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되냐
박상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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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 전에 '새파란상상' 출판사의 관계자인 듯한 분이 댓글을 남겨 주었다. 댓글의 내용인즉슨,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박상의 야구소설 <말이 되냐>가 나왔으니 한 번 읽어보라는 얘기였고,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를 계기로 '야빠 대동단결 이벤트'에 참여하라는 얘기였다. 뜬금없이 이런 댓글이 달린 이유는 순전히 내가 야구 관련 서적을 읽고 리뷰를 쓴 전례가 있기 때문인데, 이렇듯 야구팬으로 보이는 잠재적 독자를 일일이 찾아가는 홍보 방식은 나름 괜찮아 보였다. 어차피 야구소설이란 건, 결국 읽을 만한 사람만 읽게 되는 장르이니까. 다만 그 분이 간과한 게 하나 있다면, 그렇다고 해서 야구 관련 서적을 읽는 사람이 반드시 야구팬은 아니라는 것이고, 유감스럽게도 내가 바로 그런 경우다. 굳이 밝히자면 나는 '축구팬'이다. 그러니까 '축구팬' 블로그에 찾아와서 "야빠대동단결" 운운이라니, 이게 말이 되냐!

그런데 말이 안 되기로 따지자면, 제목조차 '말이 되냐'인 이 소설은 그보다 한술 더 뜬다. 사회인 야구팀에서도 별 볼 일 없는 야구를 하며 회사를 다니던 주인공(이원식)이 회사에서 잘린 후 산속 암자를 찾아가게 되고, 거기에서 만난 무공스님과의 인연 덕택에 무공을 전수 받고 내공을 얻고 비도술을 익힌다? 잠깐, 혹시나 이 정도쯤이야 이른바 차원이동 무협소설에서 흔히 보던 패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분명히 말해두자면,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대판 야구소설의 입장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후의 상황은 점입가경이어서, 비도술의 방식으로 던지는 이원식의 공은 조금씩 신체 운용의 묘리를 깨우쳐 가면서 점점 더 빨라지고, 그는 곧 꿈에서나 밟아 보았던 프로의 마운드 위에 오른다. 게다가 그런 그의 곁에는 야구를 사랑하며 언제나 그에게 기적을 베푸는 아름다운 여인(이선희)도 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냐!

그러나 평범하고 찌질한 인생을 살던 한 야구팬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거나 하는 따위의 문제는 기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가 본래 판타지와 로망의 영역이라는 것이고, 알다시피 판타지와 로망이라는 건 현실과는 억만 광년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까닭에 도리어 위안과 만족을 주는 법이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야구를 인생의 한가운데에 둘 수 있는 기쁨과 시속 160km대의 직구를 던질 수 있는 환희,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우정과 유대, 그리고 야구를 사랑하는 이와의 사랑도 외려 현실과는 다르기에 바라마지 않는 기적과도 같은 셈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야구소설'이랍시고 완전히 '현실'적이라면, 아마도 야구를 너무나 좋아하다가 회사에서도 잘리고도 정신 못 차린 채 '프로야구'를 꿈꾸는 이원식은 야구공을 손에 쥔 채 '야, 구..' 한 마디를 남기고는 처참하게 죽게 될 테고(물론 그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끝내 남기고 싶었던 말은 '야, 구해줘, 제발'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소설을 읽으며 독자는 이렇게 소리칠 것이다. 찌질한 인생은 야구조차도 꿈꿀 수 없다니, 이게 말이 되냐!

유쾌하고 코믹하지만 과장되고 엉뚱한 듯하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지고, 점점 더 궁극의 판타지에 다가갈수록 어떤 현실성 없는 욕망의 대리만족도 더욱 충족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환상이 본래 그렇듯, 그것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시련과 고난이 닥치고, 어디에나 있을 법한 부조리와 약은 술수로 무장한 악당이 등장할 때, 가령 소설 속에서 "비열한 악한이 권력자가 되기도 하는 사회"에서 당연하다는 듯 음험한 쥐새끼 같은 타자(그러니까 이름이 이명......아, 그래 이명복이었다. 뭐, 중요한 건 아니지만)를 상대하게 될 때, 이 판타지란 것도 결국 현실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음을 새삼 깨닫고, 그렇다면 아무리 빠른 직구라도 별무소용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곤 하는 것이다. 하긴, 아닌 게 아니라 여전히 부조리한 현실에서 그저 빠른 공만 장땡이라면, 그게 말이 되냐!

최고의 강속구. 최고의 멋진공. 부조리라곤 없는 정직한 직구. (p439)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스포츠인 야구에서 정직한 직구의 매력이란, '작가후기'에서 작가가 언급하듯 "극복에의 의지"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빠르다고 무조건 얻어맞지 않는 것도, 느리다고 무조건 얻어맞는 것도 아니지만, 있는 힘껏 던지는 최고의 강속구에는 정정당당하게 맞부딪치는 순수한 의지가 가득 담겨 있고, 그것은 그 자체로 종종 어떤 '희망'을 은유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정당한 야구를 도외시하는 타자(그러니까 이름이 이명......아, 이명복. 물론, 중요한 건 아니지만)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정의'랄지, 혹은 나아가 "대통령은 밥 먹고 국민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운동선수는 밥 먹고 열심히 운동만 하는", 그런 잘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기대' 같은. 물론, 현실은 그와는 달리 여전히 쥐똥 같을지도 모르지만, '극복의 의지'가 있는 한, 그리하여 "우리에게 좋은 날이 올 수 있도록 극복하는 힘이 되어 줄 해피엔딩의 마력"을 믿는 한, '희망'을 은유하는 정직한 직구의 가치는 여전히 작지 않다. 그러한 '희망'조차도 말이 안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 될 테니까. 

덧. 어쩌다 보니 '야빠 대동단결 이벤트'에 당첨된 모양인지, 어느 날 야구 티켓 두 장이 집으로 날아왔다. 물론 일단은 고맙긴 한데, 다만 문제라면 자동차를 타고 먼 거리를 달려 온 티켓이 가리키는 일시와 장소가 바로 다음날의 서울 목동야구장이라는 것. 그러니까 지방에 사는 사람한테 당장 내일 열리는 서울 경기 티켓이라니, 이게 말이 되냐!(...라는 건 얼마 전까지의 일이고, 며칠 전에 이번에는 다소간의 여유를 둔 티켓이 또 날아왔다. 이것은...그러니까 '축구팬'을 '야구팬'으로 회유하기 위한 대대적인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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