기고 싶었던 말은 '야, 구해줘, 제발'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소설을 읽으며 독자는 이렇게 소리칠 것이다. 찌질한 인생은 야구조차도 꿈꿀 수 없다니, 이게 말이 되냐!

유쾌하고 코믹하지만 과장되고 엉뚱한 듯하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지고, 점점 더 궁극의 판타지에 다가갈수록 어떤 현실성 없는 욕망의 대리만족도 더욱 충족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환상이 본래 그렇듯, 그것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시련과 고난이 닥치고, 어디에나 있을 법한 부조리와 약은 술수로 무장한 악당이 등장할 때, 가령 소설 속에서 "비열한 악한이 권력자가 되기도 하는 사회"에서 당연하다는 듯 음험한 쥐새끼 같은 타자(그러니까 이름이 이명......아, 그래 이명복이었다. 뭐, 중요한 건 아니지만)를 상대하게 될 때, 이 판타지란 것도 결국 현실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음을 새삼 깨닫고, 그렇다면 아무리 빠른 직구라도 별무소용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곤 하는 것이다. 하긴, 아닌 게 아니라 여전히 부조리한 현실에서 그저 빠른 공만 장땡이라면, 그게 말이 되냐!

최고의 강속구. 최고의 멋진공. 부조리라곤 없는 정직한 직구. (p439)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스포츠인 야구에서 정직한 직구의 매력이란, '작가후기'에서 작가가 언급하듯 "극복에의 의지"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빠르다고 무조건 얻어맞지 않는 것도, 느리다고 무조건 얻어맞는 것도 아니지만, 있는 힘껏 던지는 최고의 강속구에는 정정당당하게 맞부딪치는 순수한 의지가 가득 담겨 있고, 그것은 그 자체로 종종 어떤 '희망'을 은유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정당한 야구를 도외시하는 타자(그러니까 이름이 이명......아, 이명복. 물론, 중요한 건 아니지만)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정의'랄지, 혹은 나아가 "대통령은 밥 먹고 국민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운동선수는 밥 먹고 열심히 운동만 하는", 그런 잘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기대' 같은. 물론, 현실은 그와는 달리 여전히 쥐똥 같을지도 모르지만, '극복의 의지'가 있는 한, 그리하여 "우리에게 좋은 날이 올 수 있도록 극복하는 힘이 되어 줄 해피엔딩의 마력"을 믿는 한, '희망'을 은유하는 정직한 직구의 가치는 여전히 작지 않다. 그러한 '희망'조차도 말이 안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 될 테니까. 

덧. 어쩌다 보니 '야빠 대동단결 이벤트'에 당첨된 모양인지, 어느 날 야구 티켓 두 장이 집으로 날아왔다. 물론 일단은 고맙긴 한데, 다만 문제라면 자동차를 타고 먼 거리를 달려 온 티켓이 가리키는 일시와 장소가 바로 다음날의 서울 목동야구장이라는 것. 그러니까 지방에 사는 사람한테 당장 내일 열리는 서울 경기 티켓이라니, 이게 말이 되냐!(...라는 건 얼마 전까지의 일이고, 며칠 전에 이번에는 다소간의 여유를 둔 티켓이 또 날아왔다. 이것은...그러니까 '축구팬'을 '야구팬'으로 회유하기 위한 대대적인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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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
팔리 모왓 지음, 곽영미 옮김, 임연기 그림 / 북하우스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소년에게 개가 없다는 것은 드넓은 대초원을 반밖에 즐길 수 없다는 뜻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고 사뭇 감동적인 데가 있는 이 한 문장에 크게 공감을 한 이후에는, 왠지 꽤나 무덤덤하게 책을 읽어 나갔다. 대초원이 드넓게 펼쳐진 곳을 배경으로 하는 팔리 모왓의 가족 이야기는, 조금 별난 아버지와 따뜻한 어머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혀 '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 머트의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인해 독특하고 흥미로웠지만, 뭐랄까, 자전적인 이야기와 동화의 경계 속에 위치한 탓에 나와는 미묘하게 어긋나는 듯했다. 논픽션을 지향하는 듯하면서도 약간의 상상력과 다소의 과장이 뒤섞이는 글에 공감하기에는, 내 감성이 그리 풍요롭지 않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고 보면, 일전에 읽었던 팔리 모왓의 다른 책 <울지 않는 늑대>에서도 글쓰기 방식은 <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와 유사했었다. 그러나 전자가 익숙지 않은, 그래서 인간의 일방적인 편견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늑대'를 다분히 옹호하고자 하는 의도 하에서 그러한 방식이 '효과적'이었다면, 후자는 너무나도 익숙한 '개'를 대상으로 하면서 그러한 방식이 외려 조금은 '낯선 거부감'을 낳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세상에는 별의별 개들이 다 있고, 내가 실제로 길러본 바 개가 종종 자신이 개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알지만, 아무래도 이 책의 주인공 머트의 행동까지 수긍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머트는 '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였다기 보다는, 차라리 그냥 '개가 아닌 개'가 더 어울릴 정도였고, 그래서 심지어는 이 책이 주는 감동마저도 종종 작가에 의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직조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상상력과 과장이 글의 재미를 위한 한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고,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전하는 팔리 모왓의 따뜻한 메시지는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그리고, 단지 그것만으로도 팔리 모왓의 책을 읽는 이유로는 충분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이상을 원했던 내게, 이 책은 아쉬웠던 부분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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