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 세상에서 가장 먼 만행
조연현 글.사진 / 오래된미래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한때, 나는 WWF 레슬링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적이 있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우연히 빌려 본 레슬링 비디오에 홀딱 반했고, 당연한 귀결로 헐크 호건을 비롯한 레슬러들의 이름을 줄줄 외고 다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워리어를 가장 좋아했는데, 수세에 몰려 있던 워리어가 돌연 각성(?)하는 순간을 나는 정말로 사랑했다. 로프를 흔들면서 각성한 워리어는 아무리 맞아도 아픔을 느끼지 않았고, 결국은 상대를 넘어뜨리곤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듯 열광했던 레슬링이 각본에 의한 것임을 알고서, 나는 더 이상 레슬링을 좋아하지 않았다. 워리어가 아무리 각성을 한들, 그도 사실은 아픔을 느끼는 범인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던가!

뭐, 당연한 말이지만, 선(禪)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평생을 정진한, 선사들의 행적을 드러낸 이 책은 레슬링과는 몇억 광년쯤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레슬링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마치 더 이상 환호하지 않는 레슬링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랄까, 워리어가 계속해서 로프를 흔들며 상대선수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각성의 순간을 보여주지만, 나는 '뻥치지마! 이제 당신이 아픈 거 억지로 참는 걸 다 알거든. 아니, 사실 그리 아프게 맞은 것도 아니잖아.'라며 심드렁해 하는 기분이 되었달까. 어쨌거나 레슬링은 여전히 열정적이지만, 그럼에도 전혀 거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그런 기분.

물론,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선사들이 레슬링을 할 리 만무하고, 뭔가를 짜고서 보여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선사들은 레슬링 기술보다 백만 배쯤 더 대단한 기술을 선보인다. 예컨대, 몸에서 불길과 같은 빛이 솟구치게 한다거나, 잠을 자지 않고 몇 개월을 지낸다거나, 혹은 호랑이 같은 짐승을 부리는 일 따위가 그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외마디 고함으로 족제비를 기절시킨다거나 생리를 멈추는 일도 가능하고, 심지어는 나병환자를 낫게 할 수도 있다. 물론 엄밀히 말해,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道다. 하지만 나로서는 믿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것은 레슬링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믿기 어려운 도력(道力)과 더불어, 비슷한 일화가 각기 다른 선사들에게서 더러 드러나는 점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에 의존한 한계라고 짐작할 만하다. 잘 알다시피, 이름만 바뀐 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거나, 주인공의 능력이 지나치게 신비하게 포장되는 것은 대개의 구비문학이 지니는 공통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선사들의 행적에 대해 저자는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마치 모든 것이 사실인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엄격하게 계율을 지킨 선사는 청정해서 좋고, 계율에 얽매이지 않은 선사는 탈속해서 좋다는 식의 설명은, 나로서는 다소 당혹스럽기만 하다.

설령 레슬링이 각본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레슬링 경기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고, 레슬러들의 땀방울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道를 추구했던, 드러나지 않은 선사들의 내밀한 이야기는 자못 감동스러운 데가 있고, 그들의 자취도 결코 거짓만은 아니다. 게다가, 그러한 선사들을 세상에 알리고자, 그들의 티끌만한 자취라도 좇으려 했던 저자의 노력은 실로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은둔'의 선사들을 드러내려는 분명한 목적과 자료수집의 한계로 인해, 이 책은 지나치게 어린이 위인전 식으로 흐른 감이 없지 않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어린 시절 열광했던 레슬링을 이제 좋아하지 않듯이, 나는 더 이상 어린 시절 읽었던 어린이 위인전을 오직 진실이라고는 믿지 않게 되었다.

