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e - 시즌 1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1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나는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 잘 알다시피, 커피는 각성효과를 가진 카페인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졸음을 방지하고, 왜 그런지 정확히는 몰라도, 어쨌든 이뇨작용에도 도움을 준다. 게다가 어느 연구결과에 의하면, 커피를 마시는 것은 간암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달리 커피를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거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커피도 과음하면 좋지 않음을 나 또한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나는 가급적 하루에 커피를 2잔정도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주말이면, 나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축구화를 챙겨들고 운동장으로 향한다. 사실은 그저 좋아해서 하는 축구일 뿐이지만, 이 운동이 나를 육체적으로 더 건강하게, 그리고 정신적으로 더 상쾌하게 만들어 주리란 걸 나는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특히나, 최근에 나오는 축구공은 가히 과학의 결정체라 할만 해서 축구를 좀 더 흥미롭게 만들어 준다. 탄력성이 향상된 축구공은 좀 더 빠르게 멀리 날아가고, 반면에 발등에 얹히는 느낌은 오히려 훨씬 가벼워 졌기 때문이다. 물론 덕분에 꽤나 비싸졌지만, 최첨단 축구공은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막 자리를 잡았을 즈음, 세상은 한바탕 무서운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군사정권은 그런 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로 인해, 결국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주의 운동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쌓이고 쌓여 오늘에 이르렀음은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 생명이 당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고, 그렇게 나는 어른이, 그리고 그 일은 과거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커피를 마시고, 축구공을 차며, 민주주의 운동을 과거로 인식할 때, 내가 빠뜨리고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知識의 이면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나는 물론, 알지 못했다. 내가 마시는 커피를 위해 지불하는 대가가 고스란히 가공, 판매업자와 중간상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정작 농민들이 커피 45잔을 만들 수 있는 원두 1파운드를 팔고 단 60센트(6백원)를 손에 쥔다는 현실을. 내가 차는 축구공을 위해 1620회의 바느질을 하며 일당 300원을 받는 어린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과거에 벌어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얼마나 절박하고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이것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과거라는 진리를.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혹은 알고도 외면했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 책, <지식e>는 그러한 불편한 진실들을 끝내 드러내주고 만다. <EBS 지식채널e>에서 방송된 이야기들을 엮어낸 이 책은 일방적으로 강요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설득하지도 않지만, 호소력 있는 감성적 문구들을 통해 내가 알고 있던 '知識'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던 것인가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智識'들"이 마치 '가시'처럼 다가와 온 몸에 박히도록 만든다. 바로, '공정한 무역'과 '아동노동'과 '민주화' 등의 이름으로.

내가 마시는 커피는 그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한 것이지만, 그것은 사실 완전히 불공평한 것이었다. 내가 즐기는 축구에 사용되는 축구공은 과학이 집결된 것이지만, 기실 그것은 전혀 상식적이지도 못했다. 내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과거로부터 비롯된 결과이지만, 실상 그것은 여전히 계속되는 현재였다. 머리로 알고 있던 知識은 "가슴으로 읽히는 智識"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고, 그렇게 나는 내가 지닌 知識의 이면에 존재하는 智識과 마주한 것이다.

그러나 '智識', 즉 '지혜로운 앎'도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다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이며,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내 몸에 박힌 '가시'들은 또한 소중한 고통이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혀가 따끔하고, 축구공을 찰 때 괜스레 발이 따끔하며,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불현듯 마음이 따끔해진다면, 나는 언젠가 그 '가시'를 뽑기 위해 기꺼이 행동을 하게 되리라 믿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고통이야말로, 내가 진정 살아있다는 증명일 것이므로.

'가시'가 주는 고통을 모르지 않는 것, '가시'가 주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가시'가 주는 고통에 둔감해지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주는 메시지이자, 우리가 '인간'이 되는 첫걸음일 것이다.

Sentio ergo sum.

느낀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 ps. '34. 비타민의 역습' 편에 나오는 hypochodriasis라는 단어는 hypochondriasis의 오타이다. 그리고 '35. 달팽이 집' 편, 308페이지 상단의 pariakapitlismus라는 단어는 pariakapitalismus의 오타이다. 물론 이런 사소한 오타를 걸고넘어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꽤나 어려운 단어들을 간단한 해석도 없이 넣은 것은 조금 아쉽다. 특히나 뒤의 단어를 오타난 대로 검색하면, 사전은 물론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나와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애초에 그 단어 옆에 '천민자본주의'라는 의미를 조그맣게나마 병기했다면 이런 혼란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은 단어 하나가 주는 의미가 적지 않으니만큼, 좀 더 무식한(?) 독자를 배려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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