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프랭클린 포어 지음, 안명희 옮김 / 말글빛냄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2007-200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최종전까지 이어진 맨유와 첼시의 치열한 우승 레이스 끝에,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로써 최근 4시즌 동안 맨유와 첼시는 두 번씩의 우승을 나눠 가지게 되었고, 이것은 다소 비약하자면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승리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공교롭게도, 맨유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팬 층을 보유한 팀이고, 첼시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갑부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주로 있는 팀이기 때문이다. 오는 22일에 모스크바에서 벌어지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사상 최초로 잉글랜드 팀끼리 맞붙게 되었고, 그 두 팀이 바로 맨유와 첼시라는 사실은 그러한 비약을 좀 더 그럴듯하게 만드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까.

어쨌거나, 바야흐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전성시대라는 것에 이견을 제기하기 어렵다. 굳이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의 매치 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근 몇 년간 유럽대회에서 잉글랜드 클럽이 이룩한 성과와 유명선수들의 잇따른 프리미어리그행 소식은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를 만든 두 축은 역시, '세계화'와 '자본주의'로 귀결된다고 하겠다. 최근의 위축된 축구 이적시장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자금으로 이적시장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잉글랜드 클럽들이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전세계로 방영되는 프리미어리그의 인기에서 비롯된 해외자본의 대대적인 투자인 까닭이다.

사실 이 책에서도 일부 지적하듯이,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영국 축구는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었다. 마거릿 대처 수상이 영국의 훌리건을 '문명의 수치'라고 부를 정도로 영국 축구는 훌리건들의 폭력과 광기에 몸살을 앓아야 했고, 심지어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헤이젤 참사'와 '힐스브로 참사'로 인해 몇년간 잉글랜드 클럽들의 유럽대회 참가가 제한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위기를 기화로 하여 영국 축구는 거대 자본을 끌어와 축구장의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테일러 리포트'로 대변되는 영국 축구의 개혁 프로그램을 통해 199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의 세계적 확대와 자본의 결합이 더욱 공고하게 맞물리면서 오늘날 프리미어리그는 유례없는 성공시대를 활짝 열어젖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의 성공이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밝은 면이라면, 그 반대쪽에 자리한 어두운 면이 없을 수 없고,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어두운 면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프리미어리그가 세계로 퍼지면서 함께 흘러 들어간 영국 훌리건 문화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를 부활시키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든가,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민주적 행태를 주창하는 세계화 이론에도 불구하고 셀틱과 레인저스의 뿌리 깊은 종교적 갈등이 근절되지 못하는 현상이라든가, 혹은 우크라이나의 카르파티 구단이 유럽세계와 유럽의 축구구단이 보여주는 '하나의 세계' 모델에 집착하여 나이지리아의 흑인 선수를 영입했음에도 상이한 문화적 차이로 말미암아 긍정적인 효과를 보지 못한 것 등의 사실은 '세계화'의 어두운 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카르파티의 주장인 유리는, "역사상 카르파티 최고의 순간들은 구단이 모두 지역선수들로만 이루어진 통일된 구단이었을 때 일어났죠."라고 말하는데, 이는 축구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 명제로 새겨들을 만하다.