워리어가 로프를 미친 듯이 흔들 때면, 그가 신비한 힘을 받아서 상대의 공격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는 믿음이 관객들의 암묵적 동의에 의해 이미 전제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만일 그때, '쇼하고 있네!'라며 조소하는 사람은 결코 레슬링 경기장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 같은 맥락에서, 그다지 道를 믿지도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는 나는 이 책의 독자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고, 때로는 승가라는 안온한 울타리마저도 서슴없이 버렸던 선사들의 자취는 그 자체로 흥미와 가르침을 주지만, 道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지 않은 내게는 다소 심드렁했다는 게 내 솔직한 감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당신은 道를 믿으십니까?"라는 질문에, 최소한 단번에 고개를 가로 젓지는 않을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터무니없는 결론이지만, 나는 진심으로 아마도 그것이 이 책과 독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
고혜정 지음 / 소명출판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라디오의 뉴스: 미군도 수많은 전사자를 냈지만, 베트콩측도 115명이 전사했습니다.

여자: "무명(無名)이란 참 무섭지요." / 남자: "뭐라고?" / 여자: "게릴라가 115명이 전사했다는 것만 갖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 않아? 한 사람 한 사람에 관한 일은 무엇 하나 아는 게 없는 상태지. 아내나 아이들이 있었는지? 연극보다 영화를 더 좋아했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저 115명 전사라는 것 말고는ㅡ."  

장 뤽 고달, <미치광이 피에로>에서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中)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일본군에 의해 종군위안부로서의 삶을 강요당한 여인들의 수는 20만, 혹은 그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불확실한 이 엄청난 숫자가 주는 무서움 이상으로, 그 수많은 여인들은 무명(無名)으로 인한 무서움에 더욱 절망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종종 일본군의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간의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기도 하고, 국제사회에서의 문제제기로 인해 쟁점이 되기도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당시 종군위안부로서의 비극적 삶을 감내한, 여인들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데서, 이러한 논의는 마찬가지로 절망적이기만 하다. 거기에는 다만, '국가'와 '민족'이라는 냉혹한 이데올로기만이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 <날아라 금빛날개를 타고>는 망각을 강요당한, 종군위안부들의 이름을 전면에 드러내기 위한 최초의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과거 청산이라거나 국민국가의 담론이라고 하는 거대한 틀 속에서 단지 '국가'나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해야 했던, 수많은 여인들의 그 무명성(無名性)을 깨뜨리기 위한 의미 있는 노력인 셈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이루어진 종군위안부의 그 엄청난 비극과 희생을 오마당순이라는 한 어린 소녀를 통해 드러내 주고, 이는 막연한 숫자가 주는 비극 이상의 놀랍고 슬픈, 수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섬'은 남태평양의 어느 곳에 있는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동시에, 우리 인식의 시간 속에 부유하는 섬이다. 열대우림의 이 아름다운 섬은,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비극적인 공간으로 변하고 만다. 그리고 그때부터 오마당순을 비롯한 여인들의 고통과 수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익히 알려진 일본군의 기만과 성적 유린은 어린 소녀의 경험을 통해 좀 더 잔혹하고 참혹한 형태로 드러나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ㅡ일본군을 포함한ㅡ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섬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어떤 존재에 의해 좌우되는 기막힌 현실이다. 요컨대, 제국주의라는 초월적 존재의 주관 아래 生은 그에 의해 만들어진 연극일 뿐이며, 따라서 그 속에는 단지 역할의 차이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후, '섬'은 미군에게 점령되어 또 다른 전환기를 맞이한다. 이제 섬은 더 이상 고통과 비극의 장소가 아니라 망각의 장소로 변한 것이다. 여인들이 '공중변소'로 전락하여 얻은 대가는 '불쏘시개'로 사그라지고, 제국주의에 전도되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오직 희생양만이 넘쳐날 뿐이다. 미군에 의해 구출된 여인들은 고향으로의 귀환 소식에 기뻐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이전과 달라진 자신들의 모습에 이내, 또 한 번 절망한다. 전쟁은 여인들에게 차마 말하기 힘든 고통을 강요했고, 종전은 또 다시 여인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다. 결국, 생존자들이 귀향선을 타고 그 섬을 떠나면서, 섬은 점점 멀어지며 수장된다. 그리고 그 곳에 남겨진 사람과 희생자들과 그들의 고통,진실 등도 우리의 인식 속에서 점차 망각되고 만다.

