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도전 박지성
박지성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도 나는,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꿈의 극장'이라 불리는 올드 트래포드의 그라운드를 달리는 것을 보면 묘하게 현실감이 없어질 때가 있다. 이미 그가 맨유에 입단한 지도 3년이 다 되어가고, 어느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우리네 안방으로 성큼 다가섰지만, 아무래도 박지성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구단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나란히 뛰는 것을 보면, 새삼스레 놀라게 되는 감정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박지성이 정말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라니!

물론, 맨유는 어디까지나 축구팀이고, 맨유 선수들이라고 손으로 축구를 하는 것도 아니니, 내 이런 호들갑은 조금 지나쳐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중국의 13억 인구가 아직 못해낸 일이며, 이는 축구의 나라 브라질로 시선을 돌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맨유에 한정된 일이긴 하지만, 브라질 출신 선수로서 맨유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만큼, 박지성의 맨유 입단과 성공적인 적응은 그의 축구실력 뿐만이 아니라, 그의 적응력과 엄청난 노력, 그리고 행운마저 따른 결과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고, 이는 확실히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박지성에 대한 놀라움과 감탄이 그대로 그의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으로 이어지리라고 믿기에는 당시 박지성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었다. 2005년 6월에 이루어진 박지성의 맨유 입단 소식을 전후로, 모든 언론매체가 박지성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고, 더불어 그의 과거 역시 집중적으로 재조명 받기 시작한 것이다. 팀 동료 반 니스텔루이가 박지성에게 잘 대해주고, 함께 한인식당을 찾았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박지성이 한때 K리그에서조차 외면 받았고, 평발이라는 사실까지. 이미 한 번쯤 언급되었음직한 온갖 이야기들이 재탕에 재탕을 거듭하며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고, 이 책이 나온 것도 그 연장선상의 일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이 급작스런 호응을 얻기에 그보다 더 적절한 출간일은 없었을지 모르나, 이 책이 지닌 가치가 오롯이 드러나기에는 오히려 그러한 비정상적 열광이 조금은 정상궤도를 찾은 뒤라야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이 책에는 분명, 축구선수 박지성의 진지한 고민과 노력과 열정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맨유의 선수로서 들려주는, 맨유에서의 시시콜콜한 생활에 대한 '소비성 기사' 또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축구선수로서의 박지성과, 맨유선수로서의 박지성은 같은 사람이지만, 그가 밝히듯이, 맨유가 그의 목표가 아니라 축구선수로서 지나치는 한 과정이라면, 그는 좀 더 축구선수로 남도록 노력해야 했다.

냉정히 말해서, 국가대표로 뛰는 선수치고 노력하지 않았던 선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성남의 장학영 선수가 연습생 출신으로 지금에 이른 과정이나, 최근 집중 조명을 받은 서울의 곽태휘 선수가 실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늦게나마 빛을 본 건, 두말 할 나위 없이 노력과 열정이 있었던 덕이다. 그렇다면, 이외에도 많은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없고, 박지성에게 있는 단 한 가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의 선수'라는 프리미엄일 뿐이다.

어쩌면,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기 위해 흘려야 했던 땀방울은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쯤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소속팀의 차이 하나로 다른 모든 선수들과 그를 구분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기조차 하다. 맨유에 입단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나온 박지성의 자서전은, 그래서 씁쓸하다.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절대로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아야 한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박지성의 고지식함과 융통성 없는 성격, 또 자신을 성장시켜준 히딩크에 대한 고마움으로 기꺼이 자신의 이적료 일부를 히딩크 재단에 기부한 그의 선함이 혹 오직 맨유라는 이름 뒤로 가리어질까 안타깝기도 하다.

맨유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빼고 보자면, 이 책은 제법 진지한 측면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박지성이 직접 쓴 재미난 일기가 있고, 선배의 부당한 폭력이 가해지던 시절에 대한 그의 소신이 있으며, 미래에 그가 꿈꾸는 축구인으로서의 바람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가 서문에 밝혔듯이, 자신을 성원해주는 팬들에 대해 보답하고자 하는 진정한 선의가 담겨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다른 많은 선수들도 가지고 있을 소속팀에 대한 기억과 노력에 대비되는, 박지성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많지 않을 때, 박지성의 이야기는 이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구단의 이름으로 환원되어 버리고 만다. 그는 다만, 맨유선수 박지성일 뿐인 것이다.

박지성이 고민해야 할 것은, 그리고 그가 팬들에게 보답해야 할 것은, 그가 맨유선수 박지성이 아니라 축구선수 박지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라고 믿는다. 그것은 그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맨유 소식을 전해주기 보다는 차라리 다른 선수들과 똑같은, 그러나 다른 그만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조금 더 시간이 흘러야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여전히 나는 그의 맨유 이야기 또한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 책도 그런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좀 더 박지성 본연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게 내 솔직한 욕심이다. 그리고 그게, 좀 더 나중에 박지성의 자서전이 다시 한 번 나오기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저,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올드 트래포드를 힘차게 달리는 그 하나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한 위로와 기쁨을 얻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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