한편,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도 심상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 이탈리아의 명문 클럽 유벤투스는 승부조작과 연루된 파문으로 세리에B로 강등되는 일이 있었다. 유벤투스는 아넬리가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유벤투스의 부정은 곧 아넬리가의 권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이 책에 따르면, 잔니 아넬리의 조부는 언젠가, "기업가란 원래 정치인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종합하면, 재력과 권력과 축구는 공고하게 얽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현 AC밀란의 구단주 실비오 베를르수코니의 재력과 권력이 어떤 식으로 AC밀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지, 또 반대로 AC밀란에 대한 팬들의 애정이 어떻게 베를르수코니의 정치권력으로 연계되는지를 통해서 자본과 얽매인 축구의 폐해를 드러내 준다. 또한, 브라질에 만연한 축구계에서의 부정부패를 자본주의가 몰아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있었음에도, 그것이 결국 실패하고 오히려 브라질 축구를 더욱 위축시킨 사례를 제시하면서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조명한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은 '세계화'와 '자본주의'가 축구에 가져다 준 달콤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음울한 실패와 충돌 또한 자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는, 저자가 세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도한,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대단히 흥미롭고 현장감 있게 펼쳐진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바탕으로 저자는 축구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세계화'와 '자본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일까? 대단히 혼란스러운 일이지만, 불행히도 결코 그렇지 않다. 서문에서 밝히듯이, 저자는 암울한 현상들이 존재함에도 '세계화'에 대해 적개심을 갖는 것은 무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 냉철한 저널리스트가 다분히 감상적으로 변하는 모습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저자가 감상적으로 변하는 부분, 다시 말해서 저자가 '세계화(혹은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애써 잊게 되는 부분은 이 책에서 두 가지 정도로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매력'에서 바르샤의 민족주의를 다루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문화 전쟁'에서 세계화에 따른 미국의 문화 분열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저자는 바르샤가 세계적 상업주의에 빠지지 않고, 축구를 폭력과 광기로부터 구해낸다고 하며 적극적으로 바르샤의 가치를 옹호하는데, 그와 관련된 사례들은 대단히 낭만적인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어서 설득력이 약하다. 그리고 미국의 문화 분열 내용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세계화'의 적이 미국이라는 항간의 인식에 대해 반박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이고, 더욱이 별다른 진지한 접근도 없이 미국의 다국적 기업을 옹호하는 것은 아무래도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저자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데에는 그가 바르샤의 팬이라는 것과 그의 조국이 미국이라는 사실과 결부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저자의 이러한 감상적인 면모는 저자가 관찰한 많은 현상들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이는 주요원인으로 지적할 만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이 일관된 하나의 주제로 엮이지 못하고 독자에게 다소의 혼란스러움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놀랍고 흥미로운 고찰이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대인의 축구에서부터 이란의 축구까지 파고드는 저자의 광범위한 접근은 그 자체만으로도 꽉 찬 지적 포만감을 주며, 궁극적으로 저자의 고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은, 바로 독자의 몫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무엇보다도,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가 우리네 안방까지도 깊숙이 침투한 오늘날, 그 화려한 이면을 잠시 돌아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넘치도록 충분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축구는 한국이다 - 한국 축구 124년사, 1882-2006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미리 밝혀두자면, 사실 이 책을 읽은 것은 결코 호의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월드컵에 즈음하여 출간되는 축구서적에 대해서는 다소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고, 더군다나 '축구는 한국이다'라는 이 책의 제목에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것은, 저자가 강준만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약간의 호기심과, 과연 저자가 무슨 논리로 이러한 발칙한(?) 명제를 이끌어내는지를 비판적으로 읽어보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임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은 것은 일종의 반감이었던 셈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선, '축구는 한국이다'라는 명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축구'의 속성과 '한국'의 속성을 정의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그리 매끄럽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축구를 종교요 전쟁이라고 하면서 축구의 본질을 국제,국내적 갈등의 대리전쟁이라고 말하고, 이러한 대리성의 원칙에 가장 충실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한다. 또한, 축구는 독특한 집단주의적 가치와 더불어 눈코 뜰 새 없이 몰아치는 격렬한 경쟁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고, 이는 바로 한국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인은 늘 국가,민족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대단히 평화적이라고 하며, 2002월드컵 때 15개국 대표팀의 응원을 위해 헌신한 10만 '코리언 서포터즈' 활동을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축구의 속성에 대한 이러한 저자의 의미부여는 유달리 특이한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것이 어떻게 그대로 한국의 속성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저자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나 갈등과 경쟁이라는 축구의 속성이 한국인의 평화적 속성에 이르면, 축구와 한국의 연결고리는 금세 위태로워 보인다. 게다가 축구가 한국이기 위해서는 축구를 너무 잘해도 열기가 시들해져서 곤란하고, 반대로 너무 못해도 범국민적으로 열광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적당히 잘해야 한다는 식의 설명은 매우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가치의 패러독스'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한국인의 지극한 축구사랑도 쉬이 수긍하기 어렵고, 축구의 집단주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한 중국과 한국의 비교는 너무나 도식적이다.