이 책의 의의는 그 망각된 '섬'에 대한 인식의 노력, 즉 '과거의 복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20만이라는 숫자에 묻혀서 자신의 이름을 갖지 못했던, 수많은 여인들의 진실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미군에게 죽는 순간까지 기관총을 난사하며 제국주의를 옹호했던 달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섬에 남겨지는 쪽을 택한 막달과 영숙, 끝내 귀향선에서 바다로 몸을 던진 영분, 그리고 전쟁의 잔혹한 소용돌이 속에서 죽음을 맞은 수많은 여인들. 그들이 그러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것은 오직 전쟁의 광기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군의 추악했던 범죄와 마찬가지로, 조국도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새로운 조국을 건설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그들의 삶은 또 한 번 음지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이러한 종군위안부가 주는 의미는 오로지 희생과 고통과 비극이다. 하지만, 대체 그들은 언제까지 그러한 절망 속에서 숨어 지내야만 하는 것일까. 일본에 의해, 그리고 조국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했던 여인들은 지금도 우리가 요구하는 망각의 강요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웃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은 그들이 지닌 트라우마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것을 아직 허락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정말로 무서운 것은, 20만이라는 숫자가 지니는 그 다양함 속에서도, 여인들은 오직 '일본에 대한 분노와 희생' 이라는, 단 한 가지 사실만으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가혹한 현실이 아닐까.

그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 나만 도망치고 싶은 게 아니었다. / 그들도 그랬다. / 나만 흥이 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게 아니었다. / 그들도 어깨춤을 추며 삶을 누리고 싶어했다. (p333)

제국주의의 시대적 비극과 여성으로서의 숙명적 희생이라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렸던 여인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진심으로 바라고 갈망했던 것은 삶에 대한 희망과 행복이 아니었을까. 미군에 의해, 직업란에 prostitute(매춘부)로 기록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 오마당순처럼, 모든 기억과 진실이 사라진 채 오직 희생자로서, 무명으로서 기억되는 현실에 그들은 더욱 절망하고, 그래서 자신의 상처를 안으로만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들은, 오마당순이 나무인형을 깎아 죽은 여인들을 하나 하나 기억하며 그네들을 하늘로 올려 보냈듯이, 그들도 자신들의 '허물'을 벗고 하늘을 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이 책은,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진실에 관한 것이고, 절망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이 땅의 마당순이들이 그들 본연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커다란 금빛 날개를 달아주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주 뛰어난 소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문장과 넘치는 재미, 혹은 터질 듯한 감동이 소설의 미덕이라면, 어쩌면 이 책은 좋은 소설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은, "왜 쓰는가?"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20만 혹은 그 이상의 마당순이들에게 바치는, 이 한 권의 책에 대한 작가의 노력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이제, / 고통이 아니라 힘을 나누고 싶다. / 괴로움이 아니라 충만한 생기를 함께 느끼고 싶다. / 삶의 춤을 추기 위해 손을 내밀고 싶다.

그대에게 (p3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 -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현지에서 1년간 독점취재하다
최보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최보윤 기자의 글을 비교적 신뢰하는 편이다. 그녀의 글을 처음 접한 건 어느 네티즌이 퍼 나른, 그녀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서였는데, 프리미어리그에 관한 기사가 홍수처럼 쏟아지던 당시에도 그녀의 글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그녀가 영국 특파원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포포투>의 '최보윤의 sexual football' 코너를 통해 정기적으로 그녀의 글을 접할 수 있었고, 나는 코너 이름만큼이나 섹시하고 매력적인 그녀의 글을 매우 흥미롭게 읽고 있다.