물론, 저자가 '축구는 한국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한국이 축구를 매개로 한 정치사회적 의미 부여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나라"라는 의미이고, 이것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이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한국축구의 124년 역사를 더듬는데, 그 과정은 한국에서의 축구가 정치사회와 얼마나 큰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드러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령, 일제강점기에 한국축구가 민족의 '존재증명'으로서 기능했다거나, 북한과의 축구대결에서 어김없이 투영되는 '체제경쟁' 의식은 축구가 지니는 경쟁의 속성이 한국의 역사적 맥락(식민지 지배와 남북 분단)과 공고하게 엮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5공화국 시절의 스포츠 정책에 의한 한국축구를 거쳐 2002년 월드컵의 엄청난 열광에 이르면, '축구는 한국이다'라는 명제가 더 이상 낯설게 여겨지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축구'와 '한국'의 속성이 지니는 위태로운 연결고리는 차치하고서라도, '축구는 한국이다'라는 명제는 두 가지 점에서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하나는, '축구' 대신에 다른 단어를 끼워 넣어서는 안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5공화국이 스포츠 공화국으로 불리며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유치했던 것은 스포츠가 정치사회적으로 갖는 파급효과를 잘 인식했기 때문일 터이고, 그 중에서 '축구'는 다만 하나의 하위수단일 따름이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황우석 신화'의 파탄을 보도한 뉴스에서 뒤이어 박지성의 첫골 도전 소식을 전한 것을 박지성에게서 황우석의 대체가치를 찾는 것으로 의심하는데, 이는 바로 '축구'가 수단이라는 점을 저자도 인식한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축구는 한국이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야구나 농구, 심지어 황우석도 한국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요컨대, '축구는 한국이다'라는 명제에서 '축구'는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의문은 '한국' 대신에 다른 단어를 넣는 것은 어떤가의 문제이다. 해외에서 축구가 각 나라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측면과 어떤 관련을 맺는지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예컨대, AC밀란의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AC밀란의 서포터를 기반으로 이탈리아의 정권을 장악한 것이나, FC바르셀로나가 프랑코 독재에 대항한 카탈루냐 지역을 대변하는 팀이 된 것, 그리고 셀틱과 레인저스가 축구를 매개로 종교대립을 벌이는 등의 일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이는 명백하게 각국의 다양한 환경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서든 축구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대전제 하에서 축구를 매개로 하는 한국의 정치,사회적 맥락의 고찰은 충분한 의의가 있지만, 그러한 의미 부여에 있어서 한국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은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맺음말' 부분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결론이다. 본문에서 저자는 월드컵에 열광하는 국민들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시선을 대조해서 보여주며, 明과 暗을 모두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정작 결론에서는 축구에 대한 광기를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이는 사실상 국민적 열광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 대해 반대의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면서도 각기 다른 개성과 취향대로 자신만의 '놀이'를 즐기고, 또 비판도 하며 서로 원없이 놀아보자고 끝맺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해 보인다. 더군다나, 국민적 열광에 대한 비판적 견해의 핵심이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대한 과잉으로 인해 '다른 것'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오로지 '획일성'과 '과잉동조'로 흐를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자의 결론은 어느 쪽에도 적용되기 어려운 허무맹랑한 견해로까지 보인다.

한국축구가 한국의 역사적 맥락과 어떤 관련을 맺으며 이어져 왔는지에 대한 이 책의 고찰이 매우 의미있고 흥미로운 주제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한국이 그러한 연관성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한국사회 내에서 축구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말을 빌리자면, "축구의 역사는 즐거움에서 의무로 변해가는 서글픈 여행의 역사이다"에서 '의무'를 규명해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축구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각의 환경과 공고하게 얽히면서 '의무'가 되는 지점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만 보자면, 이 책의 내용은 분명 만족할 만하다.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은 저자가 직접 저술하기보다는 대부분 당시의 신문이나 관련된 저서, 혹은 TV자료를 인용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그럼에도 난잡하기보다는 오히려 생동감이 넘쳐흐르고, 동시에 상당히 압축적이면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의무'에 대한 경계로 이어져야 한다는 게 내 개인적인 견해이다. 그 '의무'가 정치적 이용이든, 과도한 민족주의의 표출이든, 혹은 자본주의의 잠식이든, 그것이 이제 축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성을 제외하고 그저 감성적으로 바라보자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말이 아닐까. 더 이상 축구가 '즐거움'으로만 존재하지 못하게 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최소한 축구가 '의무' 그 자체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축구'를 사랑하는ㅡ혹은 경계하는ㅡ사람들의 진정한 '의무'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 -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현지에서 1년간 독점취재하다
최보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최보윤 기자의 글을 비교적 신뢰하는 편이다. 그녀의 글을 처음 접한 건 어느 네티즌이 퍼 나른, 그녀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서였는데, 프리미어리그에 관한 기사가 홍수처럼 쏟아지던 당시에도 그녀의 글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그녀가 영국 특파원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포포투>의 '최보윤의 sexual football' 코너를 통해 정기적으로 그녀의 글을 접할 수 있었고, 나는 코너 이름만큼이나 섹시하고 매력적인 그녀의 글을 매우 흥미롭게 읽고 있다.

그녀가 축구를 대하는 방식은 여느 기자들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이를테면, 박지성의 섹시한 엉덩이를 주목한다거나, 유부남 베컴이 주는 매력을 파헤친다거나, 혹은 무리뉴 전 첼시 감독이 중년 남성으로서 보여주는 중후함을 한껏 드러내주는 식이다. 물론, 이는 '최보윤의 sexual football'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이자, 그 코너의 컨셉에 맞춘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른 글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비교적 뚜렷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것은, 축구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해체되는 경향과 맞물려, 그녀 자신의 독특한 색깔로서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 <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 역시, 그녀의 독특한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이 책을 좀 더 매력적이고 감성적으로 만들어 준다. "음. 사실 나는 패스, 돌파, 뭐 이런 것을 시간순으로 다시 뜯어 설명하거나 수치화시키는 것보다는 뭐랄까, 축구를 뮤지컬 같은 공연을 보듯 즐기는 그런 걸 바랐었다.(91p)" 라는 그녀의 말처럼, 이 책은 축구 전술이나 기록과 같은 객관적 사실에 주목하기보다는 다분히 주관적인, 그러나 그로 인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녀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솔직함이 바로 그녀가 프리미어리그를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였음에 분명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이런 점에 있다. 박지성 선수가 몇 경기에 나서서 몇 골을 넣었고, 그가 어떤 전술적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그가 맨유라는 세계적 구단에서 동료들과 어떻게 함께 어울려 나가는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 조금씩 잊혀지고 비난받는 설기현 선수의 단점을 분석하기보다는, 그의 섬세한 심정과 강인한 의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드러내 주는 것.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던 이영표 선수의 기록을 살피기보다는, 그의 인간적 면모에 주목하는 것. 이외에도 프리미어리그의 스타선수들과 감독들이 지닌 매력을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소개해 주면서, 좀 더 색다르면서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프리미어리그를 접하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스포츠가 지니는 속성상 수치와 같은 객관적 정보가 전혀 반영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정보를 버무리고 저자의 개인적 경험을 첨가해서, 달콤하고 톡톡 튀는 글로 만들어내는 그녀의 솜씨는 정말 감탄할 만하다. 예컨대, 영국 언론의 반응을 간략하게 브리핑해 준다거나, 웨인 루니의 여자친구인 콜린 맥러플린이 여성잡지에서 루니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캐치해 낸다든가 하는 것들은 저자의 주관적 시선과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 자못 흥미로운 것이다. 또한, 책 구석구석을 장식하는 선수들의 사진은 마치 저자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듯, 선수들의 매력적인 모습을 한껏 드러내는 사진들뿐이어서 이 사진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이 책도 아쉬운 점들이 없지는 않다. 두 번째 파트인 '반짝반짝 빛나는 8인의 축구 스타' 부분이 특히 그러한데, 이 부분에는 <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라는 책 제목이 무색하게 4명의 非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그들이 영국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국에서 저자가 접했을 정보와 경험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저자가 직접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들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국, 이런 저런 정보를 취합해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는 저자의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글이 지니는 색깔이 현저하게 사라지면서 밋밋해지고 만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초반에 그녀의 글이 주는 매력이 기대 이상이어서, 거기에 비교되는 상대적인 아쉬움이라 할 수 있을 듯하고, 축구팬이라면 결코 실망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는 역시 장점이 훨씬 많아서, 이 책은 가히 프리미어리그 팬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이 책은 태생적 한계로 인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축구 소식'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내 '과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저자의 프리미어리그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여전히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결국, 저자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기 마련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멈추지 않는 도전 박지성
박지성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도 나는,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꿈의 극장'이라 불리는 올드 트래포드의 그라운드를 달리는 것을 보면 묘하게 현실감이 없어질 때가 있다. 이미 그가 맨유에 입단한 지도 3년이 다 되어가고, 어느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우리네 안방으로 성큼 다가섰지만, 아무래도 박지성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구단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나란히 뛰는 것을 보면, 새삼스레 놀라게 되는 감정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박지성이 정말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라니!