그녀가 축구를 대하는 방식은 여느 기자들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이를테면, 박지성의 섹시한 엉덩이를 주목한다거나, 유부남 베컴이 주는 매력을 파헤친다거나, 혹은 무리뉴 전 첼시 감독이 중년 남성으로서 보여주는 중후함을 한껏 드러내주는 식이다. 물론, 이는 '최보윤의 sexual football'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이자, 그 코너의 컨셉에 맞춘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른 글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비교적 뚜렷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것은, 축구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해체되는 경향과 맞물려, 그녀 자신의 독특한 색깔로서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 <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 역시, 그녀의 독특한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이 책을 좀 더 매력적이고 감성적으로 만들어 준다. "음. 사실 나는 패스, 돌파, 뭐 이런 것을 시간순으로 다시 뜯어 설명하거나 수치화시키는 것보다는 뭐랄까, 축구를 뮤지컬 같은 공연을 보듯 즐기는 그런 걸 바랐었다.(91p)" 라는 그녀의 말처럼, 이 책은 축구 전술이나 기록과 같은 객관적 사실에 주목하기보다는 다분히 주관적인, 그러나 그로 인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녀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솔직함이 바로 그녀가 프리미어리그를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였음에 분명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이런 점에 있다. 박지성 선수가 몇 경기에 나서서 몇 골을 넣었고, 그가 어떤 전술적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그가 맨유라는 세계적 구단에서 동료들과 어떻게 함께 어울려 나가는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 조금씩 잊혀지고 비난받는 설기현 선수의 단점을 분석하기보다는, 그의 섬세한 심정과 강인한 의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드러내 주는 것.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던 이영표 선수의 기록을 살피기보다는, 그의 인간적 면모에 주목하는 것. 이외에도 프리미어리그의 스타선수들과 감독들이 지닌 매력을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소개해 주면서, 좀 더 색다르면서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프리미어리그를 접하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스포츠가 지니는 속성상 수치와 같은 객관적 정보가 전혀 반영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정보를 버무리고 저자의 개인적 경험을 첨가해서, 달콤하고 톡톡 튀는 글로 만들어내는 그녀의 솜씨는 정말 감탄할 만하다. 예컨대, 영국 언론의 반응을 간략하게 브리핑해 준다거나, 웨인 루니의 여자친구인 콜린 맥러플린이 여성잡지에서 루니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캐치해 낸다든가 하는 것들은 저자의 주관적 시선과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 자못 흥미로운 것이다. 또한, 책 구석구석을 장식하는 선수들의 사진은 마치 저자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듯, 선수들의 매력적인 모습을 한껏 드러내는 사진들뿐이어서 이 사진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이 책도 아쉬운 점들이 없지는 않다. 두 번째 파트인 '반짝반짝 빛나는 8인의 축구 스타' 부분이 특히 그러한데, 이 부분에는 <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라는 책 제목이 무색하게 4명의 非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그들이 영국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국에서 저자가 접했을 정보와 경험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저자가 직접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들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국, 이런 저런 정보를 취합해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는 저자의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글이 지니는 색깔이 현저하게 사라지면서 밋밋해지고 만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초반에 그녀의 글이 주는 매력이 기대 이상이어서, 거기에 비교되는 상대적인 아쉬움이라 할 수 있을 듯하고, 축구팬이라면 결코 실망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는 역시 장점이 훨씬 많아서, 이 책은 가히 프리미어리그 팬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이 책은 태생적 한계로 인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축구 소식'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내 '과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저자의 프리미어리그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여전히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결국, 저자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기 마련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식 e - 시즌 1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1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나는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 잘 알다시피, 커피는 각성효과를 가진 카페인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졸음을 방지하고, 왜 그런지 정확히는 몰라도, 어쨌든 이뇨작용에도 도움을 준다. 게다가 어느 연구결과에 의하면, 커피를 마시는 것은 간암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달리 커피를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거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커피도 과음하면 좋지 않음을 나 또한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나는 가급적 하루에 커피를 2잔정도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주말이면, 나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축구화를 챙겨들고 운동장으로 향한다. 사실은 그저 좋아해서 하는 축구일 뿐이지만, 이 운동이 나를 육체적으로 더 건강하게, 그리고 정신적으로 더 상쾌하게 만들어 주리란 걸 나는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특히나, 최근에 나오는 축구공은 가히 과학의 결정체라 할만 해서 축구를 좀 더 흥미롭게 만들어 준다. 탄력성이 향상된 축구공은 좀 더 빠르게 멀리 날아가고, 반면에 발등에 얹히는 느낌은 오히려 훨씬 가벼워 졌기 때문이다. 물론 덕분에 꽤나 비싸졌지만, 최첨단 축구공은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막 자리를 잡았을 즈음, 세상은 한바탕 무서운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군사정권은 그런 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로 인해, 결국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주의 운동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쌓이고 쌓여 오늘에 이르렀음은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 생명이 당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고, 그렇게 나는 어른이, 그리고 그 일은 과거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커피를 마시고, 축구공을 차며, 민주주의 운동을 과거로 인식할 때, 내가 빠뜨리고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知識의 이면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나는 물론, 알지 못했다. 내가 마시는 커피를 위해 지불하는 대가가 고스란히 가공, 판매업자와 중간상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정작 농민들이 커피 45잔을 만들 수 있는 원두 1파운드를 팔고 단 60센트(6백원)를 손에 쥔다는 현실을. 내가 차는 축구공을 위해 1620회의 바느질을 하며 일당 300원을 받는 어린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과거에 벌어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얼마나 절박하고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이것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과거라는 진리를.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혹은 알고도 외면했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 책, <지식e>는 그러한 불편한 진실들을 끝내 드러내주고 만다. <EBS 지식채널e>에서 방송된 이야기들을 엮어낸 이 책은 일방적으로 강요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설득하지도 않지만, 호소력 있는 감성적 문구들을 통해 내가 알고 있던 '知識'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던 것인가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智識'들"이 마치 '가시'처럼 다가와 온 몸에 박히도록 만든다. 바로, '공정한 무역'과 '아동노동'과 '민주화' 등의 이름으로.