물론, 맨유는 어디까지나 축구팀이고, 맨유 선수들이라고 손으로 축구를 하는 것도 아니니, 내 이런 호들갑은 조금 지나쳐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중국의 13억 인구가 아직 못해낸 일이며, 이는 축구의 나라 브라질로 시선을 돌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맨유에 한정된 일이긴 하지만, 브라질 출신 선수로서 맨유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만큼, 박지성의 맨유 입단과 성공적인 적응은 그의 축구실력 뿐만이 아니라, 그의 적응력과 엄청난 노력, 그리고 행운마저 따른 결과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고, 이는 확실히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박지성에 대한 놀라움과 감탄이 그대로 그의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으로 이어지리라고 믿기에는 당시 박지성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었다. 2005년 6월에 이루어진 박지성의 맨유 입단 소식을 전후로, 모든 언론매체가 박지성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고, 더불어 그의 과거 역시 집중적으로 재조명 받기 시작한 것이다. 팀 동료 반 니스텔루이가 박지성에게 잘 대해주고, 함께 한인식당을 찾았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박지성이 한때 K리그에서조차 외면 받았고, 평발이라는 사실까지. 이미 한 번쯤 언급되었음직한 온갖 이야기들이 재탕에 재탕을 거듭하며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고, 이 책이 나온 것도 그 연장선상의 일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이 급작스런 호응을 얻기에 그보다 더 적절한 출간일은 없었을지 모르나, 이 책이 지닌 가치가 오롯이 드러나기에는 오히려 그러한 비정상적 열광이 조금은 정상궤도를 찾은 뒤라야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이 책에는 분명, 축구선수 박지성의 진지한 고민과 노력과 열정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맨유의 선수로서 들려주는, 맨유에서의 시시콜콜한 생활에 대한 '소비성 기사' 또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축구선수로서의 박지성과, 맨유선수로서의 박지성은 같은 사람이지만, 그가 밝히듯이, 맨유가 그의 목표가 아니라 축구선수로서 지나치는 한 과정이라면, 그는 좀 더 축구선수로 남도록 노력해야 했다.

냉정히 말해서, 국가대표로 뛰는 선수치고 노력하지 않았던 선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성남의 장학영 선수가 연습생 출신으로 지금에 이른 과정이나, 최근 집중 조명을 받은 서울의 곽태휘 선수가 실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늦게나마 빛을 본 건, 두말 할 나위 없이 노력과 열정이 있었던 덕이다. 그렇다면, 이외에도 많은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없고, 박지성에게 있는 단 한 가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의 선수'라는 프리미엄일 뿐이다.

어쩌면,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기 위해 흘려야 했던 땀방울은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쯤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소속팀의 차이 하나로 다른 모든 선수들과 그를 구분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기조차 하다. 맨유에 입단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나온 박지성의 자서전은, 그래서 씁쓸하다.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절대로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아야 한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박지성의 고지식함과 융통성 없는 성격, 또 자신을 성장시켜준 히딩크에 대한 고마움으로 기꺼이 자신의 이적료 일부를 히딩크 재단에 기부한 그의 선함이 혹 오직 맨유라는 이름 뒤로 가리어질까 안타깝기도 하다.

맨유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빼고 보자면, 이 책은 제법 진지한 측면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박지성이 직접 쓴 재미난 일기가 있고, 선배의 부당한 폭력이 가해지던 시절에 대한 그의 소신이 있으며, 미래에 그가 꿈꾸는 축구인으로서의 바람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가 서문에 밝혔듯이, 자신을 성원해주는 팬들에 대해 보답하고자 하는 진정한 선의가 담겨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다른 많은 선수들도 가지고 있을 소속팀에 대한 기억과 노력에 대비되는, 박지성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많지 않을 때, 박지성의 이야기는 이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구단의 이름으로 환원되어 버리고 만다. 그는 다만, 맨유선수 박지성일 뿐인 것이다.