내가 마시는 커피는 그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한 것이지만, 그것은 사실 완전히 불공평한 것이었다. 내가 즐기는 축구에 사용되는 축구공은 과학이 집결된 것이지만, 기실 그것은 전혀 상식적이지도 못했다. 내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과거로부터 비롯된 결과이지만, 실상 그것은 여전히 계속되는 현재였다. 머리로 알고 있던 知識은 "가슴으로 읽히는 智識"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고, 그렇게 나는 내가 지닌 知識의 이면에 존재하는 智識과 마주한 것이다.

그러나 '智識', 즉 '지혜로운 앎'도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다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이며,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내 몸에 박힌 '가시'들은 또한 소중한 고통이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혀가 따끔하고, 축구공을 찰 때 괜스레 발이 따끔하며,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불현듯 마음이 따끔해진다면, 나는 언젠가 그 '가시'를 뽑기 위해 기꺼이 행동을 하게 되리라 믿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고통이야말로, 내가 진정 살아있다는 증명일 것이므로.

'가시'가 주는 고통을 모르지 않는 것, '가시'가 주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가시'가 주는 고통에 둔감해지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주는 메시지이자, 우리가 '인간'이 되는 첫걸음일 것이다.

Sentio ergo sum.

느낀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 ps. '34. 비타민의 역습' 편에 나오는 hypochodriasis라는 단어는 hypochondriasis의 오타이다. 그리고 '35. 달팽이 집' 편, 308페이지 상단의 pariakapitlismus라는 단어는 pariakapitalismus의 오타이다. 물론 이런 사소한 오타를 걸고넘어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꽤나 어려운 단어들을 간단한 해석도 없이 넣은 것은 조금 아쉽다. 특히나 뒤의 단어를 오타난 대로 검색하면, 사전은 물론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나와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애초에 그 단어 옆에 '천민자본주의'라는 의미를 조그맣게나마 병기했다면 이런 혼란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은 단어 하나가 주는 의미가 적지 않으니만큼, 좀 더 무식한(?) 독자를 배려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멈추지 않는 도전 박지성
박지성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도 나는,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꿈의 극장'이라 불리는 올드 트래포드의 그라운드를 달리는 것을 보면 묘하게 현실감이 없어질 때가 있다. 이미 그가 맨유에 입단한 지도 3년이 다 되어가고, 어느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우리네 안방으로 성큼 다가섰지만, 아무래도 박지성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구단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나란히 뛰는 것을 보면, 새삼스레 놀라게 되는 감정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박지성이 정말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라니!

물론, 맨유는 어디까지나 축구팀이고, 맨유 선수들이라고 손으로 축구를 하는 것도 아니니, 내 이런 호들갑은 조금 지나쳐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중국의 13억 인구가 아직 못해낸 일이며, 이는 축구의 나라 브라질로 시선을 돌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맨유에 한정된 일이긴 하지만, 브라질 출신 선수로서 맨유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만큼, 박지성의 맨유 입단과 성공적인 적응은 그의 축구실력 뿐만이 아니라, 그의 적응력과 엄청난 노력, 그리고 행운마저 따른 결과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고, 이는 확실히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박지성에 대한 놀라움과 감탄이 그대로 그의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으로 이어지리라고 믿기에는 당시 박지성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었다. 2005년 6월에 이루어진 박지성의 맨유 입단 소식을 전후로, 모든 언론매체가 박지성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고, 더불어 그의 과거 역시 집중적으로 재조명 받기 시작한 것이다. 팀 동료 반 니스텔루이가 박지성에게 잘 대해주고, 함께 한인식당을 찾았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박지성이 한때 K리그에서조차 외면 받았고, 평발이라는 사실까지. 이미 한 번쯤 언급되었음직한 온갖 이야기들이 재탕에 재탕을 거듭하며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고, 이 책이 나온 것도 그 연장선상의 일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이 급작스런 호응을 얻기에 그보다 더 적절한 출간일은 없었을지 모르나, 이 책이 지닌 가치가 오롯이 드러나기에는 오히려 그러한 비정상적 열광이 조금은 정상궤도를 찾은 뒤라야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이 책에는 분명, 축구선수 박지성의 진지한 고민과 노력과 열정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맨유의 선수로서 들려주는, 맨유에서의 시시콜콜한 생활에 대한 '소비성 기사' 또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축구선수로서의 박지성과, 맨유선수로서의 박지성은 같은 사람이지만, 그가 밝히듯이, 맨유가 그의 목표가 아니라 축구선수로서 지나치는 한 과정이라면, 그는 좀 더 축구선수로 남도록 노력해야 했다.

냉정히 말해서, 국가대표로 뛰는 선수치고 노력하지 않았던 선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성남의 장학영 선수가 연습생 출신으로 지금에 이른 과정이나, 최근 집중 조명을 받은 서울의 곽태휘 선수가 실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늦게나마 빛을 본 건, 두말 할 나위 없이 노력과 열정이 있었던 덕이다. 그렇다면, 이외에도 많은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없고, 박지성에게 있는 단 한 가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의 선수'라는 프리미엄일 뿐이다.

어쩌면,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기 위해 흘려야 했던 땀방울은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쯤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소속팀의 차이 하나로 다른 모든 선수들과 그를 구분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기조차 하다. 맨유에 입단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나온 박지성의 자서전은, 그래서 씁쓸하다.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절대로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아야 한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박지성의 고지식함과 융통성 없는 성격, 또 자신을 성장시켜준 히딩크에 대한 고마움으로 기꺼이 자신의 이적료 일부를 히딩크 재단에 기부한 그의 선함이 혹 오직 맨유라는 이름 뒤로 가리어질까 안타깝기도 하다.

맨유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빼고 보자면, 이 책은 제법 진지한 측면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박지성이 직접 쓴 재미난 일기가 있고, 선배의 부당한 폭력이 가해지던 시절에 대한 그의 소신이 있으며, 미래에 그가 꿈꾸는 축구인으로서의 바람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가 서문에 밝혔듯이, 자신을 성원해주는 팬들에 대해 보답하고자 하는 진정한 선의가 담겨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다른 많은 선수들도 가지고 있을 소속팀에 대한 기억과 노력에 대비되는, 박지성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많지 않을 때, 박지성의 이야기는 이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구단의 이름으로 환원되어 버리고 만다. 그는 다만, 맨유선수 박지성일 뿐인 것이다.

박지성이 고민해야 할 것은, 그리고 그가 팬들에게 보답해야 할 것은, 그가 맨유선수 박지성이 아니라 축구선수 박지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라고 믿는다. 그것은 그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맨유 소식을 전해주기 보다는 차라리 다른 선수들과 똑같은, 그러나 다른 그만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조금 더 시간이 흘러야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여전히 나는 그의 맨유 이야기 또한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 책도 그런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좀 더 박지성 본연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게 내 솔직한 욕심이다. 그리고 그게, 좀 더 나중에 박지성의 자서전이 다시 한 번 나오기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저,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올드 트래포드를 힘차게 달리는 그 하나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한 위로와 기쁨을 얻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