박지성이 고민해야 할 것은, 그리고 그가 팬들에게 보답해야 할 것은, 그가 맨유선수 박지성이 아니라 축구선수 박지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라고 믿는다. 그것은 그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맨유 소식을 전해주기 보다는 차라리 다른 선수들과 똑같은, 그러나 다른 그만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조금 더 시간이 흘러야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여전히 나는 그의 맨유 이야기 또한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 책도 그런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좀 더 박지성 본연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게 내 솔직한 욕심이다. 그리고 그게, 좀 더 나중에 박지성의 자서전이 다시 한 번 나오기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저,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올드 트래포드를 힘차게 달리는 그 하나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한 위로와 기쁨을 얻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축구 저널리스트 서형욱의 유럽축구기행
서형욱 지음 / 살림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2002년 월드컵을 군대에서 보게 된 것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오히려 26개월이라는 길고도 지루한 군 생활 중, 한 달 동안이나마 월드컵 덕분에 생기 있게 보내게 된 것을, 나는 꽤 감사하고 있다. 비록 미국전 때는 외곽 근무를 나가야 했고, 독일전 때는 피로가 몰려와 깜빡 잠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2002년 월드컵은 대한민국 사람 누구에게나 넘치는 기쁨을 선물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전국에서 울려 퍼진 "대~한민국!"의 환호성은 군대라고 해서 슬며시 비껴가지는 않았지만, 밤늦게까지 밖에서는 계속되었을 흥분의 여운을, 불행히도 군인들은 꿈에서나 지속시켜야 했다. 잘 알다시피 군인은, 새나라의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하필, 평생 다시없을, 우리나라에서 열린 월드컵 때 군대에 있었던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유럽에서라도 열렸다면 생방송은 꿈도 못 꿨을 테니. 

기필코, 전국의 월드컵 경기장을 돌아보리라고 마음먹은 것은 그 즈음의 일이었다. 실상 2002년에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치러지게 된 것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정해진 것이었고, 그걸 뻔히 알고서도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없었던 내 멋진 운명을,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5년여 동안 내가 살았던 서울과 울산의 축구장을 제외하면, 나는 수원과 인천의 월드컵 경기장만을 겨우 방문했을 뿐이다. 새삼 이 책을 다시 꺼내어 읽은 것은, 그러니까 이제는 먼지가 제법 쌓인 내 작은 '꿈'을 문득 다시 꺼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이 나온 지는 어느새 3년이 다되어가고, 그간 있었던 놀라운 변화ㅡ4명의 프리미어리거 탄생ㅡ를 감안하면, 이 책은 과거의 일이라는 치명적 한계를 지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최근 맨유를 비롯한 각 팀과 프리미어리그에 관한 온갖 기사들이 넘쳐나는 상황은 그런 의심을 더욱 가중시킨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오히려 이런 급격한 변화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있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소비성 기사'들과, 이런 것들을 재생산 해내는 요즘의 축구 관련 서적들과 달리, 이 책에는 유럽축구에 대한 저자의 순수한 동경과 솔직한 시선, 그리고 한국축구에 대한 반성과 애정이 담뿍 담겨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축구 경기장을 찾아 돌아다니고, 해외에서 뛰는 한국선수들의 궤적을 좇는 저자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이 책은 의외의 감동까지도 책 구석구석에 저며 놓았다. 75년간 선더랜드의 팬이었다는 제이슨 할아버지가 말하는 '과거의 축구', 피렌체의 시민들과 바티스투타가 엮어낸 '낭만의 축구', 그리고 마르세유의 시민들과 축구 영웅 지단이 보여준 '존경의 축구'는 저자가 발로 뛴 경험과 깔끔한 글 솜씨가 어우러져 더욱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여행을 하며 벌어진 갖가지 에피소드들과 그가 느낀 감상은 여느 단순한 여행기 이상으로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그러면서도 한국축구의 안타까운 현실을 잊지 않고 지적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저자의 진지한 축구사랑은, 한 사람의 축구팬인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내 '꿈'을 생각했다. 축구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여행이 가져다주는 매혹은 한구석에 잠시 밀쳐두었던 내 '꿈'을 다시금 요동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저자가 런런의 웸블리 경기장에서부터, 마드리드와 프랑크프루트의 경기장을 거쳐, 마르세유와 모나코의 축구 경기장을 찾아 헤맬 때, 나는 우리나라의 월드컵 경기장을 차례로 둘러보는 나를 상상했다. 우선은, 가까운 부산과 대구, 그리고 포항의 경기장을 찾아가고, 이후에 광주와 대전의 경기장을 방문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그리고 수원과 인천의 경기장도 다시 제대로 가봐야 하겠고, 아마도 제주도의 서귀포 경기장을 찾는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 될 것이라고......

물론 일반적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단지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을 보기 위해 제주도를 찾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럽축구를 둘러보며 유럽 대륙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저자처럼, 그렇게 제주도를 알아가는 것도 분명 나쁘지 않으리라.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바르샤FC를 외면하는 것은 그 도시의 절반만 보는 것이라고 단언하는 저자처럼, 그렇게 제주도에서 제주FC를 만난 것을, 나는 자랑스레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 때쯤이면 아마도, 내 '꿈'은 어느덧 '현실'이 되어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